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이 차다
'더 글로리'에서 가장 마음에 남는 대사를 꼽으라면 나는 <봄에 죽자>이다. 물에 뛰어 들어가던 부동산 아줌마가 동은에게 봄에 죽자며 왜 무겁게 스웨터를 입었냐고 타박하고는 둘이서 물에서 나온다. 왜 스웨터를 입었냐니. 눈물이 났다. 차가운 물속 같은 세상을 물에 젖은 스웨터를 입고 살아가더라 끝내 둘 다 잘 살아낼 것 같은.
봄은 잔인하다. 나는 죽겠는데 사방이 꽃이고 나는 죽고 싶은데 죽은 것 같던 나무에 새싹이 움튼다. 그걸 바라보는 마음은 지옥인데 무언가 실행할 기운이 나지 않는다. 봄은
나른하고 포근한 햇살을 받고 가만히 앉아 있으면 마음속의 지옥을 잠시 잊을 수 있다. 봄은 그렇다. 몰래몰래 마음에 스며든다. 위로 따위 받고 싶지 않다고 하는데도 자꾸 따뜻한 손으로 등을 슬슬 쓸어 준다. 고양이처럼 살금살금.
봄에 죽자.
하는 마음을 먹으면 봄 여름 가을 겨울이 다시 살아진다.
봄은 시작이니까. 죽을 둥 살 둥 또 살아가는 거니까.
더 글로리를 보면서 어릴 적 마음이 아팠던 나를 떠올리며 지금에 감사하다.
죽었으면 몰랐을 지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