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에른 남부, 알프스 자락에서 열린 결혼식과 애프터 파티
지난번에 소개했던 결혼식은 그야말로 독일판 '도시남녀의 결혼법'이었죠. 번화한 도시 라이프치히에서 멋진 시청 건물을 빌려 식을 올렸으니까요. 그런데 오늘 소개할 결혼식은 완전히 다른 곳에서 열렸습니다. 고층 빌딩이라곤 전혀 없는, 남부 바이에른의 작은 시골 마을에서 말이에요.
여기는 '슈타인 안 데어 트라운(Stein an der Traun)'이라는 이름의 작은 마을입니다. 바이에른 주 동남쪽, 그중에도 거의 오스트리아와의 국경 지대에 위치한 '트라운로이트(Tranreut)' 시의 일부예요. 우리로 따지자면 '읍면리' 정도의 단위를 떠올리시면 되겠네요.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국경은 알프스 산맥을 지나갑니다. 사실상 산맥을 기준으로 국경이 나눠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말이죠. 실제로 위 사진 좌측 능선을 유심히 보시면, 저 멀리 흰색 눈으로 덮인 산봉우리를 발견하실 수 있을 거예요. 같은 독일이라도 대도시에선 좀처럼 보기 힘든, 진귀한 풍경입니다.
알프스가 보이는 시골 동네. 여기서 살아가는 두 남녀는 마을 근처의 수도원에서 결혼을 올리기로 했습니다. 여기는 유서 깊은 '제온 수도원(Seeon Monastery)'인데요, 그 시작은 무려 994년에 설립된 베네딕토회 수도원이었다고 하죠. 바이에른과 잘츠부르크 양쪽 모두에 가까운 위치라, 중세에는 종교·문화적으로 중요한 역할도 했고요. 신성로마제국이 끝나가던 1803년 이후에는 바이에른에서 세속화 정책을 시행하면서 수도원이 해산되고, 건물이 국가 소유가 됐답니다.
한국에서는 예쁜 교회나 성당에서 결혼식을 올리는 경우도 종종 있으니 이상할 게 없지만, 지난번 제가 소개해드린 결혼식 1편(<독일에서는 정말 혼인신고만 할까?> 참고)을 읽으신 분들이라면 '어? 이래도 되나?' 싶으실 거예요. 독일에서는 신분을 관리하는 관청 '슈탄데스암트(Standesamt)'가 주관하는 결혼식이 필수이고, 법적 혼인관계를 선언할 수 있는 권리 역시 슈탄데스암트의 직원인 '슈탄데스베암테(Standesbeamte)'에게만 있다고 했으니까요. 시청 건물이 아닌 곳에서 결혼식을 해도 괜찮을까요?
네, 그 비밀은 이렇습니다: 트라운로이트 시(市)의 슈탄데스암트가 여기, 제온 수도원에 출장소를 두고 있어요. 지난 글에서 설명해 드린 대로, 독일은 기본적으로 거주지 관할 슈탄데스암트에서 혼인을 접수해야 합니다. 따라서 이 부부 역시 트라운로이트의 슈탄데스암트에 결혼식 주관을 요청해야 하죠.
하지만 실제 결혼식 자체를 꼭 슈탄데스암트 건물 안에서만 할 필요는 없어요. 많은 슈탄데스암트'아우센슈텔렌(Außenstellen)', 즉 '외부 예식 장소'를 지정해 두기 때문입니다. 지난번에 소개했던 라이프치히 결혼식 역시 슈탄데스암트 건물 옆에 있는 시청 건물에서 진행됐었죠.
여기도 마찬가지예요. 제온 수도원은 트라운로이트 슈탄데스암트가 공식적으로 지정한 법적 결혼식 장소입니다. 원하는 날짜에 사용을 신청하면 여기서 공식적인 결혼식을 진행할 수 있는 거죠. 실제로 수도원 내부를 돌아다니다 보니 '슈탄데스암트(Standesamt)'라고 쓰인 입구도 찾아볼 수 있었답니다.
덕분에 트라운로이트의 작은 마을, '슈타인 안 데어 트라운'에 사는 이 커플은 멋진 수도원 결혼식을 계획할 수 있었던 거네요.
약속된 시간이 다가오고, 하객들이 먼저 내부로 들어갔습니다. 수도원 건물을 활용한 홀이어서 그런지 사뭇 경건한 느낌이 감도는 공간이었어요. 크기도 작고 아늑한 느낌이었고요. 특히 조명이 그리 밝지 않아서 홀이라기보다 오히려 큰 성당에서 볼 수 있는 지하 예배당 같은 느낌도 받았답니다.
