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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연호 Jun 23. 2019

당신의 개는 정말 행복한가?

왈왈! 엄마 보고싶어!

한 가지 상상을 해보자. 머나먼 미래, 인류가 지배하고 있던 지구에 또 다른 외계 고등 생명체가 침입했다. 그들은 인간보다 월등한 기술과 육체로 순식간에 지구를 점령한다. 인간은 그들의 애완동물이 된다. 애완동물로서 인간은 (다행히도) 그들에게 많은 사랑과 보살핌을 받는다. 인간 부모 밑에서는 기대할 수 없었던 더 나은 교육, 놀이, 생활환경을 보장받는다. 매 끼 최고급 요리를 먹는다. 다만 불편한 점은, 가족들과 뿔뿔이 흩어져 ‘입양’되어 그들의 집 안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것이다. 당신은 행복할까?




이 요상한 질문의 요지는 ‘과연 무엇이 인간을 행복하게 하는가?’이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을 먹고 편안한 생활을 한다고 해도 가족, 친구들과 모두 떨어져 홀로 다른 생명체의 애완동물이 되어 살아가는 삶이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제 이 질문의 대상을 인간이 아닌 개로 바꿔보자. 인간만큼 발달된 지능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해도, 개 또한 기쁨, 슬픔, 외로움, 그리고 모성애 정도는 느끼지 않을까? 어미에게서 떼어진 채 인간의 집에서 인간의 손에 의해 길러지는 개들은 과연 행복한가.




한 애견인이 외출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다. 문 여는 소리에 쏜살같이 달려온 개가 꼬리를 흔들며 헥헥댄다. 그는 이걸 개가 자기를 ‘반긴다’고 한다. 개를 키우는 친구 집에 놀러 갔던 날, 그 집에 있던 개는 날카롭게 크르릉대며 내 종아리를 할퀴고 이빨을 드러내 보였다. 친구는 개가 다른 사람을 보니 ‘좋아서’ 그랬다고 한다. 글쎄. 내게는 ‘나를 어미에게 데려다 달라’고 애원하는 듯 보였는데 어차피 개가 말을 하지 못하니 앞으로도 영영 모를 일이다. 하지만 개가 사람을 당연히 좋아할 거라고 짐짓 단정해 버리는 것을 보니 확실히 한 가지는 알 수 있겠다. 인간은 참 오만하다.


반가워서 그런거... 맞겠지?


인간과 개의 생활방식은 다르다. 아파트는 인간이 사는 공간이다. 인간은 그 공간에 개를 넣고, 인간의 생활방식을 주입한다. ‘훈련’이라 불리는 과정을 통해 개들은 인간처럼 일정한 장소에 변을 볼 것을 강요당한다. 본능대로 장판이나 소파를 물어뜯어서도 안 된다. 때 맞춰 개 사료를 주고(매끼 최고급 요리를 먹이는 일은 드물다) 목줄 묶은 채 길거리에 산책을 다니는 것으로 인간은 개를 ‘사랑한다’ 말한다. 인간이 개와 놀아주는 건지 개가 인간과 놀아주는 것인지는 불분명하다. 간혹 정말로 개가 주인을 좋아하고 따르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마저도 내 눈엔 일종의 스톡홀름 신드롬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인간은 예로부터 다양한 방식으로 동물을 이용해 왔다. 소는 농사를 짓는 데 썼다. 말은 이동수단으로 타고 다녔으며 양은 털을 깎아 옷을 만들어 입었다. 이용가치가 다하면 대개 도축되어 식량이 되었다. 개 또한 ‘애완용’으로 이용하고 있을 따름이다. 다른 동물들과 달리 조금 특수한 관계로 생각되어지는 경향이 있으나 분명 이용되고 있는 것 맞다. 애완용으로. 물론 그것을 비난할 생각은 전혀 없다. 나도 육식을 좋아하며 인간이 동물을 이용하는 것에 대해서 별다른 반감은 없다. 하지만 도축되어 식량으로 사용되는 동물들이 살아있는 동안만큼은 최대한 고통을 덜 받게끔 사육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이 기준을 개에게도 똑같이 적용시켜야 한다고 생각할 뿐이다. 개의 마음이 어떨지 항상 세심하게 살피고, 가능한 스트레스를 받지 않도록 배려해야 할 의무가 있다.



삼겹살이나 치킨을 먹으면서 ‘이 돼지나 닭들이 인간에게 먹히게 되어서 정말 기뻐할 거야’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을 것이다. 개를 키우는 사람들, 특히 아파트나 원룸 같은 곳에서 개를 키우는 사람이라면 개에게도 마땅히 같은 기준을 가져야 한다. 자신들의 기쁨을 위해 개를 키우면서 ‘이 개도 당연히 행복할 거야’라고 생각하고 있지 않는가? 그런 오만한 마음은 당장 버려야 한다. 그럴 수 없다면 차라리 개를 키우지 않는 것이 더 개를 사랑하는 일일 것이다. 당신의 개는 당신의 생각만큼 행복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아, 물론 고양이와 이구아나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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