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장미상회 01화

꽃이 피는 아이

무명의 기록집

by 나비란

엄마의 삶은 어쩌면 예정되어 있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엄마는 그 어떤 점쟁이의 말보다 다방 재떨이 운세가 살면서 가장 잘 맞았다고 말했다.

엄마가 처녀였을 때, 다방에는 운세 재떨이라는 것이 있었다고 했다. 둥근 재떨이에는 12마리의 동물 그림이 그려져 있었고, 자신의 띠에 맞춰 동전을 넣고 레버를 누르면, 손톱만 한 크기로 작게 말린 종이가 나왔다고 한다.

66년생 말띠 명숙 씨가 재미 삼아 동전을 넣었다. 재떨이는 종이를 뱉었고, 운세지에는 이런 문구가 적혀 있었다.

“오늘 당신은 대장장이와 같은 사람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대장장이라니. 웃기는 소리 하네. 요즘 같은 시대에 대장장이가 어딨어.’

엄마는 콧방귀를 뀌며 점사 종이를 구겨 버렸다고 했다.

하지만 여태 명숙 씨는 그때의 점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아직까지도 철을 다루는 아빠와 함께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엄마는 운세에 대해 이야기할 때면 ‘운명’이라는 단어보다 ‘팔자’라는 단어를 입에 더 자주 올린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운세 뽑기에 ‘대장장이’라는 말이 없었어도, 엄마는 아빠와 만났을 것이라는 것을.


엄마는 전라도의 한 방직 공장에서 일을 했다.

그곳에서 사귄 친구는 나의 고모가 되었고, 친구의 오빠는 나의 아빠가 되었다.

엄마는 명절이나 가족 행사를 할 때 고모를 만나면 꼭 하는 말이 있다.

“내가 너를 만나....”

한 번은 할머니 댁 마당에 식구들이 모두 모여 마른 고추 꼭지를 딴 적이 있다. 그때도 엄마는 말했다.

“내가 그때 너를 만나서...”

“나도 허벌나게 미안하게 생각 허네.”

엄마의 말에 고모는 죄를 지은 듯 사과했다.

엄마의 푸념 섞인 농담과 고모의 엉뚱한 인정에 그 자리에 있던 식구들과 할머니가 웃었다. 대장장이도 따라 웃었다.


고모가 맺어 준 이들은 부부가 되었다.

그리고 엄마 나이 스물둘, 아빠 나이 스물일곱에 내가 태어났다.

1987년 8월 26일 오전 10시 반, 경기도 하남시의 한 산부인과에서 3.6kg의 건강한 여자아이가 세상에 나왔다.

자연분만으로 아이를 낳은 산모들은 만 하루도 쉬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오전에 나를 낳은 엄마도 예외는 아니었다.

아빠는 챙겨 온 짐과 나를 안고서 엄마와 함께 병원 문을 나섰다.

셋이 되어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엄마는 이렇게 기억한다.

노랗고 붉은빛이 하늘을 물들였지만 어둑하지도, 희미하지도 않았던 날이었다고.

나를 낳았다는 소식은 전라남도 장성군 남면읍 비아까지 전해졌다.

그 당시 농사를 짓던 할머니는 서둘러 짐을 쌌다.

엄마의 산후조리를 돕고 첫 손주를 보고 싶은 마음에, 할머니는 해야 할 일을 남의 손에 맡기고 걸음을 재촉했다.

엄마의 기억으로는, 내가 태어난 지 사흘도 채 지나지 않았을 때 할머니가 집에 왔다고 했다.

할머니의 손에는 옷가방과, 엄마와 나를 위해 챙겨 온 물건이 들려 있었다.

엄마는 할머니의 손에 들린 그것을 보고 작게 비명을 질렀다.

할머니의 손에는 어디서 사 왔는지도 모를 무언가가 있었다.

눈치 없게 그것이 울었다.


‘꿔억 꿔 억 꼬끼오.’


엄마는 할머니가 갖고 온 닭이 너무 싫었다.

삼칠일도 지나지 않은 아기가 있는 집에 피를 묻히는 할머니가 미웠다.

하지만 할머니는 아랑곳하지 않고 닭을 잡아 손질했다.

아기에게 부정 탈까 봐 걱정했던 엄마를, 할머니는 오히려 나무랐다.

할머니는 손수 고르고 힘들게 가져온 닭이 그런 취급을 받자 기분이 나빴다.

그래서 이것 때문에 애가 잘못될 일은 없다고 하며 엄마를 다그치고, 닭을 고아 죽을 쒔다.

아이를 다섯이나 낳은 할머니의 말을, 엄마는 잠자코 따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다음 날, 내 몸에는 심한 태열이 올랐다.

그때 잡은 닭의 피로 물든 듯이 내 몸이 붉어졌다.

할머니의 당혹스러움과 엄마의 서러운 말들이 내 앞에서 오갔다.

아직까지도 엄마는 그날의 이야기를 꺼내면 왈칵 성을 낸다.

그놈의 닭 때문에 네가 그렇게 된 거라고.


그렇다. 아니, 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

나는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순간부터, 때때로 온몸에 꽃을 피웠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꽃을 피운다.

얼굴을 제외하고는 땀이 잘 나지 않는다.

그래서 날씨가 덥거나 운동을 하면, 열이 배출되지 않아 몸이 붉어진다.

엄마는 여전히 이 모든 것이 닭 때문이라고 믿고 있다.

할머니를 탓할 수 없으니, 애꿎은 그날의 닭이 욕받이가 된 것이다.

그렇게 닭을 두 번 죽여야만, 엄마와 할머니는 평화로울 수 있었다.

사실 꽃을 피우는 것은 나의 문제였지만, 나를 아끼는 이들은 자꾸 이유를 찾고 탓할 대상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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