신랑 신부가 입장하고, 결혼식이 시작됐습니다. 전체적인 흐름은 지난번에 소개한 '시청 결혼식'과 크게 다르지 않았어요. 기억나시나요? 혼인관계에 법적 지위를 부여할 수 있는 유일한 공무원 '슈탄데스베암테(Standesbeamte)'가 가장 앞쪽에 앉아있어요. 그가 진행하는 순서에 따라 두 사람은 반지를 교환하고, 혼인서약서에 서명하죠. 이 날엔 신랑 측과 신부 측 각각 한 사람씩 증인도 함께 서명했답니다.
어둡고 아늑한 곳에서 진행된 덕분일까요? 두 사람의 법적 신분이 재탄생하는 그 순간은 마치 비밀스러운 의식이나 엄숙한 선서가 진행되는 것만 같았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끝나면 '수도원 결혼식'이 아니죠. 멋진 수도원 교회(Klosterkirche)에서 잊지 못할 추억을 남길 수 있는 기회도 남아있으니까요. 이 교회는 수도원이 설립되던 994년에 함께 지어졌습니다. 이후 중세와 근현대의 긴 역사를 거치며 확장되기도 하고, 일부는 재건되기도 했죠. 그래서일까요? 로마네스크 양식의 두꺼운 기둥과 라운드 아치, 바로크와 로코코 양식의 천장 프레스코화 등 다양한 시대의 양식이 공존하며 멋진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신부의 사촌언니가 직접 하나하나 고르고 묶은 꽃다발 장식도 인상적이었어요. 흰 천과 꽃다발만 둘렀을 뿐인데, 교회 공간 전체의 분위기가 달라졌죠. 오전에 슈탄데스베암테와의 '혼인 서약'을 마치고 두 시간 정도 시간이 비었는데, 그때 열심히 단장을 마쳤습니다. 파란 꽃잎들이 화창한 여름날에 탄생한 신혼부부에게 행운을 빌어주는 것만 같더라고요.
그렇게 모든 준비가 끝나고, 예배당에서 '결혼식 2부'의 막이 올랐습니다. 오전보다 더 많아진 하객들과 함께요.
교회에서 하는 결혼식이다 보니, 이번에는 슈탄데스베암테가 아닌 성직자가 결혼식을 주관했어요. 이 날 결혼식을 주관한 사제는 가톨릭 교회 신부님이셨습니다. 굵은 동굴 목소리가 인상적이었죠. 어린 복사들의 도움을 받으며 신랑 신부에게 축복을 내리고, 혼인서약서를 읽는 과정 등을 주관하셨어요.
그런 모습을 제외하면 한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기독교식 혼인 예배와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중간에 신랑을 향한 신부의(!) 세레나데도 있었고, 부모님을 비롯한 어른들의 덕담도 한 마디씩 들었고요.
결혼식을 모두 마치자 먼저 신랑 신부가 행진하며 교회 건물 밖으로 퇴장했습니다. 한국에서는 보통 두 사람이 행진한 후 다시 앞으로 모여서 원판 사진을 찍는 게 으레 이어지는 순서인데, 그렇지 않았죠. 먼저 나온 신랑 신부는 교회 건물 밖에서 하객들을 기다리고 있고, 잠시 후 뒤따라 나온 하객들이 차례로 두 사람에게 다가가 따뜻한 인사를 건네기 시작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이 시간이 참 좋았어요. 결혼식을 경험해 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본식이 끝나고 신랑신부가 피로연장을 돌며 인사를 하더라도 어쩔 수 없이 얼굴을 놓치는 사람이 생기기 마련이거든요. 그런데 이렇게 하면 시간은 좀 걸리더라도, 원하는 하객들은 누구나 신랑 신부에게 따뜻한 인사를 건네고 돌아갈 수 있겠죠. 귀여운 화동들이 만들어주는 길을 따라, 저도 두 사람에게 축하 인사를 건넸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날의 결혼식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습니다. 결혼식 참석자들을 위한 애프터 파티가 준비돼 있었기 때문이죠. 두 사람이 살고 있는 '슈타인 안 데어 트라운'에는 지역 특산 맥주를 생산하는 양조장이 하나 있는데, 파티를 위해 그 양조장에서 운영하는 레스토랑을 빌렸더라고요.
