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명의 기록집
책상 위로 200ml짜리 우유 하나가 무심히 툭 하고 떨어졌다.
그날의 나를 떠올려보면, 어쩐지 밖에서 키우는 개한테 먹이를 던져주는 장면이 자꾸 겹친다.
내 기분은 그 개 같은 것이었다.
어른들이 기억하는 어린 시절의 나는 명절날 넙죽 절을 하며 돈을 받아내는 순진함과 영민함이 섞인 아이.
유치원 졸업 행사 때 사회를 보는 부끄럼 없는 아이.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것 같은 야무져 보이는 아이였다.
하지만 실상 학교에서는 교과서 답이 적힌 전과가 책상 서랍장에 번듯하게 펴져 있어도 손을 들 용기가 없어서 발표 한 번 한 적이 없는 소심하고 겁이 많은 아이였다.
초등학교 때 선생님들은 종종 내게 특수반 친구와 짝을 하게 만들었다. 특수반 친구가 아니더라도 팔이 부러져서 도움이 필요한 아이라든지, 반에서 말썽을 부리는 아이라든지, 선생님과 친구들이 기피하는 아이는 모두 내 차지였다. 선생님 눈에는 내가 선량해 보이는 아이였을까? 아니면 다루기 좋은 아이였을까. 나는 도통 선생님의 마음을 알 수 없었다.
그 시절 촌지를 바라던 선생님이 엄마에게 학부모 봉사를 나오라고 에둘러 말했을 때, 나는 분홍 고무장갑만 챙겨간 엄마를 원망했어야 했다. 하지만 눈치 없던 엄마가 남들보다 몇 번을 더 청소하러 불려 갔음에도 일만 하고 왔었기에 엄마의 순진함에 대해 탓할 순 없었다.
어찌 됐든, 나는 그렇게 우리 반에서 누군가가 감당해야 할 봉사를 대신하는 아이가 되었다. 나는 여러모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아이가 분명했다.
알아듣지 못할 정도로 발음이 어눌한 아이, 머리에 녹지 않는 눈이 쌓이는 아이, 까만 목덜미에서 자꾸 물이 흐르는 아이, 좀약 냄새가 밴 옷을 며칠 동안 입는 아이.
나는 그 시절 나의 짝들을 보며 나와 다르다는 일종의 우월감을 느꼈다. 하지만 남들 눈에는 나도 그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는 것을 그땐 알지 못했다.
1교시를 마친 쉬는 시간, 우유가 친구들의 책상 위에 하나둘씩 올려지고 있었다. 하지만, 내 차례는 달랐다. 우유갑 하나가 책상 위를 미끄러지듯 지나쳐 바닥으로 떨어졌다. 당번의 친절이 내게는 미치지 않았다.
"야, 어, 미안.”
우재희가 소심한 사과를 던지고 재빨리 우유 상자를 밀어 옆으로 자리를 옮겼다. 나는 바닥에 누워있는 것을 집어 들기 위해 몸을 숙였고, 그 순간 마음속에서 툭하고 우유가 터졌다. 그리고 비로소 나는 나로 살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이 기억은 내가 최초로 기억하는 '나'에 대한 이야기가 되었다. 수많은 ‘나' 중에 내가 선택한 '첫 번째의 나'.
다음날 나는 우리 반에서 가장 인기가 좋은 혜란이를 관찰했다. 혜란이는 공부도 잘하고 주변에 친구들도 많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 반에서 가장 신체 발육이 좋은 아이였다. 가슴에 멍울도 올라오지 않은 아이들 속에서 그녀는 어른처럼 브래지어를 하는 유일한 아이였다. 혜란이의 몸은 일종의 권력이었다. 그녀의 큰 키는 친구들을 압도했고, 남자아이들조차 그녀의 힘을 부러워했다.
나는 그런 혜란이를 보며 그녀의 눈에 들어야 함을 직감적으로 알았지만, 그녀에겐 친구가 충분했고 곁에는 빈틈이 없었다.
하지만 기회는 우연하지 않게 찾아왔다. 나의 짝꿍이 축구하다가 다리를 깁스하게 된 것이다. 덕분에 나는 교실의 제일 앞에서 뒤로 자리를 함께 옮기게 되었다. 다친 짝을 돌보게 하기 위한 선생님의 조치였다. 다친 다리를 고쳐주는 흥부는 못 되지만, 그동안의 봉사가 내게 뒷자리를 물어다 주었다. 그렇게 해서 나는 초등학교 생활 처음으로 친구들의 등을 보는 자리에 앉게 되었다. 그리고 내 옆 분단에 혜란이가 있었다.
수업 시간에는 조별 활동이 많았기 때문에 나는 자주 혜란이와 같은 모둠을 이뤘다. 가까이에서 본 혜란이는 생각보다 투박한 아이였다. 그림을 그리거나 만들기를 하면 이상하게도 그녀의 작품은 일그러져 보였다. 나는 혜란이의 서툰 모습을 감춰주기 위해 그녀를 도왔고, 곁에 들어갈 틈을 조금씩 냈다.
