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사진일기

하얀 세상

제주도 한라산

by 윤성민

오늘은 어디서 잘까?

다음 장소는 어디로 가볼까?

여기서 몇 시쯤에 떠날까?

거기에 몇 시쯤 도착할까?

여기서 거기까지 걸어갈 수 있을까?

버스는 어디에서 몇 번을 타는 걸까?

숙박 앱, 지도 앱, 교통 앱, 제주도 관련 블로그, 카페 글...


제주도에서 가보고 싶은 곳은 많았지만 계획 없이 홀로 다녀서 스마트폰에 많이 의지하며 그때그때 일정을 이어나갔다. 제주도 여행의 목적이 그냥 멍하니 있고 싶어서였는데 오히려 현지에서는 여행 일정에 대한 고민으로 멍하니 있을 여유가 없었다. 여기라는 장소에 오면 자꾸 다음 장소를 생각하고 고민하며 '지금', '여기'를 온전히 즐기지 못하였다. 여행이 이렇게 흘러가는 것이 계속해서 아쉬웠다.

제주도를 떠나기 하루 전날 새벽에 눈이 내린다는 일기예보를 보았다. 눈이 다 녹아버린 제주의 겨울을 보며 내심 많이 아쉬웠었는데 눈 소식에 무조건 한라산에 올라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관음사-백록담-성판악 9시간 코스로 등산을 시작했다. 9시간의 장거리 산행이라 정상에 언제쯤 도착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없었다. 내가 생각할 것은 바로 앞 발걸음 디딜 바위 찾는 일 밖에 없었다. 한걸음 한걸음 바위를 딛고, 가쁜 숨을 쉬고, 하얀 세상을 눈에 담았다. 내 발걸음만 생각하며 한발 한발 나아갔다.


한라산 밖에서의 일은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리고 세상은 하얗기만 했다.

멍하니 있고 싶어 했던 여행의 목적을 눈 내린 한라산에서 이루었다.


-2017.01.13 제주도 한라산-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