시누님들 방문
몇 년 전 제사를 없앤 시아버님의 기일이 내일이다. 제사를 없애고는 남편이랑 둘이 성묘를 다녀오고는 했는데, 제사를 없애기 전에도 잘 오시지 않던 시누님들이 이번 기일에 모이신단다. 금요일은 기차도 차도 복잡할 테니 하루 당겨서 오시기로 한 것이 오늘이다. 수능날이라고는 생각도 못했단다.
아침부터 성묘 갈 준비를 했다. 전도 좀 부치고, 과일과 북어포도 준비했다. 시누들은 서울에서는 기차를 타고, 전주에서는 버스를 타고, 대전에서는 지하철을 타고 모였다. 모두 도착한 시간이 11시 30분인데 나는 1시 출근이라 성묘만 갈 수 있다 했더니 그럼, 성묘는 나중에 하고 모두 모여 밥을 먹자고 했다. 따수운 분들
전에도 이야기했지만 우리 시누님들은 세상 맛있는 것이 없는 분들이다. 이번에도 유명 석갈비집으로 모셨지만 맛없다고 난리다. 고기도 맛이 없고, 된장찌개도 별로고, 반찬으로 나온 양념게장은 색이 이상하단다. 오늘도 나와 남편만 맛있는 밥상이었지만 여섯 명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있으니 철판에 수북이 남은 석갈비를 보면서도 젓가락질이 조신해졌다. 큰 형님은 개 키우는 사람 있으면 고기 가져다가 먹이란다. 간이 되어 있고, 양파 위에 구워서 개가 먹으면 안 된다고 했더니 늙거나 병든 개가 있으면 먹이면 된단다. 죽기 전에 맛있는 거 주라는 논리다. 남편은 큰 형님에게 '애들이 누나한테 맛있는 거 해먹이면 의심햐.'하며 여든이 넘은 누나를 놀렸다.
일곱 명의 형제 중 두 분이 먼저 가시고 다섯이 모였으니 이 시간을 기억하고자 내가 사진을 찍어주겠다 했다. 그랬더니 큰 시누가
그래, 객식구가 찍어라.
했다. 셋째 언니가 객식구가 뭐냐며 옆구리를 찔렀지만 나는 괜찮다. 결혼날을 잡고 인사온 조카며느리에게 '너는 우리 조카보다 참 못생겼다' 하신 분이다. 놀랍지도 않거니와 나만 성이 다르니 맞는 말이다. 언니들은 나중에 집안에 좋은 일이 생겼을 때 예쁘게 하고 모여서 사진을 찍자고 하셨다. 그러면서 우리 집 큰애를 시집보내라고 하셨다. 벌써 순서가 우리 집인가 싶어 위에 결혼 안 한 사람이 누구인가 살펴보니 퍽 재밌다.
큰 언니 둘째, 딸이 쉰이 넘었으나 미혼이다.
아주버님 둘째, 아들이 마흔이 넘었으나 미혼이다.
둘째 언니 둘째, 아들이 쉰이 넘었으나 미혼이다.
셋째 언니 둘째, 딸이 마흔이 넘었으나 미혼이다.
넷째 언니 둘째, 아들이 마흔이 넘었으나 미혼이다.
다섯째 언니는 아직 애가 고등학생이다.
그다음은 우리인데, 이제 따끈따끈한 서른이다.
시누님들 맛없는 음식 드시고 기운 떨어지실까 옆에서 크게 웃고 떠들고 즐겁게 점심을 먹은 나는 형님들과 음식점에서 인사를 나누었다. 오랜만에 만난 언니들이 모두 조금씩 늙어 있었고 조금씩 작아져있었다. 처음 결혼해서 그들이 참 무서웠었는데, 이제 서른 해 넘게 가족으로 이어져있으니 조금은 편안한 사이가 되어 다음을 기약하며 성묘 가는 차에 손을 흔들었다.
라고 생각했으나 출근길에 얼굴이 후끈 달아오르며 얼굴이 벌게졌다. 시누님들 만난다고 긴장했었나 보다. 정말 이 언니들이 더 늙기 전에 순서대로 좋은 소식이 생겼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