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 오면2 – 돼지국밥과 국물이야기
아주 오랜만에 서울을 다녀왔다. 돌아오는 날 아침겸 점심으로 명동교자에 갔다. 내가 즐겨 다니는 인터넷 요리카페에서 명동맛집으로 적극 추천하길래 큰 기대를 안고 갔다. 그 전날 만났던 지인- 바로 근처 을지로에 직장이 있는-이 명동교자를 크게 추천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원래 자기 동네에서는 인정받는 게 쉽지 않으니까 처음 계획했던 대로 오픈런 해서 방문했다.
일행이 셋이었는데 우리는 언제 여기 또 오겠어! 라며 4개의 메뉴를 모두 시켰다. 비빔국수, 칼국수, 콩국수 그리고 만두였다. 나는 워낙 만두를 좋아하는데다가 서울은 내가 사는 남쪽보다 만두의 본고장 같은 느낌이라 기대했다. 일행 가운데 나를 뺀 두사람은 워낙 소식인들이고 식당에서 일인분 이상은 절대 소화하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리뷰에서 보았던 칼국수 사진에는 고기고명과 얇은 피 만두가 얹어져 있었다. 정말 기대되는 비주얼이다. 고기고명과 만두를 보면서 소고기 육수를 베이스로 한 칼국수일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니 이런! 국물을 한 술 떠보니 한번도 먹어보지 못한 독특한 맛의 국물이다.
식당 안에 걸려있는 메뉴에 대한 설명을 자세히 읽어본 일행이 칼국수 국물은 닭육수라고 말해주었다. 정말 다행히 닭이라면 치킨부터 삼계탕까지 가리지 않는 일행이 있어서 칼국수는 그의 차지가 되었다. 물, 비빔 하면 언제나 비빔! 외치는 일행 중 한명이 비빔국수를 먹었고 나는 콩국수를 먹었다.
한번도 먹어보지 못한 맛. 여행에서 만나고 싶은 게 그런 맛이니 어찌보면 성공적인 선택이었을지도 모른다. 부산 칼국수는 무조건 찐한 멸치육수를 베이스로 한다. 칼국수 하면 당연히 멸치육수일거라고 생각하던 나에게 닭육수에 고기고명 피만두가 든 명동교자 칼국수는 낯설고 이색적이었다. 식당에는 우리같은 여행객도 있었지만, 추억의 명동을 일부러 찾아 온 듯한 연세 지긋한 분들도 계셨다. 나에게는 낯선 맛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추억의 맛일수도 있음을 느낄 수있었다. 서울 칼국수라고 다 같지는 않을 테지만, 부산 칼국수 같은 진한 멸치육수맛은 또 없겠지?
서울사는 친구가 부산에 오면 무얼 먹으러 가자고 해야할지 모르겠다. 언제부터 부산이 돼지국밥과 밀면의 도시가 되었는지도 잘 모르겠다. 내가 식당에서 돼지국밥을 처음 먹어 본 건 스무살이 훌쩍 넘어서 였다. 그 때만 해도 군대를 다녀온 술자리 좋아하는 예비역 선배들이나 좋아하는 아재들의 음식이 돼지국밥이었다. 물론 지금도 돼지국밥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비슷한 것 같긴 하지만 이삼십년 전보다는 훨싼 돼지국밥집도 많아졌고 젊은 사람들- 특히 젊고 어린 여성들도 많이 좋아하는 것 같다.
부산돼지국밥의 유래에 대한 여러 가지 설이 있는데, 대체로 6.25전쟁으로 부산이 임시수도가 되면서 모여든 사람들이 돼지뼈를 삶은 물로 국을 끓이고 밥을 말아먹게 되었다는 게 정설인 것 같다. 부산 밀면 역시 피난 온 사람들이 냉면을 끓이려고 하니 메밀전분을 구하기 힘들어서 그냥 밀가루로 만들어 먹게 되었다는 걸 보면 부산 대표음식 둘다 전쟁으로 각지에서 몰려온 사람들로 가득했던 임시수도 부산의 역사가 오늘의 부산이 되었다는 걸 알 수있다. 어찌보면 서울 설렁탕이나 육개장이 소고기국물, 냉면도 소고기육수에 메밀면인데 부산 대표음식은 무언가 안쓰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런데 가만히 기억을 되집어 보면 돼지 삶은 물에 국을 끓여 먹었던 건 식당에서 파는 돼지국밥을 먹어보기 훨씬 전부터 있었던 경상도의 오랜 전통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아주 어렸을 때 나보다 한참 나이가 많았던 사촌 언니가 시골 할머니집 마당에서 전통혼례 로 결혼식을 올렸는데 그때 돼지를 한 마리 통째로 잡았고 그 돼지 삶은 물로 끓은 국을 먹었던 기억이 난다. 지금만큼 육식을 많이 하지 못했던 때라(어언 사십년은 훌쩍 더 넘은 옛날일이다) 그 고기삶은 물로 끓인 국물의 감칠맛은 생생히 기억이 난다.
결혼하고 나서 시댁에서 제사상을 차릴 때 수육을 올리는데, 그 때 역시 수육을 삶고 남은 물을 버리지 않고 그 육수에 무를 넣어 탕국을 끓였다. 지금은 친정이나 시댁 모두 정확히 언제 어떻게 달라졌는지는 모르겠지만 돼지수육 삶은 물 탕국은 완전히 사라지고 소고기, 무, 두부, 어묵을 넣은 탕국으로 바뀌었다. 아마도 우리 사는 형편이 나아지고 삶이 윤택해지면서 수육은 더 이상 물을 가득 넣어 삶지 않고 소고기도 양껏 넣어서 국을 끓이게 되었지 싶다.
시댁은 경상북도 내륙이고 친정은 경상남도 서부쪽인데 양쪽 다 비슷한 돼지수육 삶아낸 육수에 국을 끓여 먹었던 걸로 보면, 돼지국밥 6.25전쟁 기원설보다 훨씬 이전에 돼지국밥의 기원이 있었던 거라고 나 혼자 나름대로 추측해본다. 소고기 국물이 돼지고기 국물보다 더 낫다는 건 우리의 편견일지도 모른다.
부산에 살면 다들 최애 국밥집은 하나씩 다 갖고 있다는데, 나는 없다. 전현무계획에서 전현무무와 곽준빈이 부산에 내려와서 최고의 돼지국밥집을 찾아나섰는데, 도착한 곳은 곽튜브 동네 국밥집이었다. 전현무가 ** 국밥 @@국밥 대형 유명맛집 다 먹어봤는데 찐은 결국 동네 사람들이 오랫동안 즐겨가는 동네맛집이었다는 결론.
돼지국밥에도 맑은 국이 있고 뽀얀 국물이 있는데, 나는 맑은 국파다. 그리고 돼지국밥에는 무조건 부추무침이 따라 나오는데, 그 부추무침은 무조건 몽땅 주는대로 다 넣고 더 넣어 먹어도 좋다. 사실 내 어릴 때만 해도 부추를 부추라고 하지 않고 “정구지”라고 불렀다. 정구지가 어쩌다가 부추가 되어버렸는지 모르지만, 부산의 음식이라고 하면 바로 정구지다! 동래파전이 아무리 유명하다해도 어렸을 때 파전은 먹어 본 적이 없고 정구지전은 참 즐겨 먹었다. 부산에 와서 돼지국밥을 먹게 된다면 정구지(부추)를 꼭 듬뿍 넣어서 먹기를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