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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상희 Jan 06. 2023

나비효과

아버지의 부재

어렸을 때 엄마와 함께 교도소에 간 적이 있다. 무슨 예배를 드리러 갔었는데 그 낯설고 어두운 그림자에 압도되어 엄마 손을 꼭 붙들고 두려움에 떨고 있을 때 죄수복을 입은 어떤 아저씨와 눈이 마주쳤다. 눈이 큰 아저씨는 어린 나를 보고 씩 웃었는데 나는 앙-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그저, 무서웠다. 나에게 교도소란 나쁜 곳, 무서운 곳이며 그곳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무섭고 나쁜 사람들이 죄를 지어 착한 사람들과 격리시키는 곳이다. 그것이 사실이고. 그렇게 무서운 곳에 갔다 온 사람을 내가 한 명 알고 있다.


우리 남편과 하루에 꼭 두 번씩 통화를 하는 애인 같은 친구가 있다. 큰 트럭을 몰고 있는 그는 출근할 때와 퇴근할 때 지루한 운전시간에 통화를 하며 수다를 떨고 잠을 쫓는다. 그 친구는 세상 친절한 사람이다. 내가 보기에는 그랬다. 그런데 어쩌다 그의 과거를 알게 되었다. 젊었을 때 나이트클럽에 가서 신나게 술을 마시고 춤을 추며 놀았단다. 같이 춤을 추며 놀던 아가씨가 몹시 맘에 들었는데 집에 가겠다고 클럽을 나가더란다. 친구는 쫓아 나가서 더 놀자고 잡다가 계속 거절하는 그녀의 핸드백을 뺏어 들고 냅다 뛰었단다. 그러면 핸드백을 찾으러 올 테고 그러면 같이 있을 시간을 벌 수 있겠다고 생각했단다. 그를 찾아온 것은 경찰이었다. 


그렇게 감옥에 가게 되었단다.


사람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건 한순간인가 보다. 하지만그런 일이 벌어지기 전에는 전조가 있기 마련이다. 화산이 폭발하기 전에 땅속에 살던 지네며 온갖 벌레들과 뱀, 개구리들이 그 지역을 벗어나고자 애쓰는 것처럼.


그는 아버지의 딴살림으로 아버지 없는 학창 시절을 보냈다. 아버지의 부재가 가장 느껴졌던 곳은 목욕탕이었는데 혼자 몸을 씻으면서 부자가 같이 등을 밀고 있는 것을 보면 몹시 부러웠다. 중학교 2학년 때 목욕탕에 갔는데 한 아저씨한테 자신의 등을 밀어 달라고 부탁했더니 기꺼이 밀어주었고 자신도 아저씨의 등을 밀어 보답하고자 했으나 자신은 아들과 함께 와서 이미 등을 밀었다고 했다. 아버지가 있다는 건-참 부러운 일이었다. 다음날 학교에 갔는데 방송에서 자신의 이름을 호명하며 교무실로 오라고 해서 갔더니 어제 그 등을 밀어준 아저씨가 있었다. 너무 반가워서 어? 아저씨! 했는데 선생님이었다. 그가 다니던 학교는 중, 고등학교가 같이 붙어 있던 학교였는데 그 아저씨는 고등학교 선생님이었다. 그래서 그를 알아보지 못했었던 것.


아버지가 없는 그는 늘 용돈이 부족했다. 학교 학생들의 돈을 뺏는 것으로 그 어려움을 해결했다. 모르겠다. 다른 방법을 찾아보았는데 해결이 안 되었던 건지, 다들 용돈 없이 살던 시대에 왜 용돈이 필요했는지 모르겠지만 그는 학교 가는 길 어귀에서 만만해 보이는 아이들의 주머니는 터는 것을 재미 삼았다. 목욕탕에서 그의 등을 시원하게 밀어주었던 아저씨의 아니, 선생님의 아들도 그중 하나였다. 

그는 정학을 맞았다. 아버지가 있다는 것은 이렇게 든든한 일이었다.


인생은 늘 그에게 시련을 안겨주었다. 힘들 때 위로의 술 한잔 사주지 않았던 인생은 늘 그를 나락으로 내몰았지만 철이 들고 나서는 화해를 한 것일까. 제대로 된 어른으로, 언덕이 되는 아버지로 살려고 늘 노력하고 있다. 



감당할 수 없는 일들은 매년 우리를 덮친다. 일 하느라 나를 돌보지 못한 어머니 때문에, 튼튼한 울타리가 되지 못하는 아버지 때문에, 이놈의 시대가 나를!! 하며 남 탓만 하는 사람들이 있다. 아니다. 내 탓이다. 시련을 이겨내지 못하면 어른이 아니다. 오랜 시간 함께 믿고 일하던 직장동료의 비열함을 알게 되었다면 내 눈을 찔러야지 누굴 탓하겠나. 어른으로 산다는 것은 책임감을 이고 지고 가야하는 괴로운 길이지만 어차피 태어난 인생 열심히 달려 보는 거다. 


나에게 무뚝뚝하게 이야기하는 남편이 친구와 다정하게 통화하며 출근하는 모습을 보며 이런저런 생각을 해보는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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