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부시던 어느 날
가만히 서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던 날이었다. 친구들과 냇가로 몰려가서 개구리도 잡고 송사리도 잡고 놀았을 것이다. 기억이 희미하지만 구판장 앞 신작로에서 친구들과 무리를 이루어 놀고 있었다. 동네에는 학교에 다니지 않는 아이가 한 명 있었는데 그 아이가 나타났다. 아니다. 기억을 더듬어보니 내가 그 아이와 놀고 있었다. 그 아이는 말을 못 하고 늘 ‘어버버’만 줄곧 해대는 아이였는데 나는 그 아이와 퍽 친했다. 말하는 것을 즐겨하지 않던 나는 그 아이와 노는 것이 재미있었다.
아마도 신작로 옆 둥구나무였던 것 같다. 내가 이름도 잊은 그 아이와 놀고 있는데 동네 아이들이 나타나서 그늘이 있는 둥구나무 아래로 모여들었다. 그러다가 한 아이가 그 아이에게 소리쳤다.
“야, 병신아 절루 가!”
한 아이가 소리치자 다른 아이들도 같이 소리 지르기 시작했다.
저리 꺼져, 병신아, 바보야, 멍텅구리, 얼레 꼴레리
아이는 슬금슬금 뒷걸음질을 쳤다. 나는, 아이들 속에서 그 아이를 쳐다보았다. 나도 같이 소리를 지르지는 않았다. 나는 착한 아이였고 친구를 놀리면 안 된다고 배웠고, 나쁜 말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으며, 방금 전까지 같이 놀던 아이에게 그러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아이들 무리에 있고 싶었다. 그러다 한 명씩 아이에게 돌멩이를 던지기 시작했다. 아이는 돌멩이를 피해 자꾸 뒤로 갔다. 나는 왜 그랬을까. 나쁜 말은 하지 못해도 돌멩이는 던질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아니면 내가 서 있는 그 무리에게 걸맞은 행동을 무엇이라도 하나 해야 한다고 생각했을까.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돌멩이를 하나 집어 들었다. 그리고 던졌다. 아이와 눈이 마주쳤다. 아이의 머리에서 피가 흘렀고 그저 도망만 가던 그 아이는 피를 보고 울기 시작했다. 나는 알았다. 머리를 깨지게 한 돌멩이가 누구 것이었는지를. 햇볕이 따겁게 내리쬐고 아이의 더러운 얼굴에서 피가 뚝뚝 떨어졌다. 나도 같이 울었다. 기억 속 그날은 강렬한 햇볕에 주위가 하얗다. 그리고 피범벅이 된 아이와 울고 있는 내가 있다. 나는 아이 손을 잡고 그 애 집에 데려다주었다. 놀래서 뛰어나온 그 아이 엄마에게 내가 했다고 말하지 않았다. 그냥 울었다. 그 아이도 내가 그랬다고 하지 않았다. 그냥 울었다.
속 마음을 보여준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그 마음이 끝까지 같은 마음이기는 더 어렵다.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다가도 무리에서 멀어졌다 싶으면 두려움이 슬그머니 밀려들어 와 나 또한 너희들과 생각이 같았다는 표시를 살짝이라도 해 보게 된다. 이런 이중적인 나에게 환멸을 느끼다가도 어쩔 수 없는 일 아닌가 하며 스스로를 위로해본다.
세상과 타협을 할 때 그 아이가 생각이 난다. 내가 던진 돌멩이에 머리가 깨져서 피를 흘리던 그 아이를... 더러운 나의 변명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