나는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이 된다는 것은 여러 가지로 의미 있는 일이라는 것을 일찌감치 알고 있었고, 머지않아 그녀의 눈에 들어갔다. 우유 하나가 터진 지 불과 보름도 되지 않은 초여름날이었다.
혜란이의 호르몬 향이 짙어질수록 친구들은 혜란이에게 군림당했지만, 나는 그녀를 다룰 줄 아는 아이가 되고 있었다.
단단해 보이던 그녀도 학교 밖을 나서면 친구들을 찾아 놀이터를 배회하는 평범한 초등학교 3학년이었다. 당시 나는 시간이 많은 아이였기 때문에 그녀는 나를 끌어당겨 옆에 두었다. 우리는 떠돌이 개처럼 이 동네 저 동네를 기웃거리며 대문과 담장을, 문패와 꽃나무를, 개 조심과 바닥에 눌어붙은 껌을 따라 옮겨 다녔다.
특별할 게 없는 일상이지만 나눌 것이 많았던 우리는 매일 가까워졌다.
하루는 혜란이의 집 근처에 있는 소망교회 놀이터에서 그네와 미끄럼틀, 철봉 매달리기를 했다. 주변 놀이터 중 가장 가파른 미끄럼틀이 그곳에 있었다. 제일 높이 오르고 빠르게 내려오기를 여러 번, 엉덩이로 미끄럼틀에 윤을 내던 우리는 목이 말랐다.
“우리 집에 물 마시러 갈래?”
“그래, 좋아.” 나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그동안 혜란이와 많은 시간을 함께했지만, 혜란이의 집에 들어간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군청색 대문을 열고 오른쪽에 보이는 계단을 따라 오르다가, 깨지고 말라버린 화분 두 개를 지나치니 검은색에 금장으로 무늬가 입혀진 현관문이 보였다. 불투명의 유리가 둘로 나눠진 우리 집 철문과는 사뭇 달랐다.
소망교회 미끄럼틀보다 높은 혜란이네 집 문이 열리고, 나는 “안녕하세요!”라는 인사와 함께 그녀를 따라 들어갔다.
“지금이 몇 신데 이제 오냐?” 혜란이의 오빠가 쏘아붙이며 말했다.
하지만 혜란이는 오빠에게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내 손을 잡고 주방 쪽으로 이끌었다. 그때 혜란이의 오빠가 내게 소리쳤다.
“쟤 뭐냐, 야 쟤 뭐야!”
날 선 소리와 오빠의 손가락질이 내게 날아왔다.
그날, 하필 나는 왜 학교 체육복을 입었던 것일까.
나는 혜란이네 집에서 물 한 모금도 삼키지 못한 채 쫓겨났다. 더럽다는 이유에서였다.
아직도 나는 체육복 상·하의를 흰색으로 만든 것에 대해 의심스럽게 생각한다. 도대체 누굴 위해서. 보통은 엄마가 흰색 체육복의 희생양 되었지만, 그날은 온전히 나였다.
“쟤 뭐야, 엉덩이를 좀 봐, 야 너 나가. 이혜란, 저런 애랑 놀지 마.”
혜란이의 오빠는 엄마와 아빠 다음으로 나를 문밖으로 쫓아낸 세 번째 사람이 되었다.
남의 집에서, 그것도 더러워서 쫓겨났다는 것에 대해서 너무나 큰 수치심을 느꼈다. 하지만 부끄러움이 눈물을 감추진 못했다. 서러움에 소리 내 울며 혜란이의 집을 달아날 때도 그녀는 아무 말이 없었다. 다음날, 그리고 그다음 날에도 혜란이는 말이 없었다. 나는 혜란이의 집에서 쫓겨난 이후 혜란이에게 향했던 걸음을 늦췄다. 혜란이도 그날 이후 더 이상 나를 찾지 않았다.
무채색이었던 나는 여름이 깊어질수록 색이 짙어지고 있었다. 처음에는 혜란이를 등에 업고 어울렸던 친구들이 이제는 그녀보다 나를 찾는 일이 잦아졌다. 그동안 목소리를 내지 않아서 몰랐던 나의 ‘수다스러움’이 친구들의 재미와 결이 맞았던 것이다. 그리고 나와 더불어 친구들도 계절과 함께 성장하고 있었고, 어느덧 기울었던 힘의 균형은 서서히 맞춰지고 있었다.
여름 방학을 지나고 나니 과일처럼 친구들이 익어서 돌아왔다. 하지만 혜란만이 이른 성장을 멈추고 그대로였다.
사실 나는 친구들 사이에서 유독 눈에 띄는 혜란이가 부러웠다. 많은 친구가 그녀의 몸짓과 말을 따르는 것이 좋았다. 언제나 당차 보이고 친구들의 입에서 자주 들리던 그녀를 질투했다. 하지만 그녀의 인기는 한 철뿐이었고, 나는 깨달았다.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사람은 외면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끝으로 나에 대해 덧붙여 말하자면, 내가 선택한 첫 번째의 ‘나’는 ‘드러나는 나’였다. 그리고 이제 3학년 4반에서 내가 보이지 않는 사람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