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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상희 Mar 06. 2023

뜨거운 물을 엎었어요

조심하세요

방금 출근하는 남편에게 줄 커피를 타가다 뜨거운 물을 다리에 쏟았다.

커피를 담기 전 보온병을 따뜻하게 데우려고 뜨거운 물을 부어 한 바퀴 돌린다는 것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건지 다리에 엎고 말았다.


악-소리가 났지만 비명을 참았다. 젖은 바지를 어쩌지를 못하고 동동대다가 기껏 한다는 것이 수건을 꺼내 바닥을 급히 닦는 일이었다. 그러고 나서 찬물을 다리에 끼얹었다. 남편에게 들키기 싫어서였다. 무릎 위쪽이 금세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그나마 펄펄 끓던 물이 아니라 정수기 온수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남편은 옛날 아부지같은 그런 사람이다.

내가 으악하고 소리를 지르고 뜨건 물에 데었다는 것을 아는 순간 어디 다쳤냐는 소리는커녕 고함 같은 잔소리가 따라붙었을 것이다. 정신을 어디에 두고 있느냐, 그러니까 내가 일찍 자라고 안 했냐, 그러니까 뭘 공부를 한다고 새벽부터 일어나 앉았냐.


물론 그렇지 않았을 수도 있다. 양치를 하다 말고 달려 나와 내 다리를 살피고 냉찜질을 하고 다음부터 커피는 자신이 타겠으니 무리하지 말라고-하, 쓰고 나니 그럴 리가 없다는 생각만 자꾸 든다. 이제까지 보아 온 남편의 모습이 있으니까 말이다. 남편은 원래 다정한 사람이겠으나 표현은 아직도 서툰 사람이다.


밥을 먹고 나서는 남편에게 아무일도 없던 듯 커피가 든 보온병을 내밀며 고생하세요~하며 보냈다. 지금은 다리에 차가운 수건을 올려놓고 살펴보고 있는 중이다. 두 군데 정도 아직 벌건 기운이 보이지만 연고를 바르면 될 것 같다. 아침부터 뭔 일이래. 


남편은 내가 브런치에 글을 쓰는 것을 알고 있다. 얼마 전 나의 글을 읽는 독자들이 많이 늘었다고 하자 나에게 부탁을 했다. 자신의 이야기는 쓰지 말라는 거였다. 내 이야기의 화수분- 내 글을 읽지 않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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