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 여행의 막바지 즈음 아바나의 오비스포 거리를 걷다가 굵은 장대비를 만났다. 천막 아래에서 비가 그치기를 기다렸다가 다시 오비스포 거리를 걷는데 배수가 잘 안된 거리의 곳곳에는 물웅덩이가 생겨 있었다.
사람들은 그 물웅덩이를 무심히 그리고 분주히 지나쳤고 나는 쪼그려 앉아 물웅덩이에 비친 거리의 모습을 관찰하였다. 그리고 카메라를 꺼내 수면에 닿을 듯 말듯한 낮은 위치와 각도로 물웅덩이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지나가던 사람들은 그런 나를 관찰하기 시작하였고 카메라를 들고 여행하던 몇몇 외국인들은 나와 같은 방법으로 사진 찍기를 시작했다. 시선이 바닥 아래까지 내려갔다가 온 후에야 쿠바가 관광지가 아닌 여행지로 보이기 시작했다.
쿠바 아바나 ⓒ윤성민
비 온 뒤 생기는 물웅덩이의 반영은 사진에서 특히 매력적인 소재이다. 평소에는 볼 수 없었던 세상의 모습을 땅으로부터의 시선에서 세상을 조각조각 비추어주기 때문이다.
아래 민서가 촬영한 사진은 반영으로 비친 앙상한 나뭇가지들이 계절의 쓸쓸함을 전해준다. 그리고 그 쓸쓸한 길을 걸어가는 뒷모습의 학생은 무지개색 우산을 쓰고 있다. 톤 다운된 사진의 전체적인 분위기에서 무지개
색 우산은 이 사진에 생명력을 불어넣어준다.
재훈이가 촬영한 사진은 누군가 철문을 붙잡고 있는 모습이 반영으로 촬영되었다. 철문을 잡고 있는 저 손은 마치 어느 방향을 가리키고 있는 듯도 하다. 보통 뒷모습은 외롭고 쓸쓸한 느낌을 전해주는데 이 사진의 뒷모습에서는 힘이 느껴진다.
중학생 누나 민서가 촬영한 사진 / 초등학생 동생 재훈이가 촬영한 사진
두 사진을 찍은 민서와 재훈이는 남매이다. 장난기 많고 활기차 보이는 외모가 닮기도 했지만 남다르고 진중한 시선을 둘 다 지녔다는 것이 이 남매의 가장 큰 닮음이다.
무한히 넓고 높은 하늘에는 경계가 없다. 그래서 누군가 얼마만큼의 선을 그어 가질 수도 없다. 하지만 땅에 팬 곳곳의 웅덩이에는 그 너비만큼의 하늘이 담겨있다. 그래서 아래 사진들은 영리한 사진이다. 자신이 원하는 만큼의 하늘을 자신의 발아래에서 찾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오려 담은 자신만의 하늘에서 몸을 펼치는 아이들은 하늘 품 안에서 꿈을 펼친다.
중학생 현미와 정민이가 촬영한 사진
물웅덩이 앞에서 발걸음 한번 멈춰보자. 그러면 물웅덩이에서 낯선 시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세상의 가장 낮은 곳에서 세상을 올려다 비추는 그 시선은 앞만 보며 살아가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시선이기도 하다.
ⓒ윤성민
위의 학생 사진들은 단양 청소년 사진 동아리 '단빛' 학생들이 촬영한 사진입니다.
아이들은 사랑과 관심을 받으며 자랍니다. 많은 독자분들께서 아래 '단빛'온라인 전시회 사이트에 방문하시어 아이들에게 관심과 사랑을 표현해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