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김장
뜨겁던 지난여름, 김장 배추 50 포기를 심었다. 마당의 텃밭을 정비하기 전에는 100 포기도 심었었지만, 화단을 꾸미고 맥문동을 또 한바퀴 돌려 심고 나서 채소를 기르기 때문에 그 양이 많이 줄었다. 먹을 사람이 많지 않고, 그것도 농사라도 힘이 들기도 해서 머리를 쓴 것이다.
다음 주 토요일에 동생네들과 함께 김장을 하기로 약속을 잡았다. 농사지은 배추로는 어림도 없어서 절임배추를 3박스 시켜 놓았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하니 한 번에 하면 좀 복작스러울 것 같아서 나는, 혼자, 밭의 배추로 김장을 미리, 하기로 한다.
토요일 남편을 출근시키니 오전 6시다. 아직 껌껌해서 우선 육수를 올리기로 하고 지난주 서천에서 사 온 명태 머리, 보리새우, 다시마, 디포리등 이것저것 넣고 불에 올렸다. 날이 슬슬 밝아 오길래 이제 밭으로 나가 배추를 뽑았다. 사실, 김장을 하려고 심었지만 거의 달팽이 사육장이었던 배추밭. 이것을 배추라고 해야 할까 싶게 작은 포기부터 큰 포기, 삐리삐리한 포기, 벌레천국포기 등등 배추를 뽑아 정리하고 소금물에 담가두었다. 절여지는 동안 진하게 우러난 육수에 찹쌀밥을 해서 넣고, 친구가 준 마늘, 생강. 우리 집에서 자란 나무에서 딴 마지막 매실청도 넣고 양파랑 무도 갈아서 넣었다. 그래도 아직 배추가 절여지지 않아서 맥문동의 잎도 정리하고 마당과 밭의 풀도 다 뽑았다. 이때까지는 괜찮았다.
혼자 김장을 하겠다고 하니 남편이 걱정을 했지만, 그까짓 것 내가 대~~~ 충 하면 된다고 말했다. 대충이라니! 김장에 대충은 없다. 배추를 씻으며 힘이 들기 시작했다. 여러 번을 씻어도 덤블이 자꾸 나오고 쪼그리고 앉아 씻자니 다리 아파 죽겠고, 씻다 보니 아직 덜 절여진 거 같아 속상하고 아주 난리가 났다.
배추를 씻어 커다란 채반에 건졌으나 그것을 한꺼번에 들고 거실로 들어올 수가 없어서 나눠서 들고 왔다 갔다 하자니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겨우겨우 김장을 할 준비를 마쳤다!!! 준비를 마쳤다니,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화가 난다. 김치를 버무리고, 통에 담고, 김치 냉장고에 넣고.... 포기가 작다고 해도 50 포기다. 점점 몸이 쪼그라들며 일어설 때마다 에구구구가 남발되고 내가 왜 이러고 있지? 하는 의문에 휩싸여서 자꾸 화가 났다.
나는 아직도 내가 힘이 센 서른쯤 되는 줄 알았나보다. 김장을 나 혼자 충분히 할 수 있다고 생각하다니 참 어리석다. 겨우겨우 김장을 마치고 거실을 보니 씻을 그릇과 더러워진 바닥이 보였다. 김장의 끝은 김치냉장고에 김치를 넣는 것이 아니다. 여차저차 간신히 정리를 하고 나니 6시다.
나름 야심차게 만든 육수와 세가지의 젓갈과 갖은 양념을 넣어 만든 나의 김치가-나의 체력과 영혼과 양파와 무까지 갈아넣어 만든 나의 김장이-싱겁다.
혼자 하는 김장은 이렇게 위험하다. 겨우내 먹을 김장이 싱겁다니!
고춧가루 묻은 배추가 싱싱하게 살아서 밭으로 걸어 들어가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