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상희 Mar 07. 2023

자존감을 높이는 방법

이게 맞아?

한참 빵집을 하며 아기를 키우느라 정신이 없을 때였다.

집으로 전화가 왔다. 어릴 때 친구 현이었다.


건너 건너 집에 살던 현이는 우리 집에 자주 놀러 왔었다. 엄마는 누구와 친하게 지내라거나 누구와 놀지 말라거나 하는 말씀을 하지 않는 분이셨는데 어린아이 눈치에도 별로 탐탁해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우리 집에는 전화기며 소파며 각자의 방이 있었는데 방이 하나밖에 없는 현이는 그 방들을 돌아 넓은 마당에서 노는 것을 좋아했지만 눈치가 보인 나는 현이네로 가서 놀았다. 실컷 놀다가 현이가 차려준 밥상에는 밥과 고추장만 있었다. 산비탈을 깎아 넘어질 듯 서 있는 현이 집 바로 옆에 아주 작은 텃밭이 있었는데 거기에서 마늘종을 쪽 뽑아와서 밥상에 올려놓았다. 마늘쫑을 고추장에 찍어서 밥을 먹는데 어른이 된 기분이었다. 우리 동네에서 공깃돌을 가장 많이 가지고 있는, 밥도 차릴 줄 알던, 언니들과 싸우기도 잘하고 욕도 잘하는, 내가 무척 부러워하다 못해 존경스럽기까지 한 아이였다. 크면서 어울리는 부류가 달라지며 멀어진, 어릴 적 잠시 친한 친구가 전화를 했다.


잘 지내니? 결혼은 했니? 아이는? 나는 결혼을 했고 아들을 둘 낳았어.


내가 딸과 아들을 낳았다고 하니 자기는 아들을 둘 낳았다고 자랑을 했다.


집에 컴퓨터는 있니? 우리 집에는 두 대나 있어. 남편이 돈도 아주 잘 벌고 나한테 잘해 줘.


90년대 후반이었다. 우리 집에는 컴퓨터가 없었지만 가게에 한 대 두고 있었는데 그것을 몹시 안타까워하며 자기 집 컴퓨터 두대라고 자랑을 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뭐지?


왜 이런 황당한 전화가 왔나 알아보니 중학교 동창들에게 내가 시골에서 빵집을 한다는 소문이 돌았다고 한다. 공부 잘해봤자 장사한다더라. 시골이라더라. 뭐라도 될 줄 알았더니 애기엄마 됐다더라 뭐 이런 소문이었다고 했다. 동네에 짜장면집이 생겼는데 그 안주인이 중학교 동창이었다. 나를 알아본 동창이 내 소식을 전한 모양이었다.


그러고 나서도 몇몇 동창에게 전화가 왔다. 다들 약속이난 한 듯 자기 자랑을 늘어놓고 정말 내가 애 키우며 장사하고 있는지 확인하는 전화였다.


한동안은 몹시 화가 났다. 나에게 왜 이러는 거지?  자신들이 예상했던 것보다 잘 풀리지 않은 거라고 단정짓고는 자신의 자존감을 높이기 위해 누군가를 끌어다 붙인 비교대상이 나인 건가 하며 갑자기 잘 살고 있던 나 자신이 초라해졌었더랬다.

동창들은 자기들이 할 말만 했고, 정해진 답들만 질문했다.


가끔 그때의 황당했던 전화가 생각이 난다. 그래도 지금은 그 어처구니없던 기억에 피식 웃을 수 있으니 참 다행이다.


나는 성숙한 으른이니까.


다섯 시부터 아침을 차리다가 고추장만 줘볼까 하는 헛생각을 잠시 해보는 아침이다.








작가의 이전글 뜨거운 물을 엎었어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