레스토랑에는 화창한 날씨를 마음껏 즐길 수 있는 마당석이 준비돼 있었습니다. 신랑 신부는 파티를 위해 그 마당을 통째로 빌렸죠. 가족과 친지를 비롯해 신랑 신부의 친구들, 그리고 두 사람을 축하해 주러 온 많은 지인들이 충분히 앉을 수 있도록 말이에요.
600명 정도가 살아가는 이 작은 동네에서 이 정도 모인 거면, 두 사람의 결혼을 마을 사람들이 다 알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도 들더라고요.
오후 세시 삼십 분. 커피와 케이크, 그리고 입맛을 돋우는 상큼한 음료들과 함께 파티가 시작됐습니다. 사람들은 주류를 포함한 원하는 음료를 언제든 계속 시켜 마실 수 있었죠. 신랑 신부가 사전에 테이블을 센스 있게 배치해 둔 덕분에 가까이 앉은 사람들과 불편함 없이 대화를 나누면서요.
준비한 파티 순서가 하나씩 진행될수록 마당을 채우는 웃음소리도 덩달아 커졌습니다. 신랑 신부와 하객들이 힘을 합쳐 함께한 레크리에이션 시간에는 다들 큰 박수를 보냈죠. 두 사람을 축하하기 위한 지인들의 축하 공연도 있었고요. 물론 저처럼 가만히 앉아서 잔을 홀짝거리기 좋아하는 사람도 전혀 불편하지 않게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답니다.
파티는 준비된 순서를 하나씩 거치며 금세 저녁 식사로 이어졌습니다. 오후부터 계속 먹고 마시는 중인데 저녁 식사라니요! 하지만 계속 웃고 떠들어서 그런지, 또 먹게 되더라고요. 레스토랑에서는 뷔페식 만찬을 제공했고, 슈니첼과 슈바인학센을 비롯해 전형적인 독일식 요리들이 접시를 채웠습니다.
저녁 식사까지 마치고 파티가 무르익을 무렵, 마당은 운치 있는 야외 무도회장으로 변신했습니다. 신랑 신부가 먼저 로맨틱한 음악에 맞춰 왈츠를 시작했고, 이후에도 다양한 장르와 빠르기의 음악이 이어지며 사람들이 자유롭게 춤을 출 수 있도록 유도했어요.
물론 다 같이 일어나서 신나게 춤을 춘다거나 하는 순간은 없었지만, 그래도 제법 많은 사람들이 앞에 나가서 댄스 타임에 기꺼이 몸을 던졌답니다(?). 특히 K-POP이 중간중간 나올 때마다 열광하는 한 독일 소녀를 보면서 굉장히 재미있는 장면이라고 생각했더랬죠.
그렇게 파티는 늦은 밤까지 이어졌습니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서 중간중간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시는 분들도 계셨어요. 저는 가장 마지막까지 남아있었던 사람들 중 하나였는데, 숙소에 돌아와서 시계를 보니 자정이더라고요. 아침 열 시부터 수도원에서 일정을 시작했었으니, 그야말로 하루 종일 결혼식에 있다 온 셈이죠. 물론 그중에 한 여덟 시간은 먹고 마시는 시간이었지만요. 맥주의 나라 독일답게 술고래(!)인 독일 친구들 사이에서 잘 살아남았으니 다행이라고 할까요? 확실한 건, 웬만해서는 쉽게 해 보지 못할 만한 특별한 경험을 하고 왔다는 겁니다.
이렇게 제가 경험한 두 번째 결혼식을 소개해드렸어요. 어떠셨나요? 대도시 라이프치히에서 열렸던 '시청 결혼식'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가 전해지셨나요? 제 개인적으로는 한국과 독일을 통틀어서 가장 기억에 남을 만한 결혼식이었답니다.
다음 글에서는 독일 중부의 작은 소도시에서 열린 가족적인 분위기의 결혼식을 소개할게요. 아마 제가 지금 살고 있는 지역을 최초로 소개하는 글이 되기도 하겠네요. 독일은 같은 소도시여도 지역마다 색깔이 다채로워서 또 다른 느낌을 받으실 수 있을 거예요. 금방 다음 이야기도 들고 올게요. 많은 관심 부탁드려요.
시리즈 1편: <독일에선 정말 혼인신고만 할까?>
https://brunch.co.kr/@nachklang/12
3편(시리즈 完): <독일 결혼식 마지막 편: 스몰 웨딩의 정석>
https://brunch.co.kr/@nachklang/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