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결혼식 마지막 편: 스몰 웨딩의 정석

음악의 도시 존더스하우젠에서 만난, 소박한 사랑의 풍경

by 나흐클랑

독일의 결혼식 이야기 3부작 중 마지막 이야기를 소개하려고 합니다. 앞서 우리는 대도시의 멋진 시청에서 열린 결혼식, 알프스 자락의 시골 마을에서 열린 결혼식을 살펴봤는데요. 오늘은 독일 중부지방, 고요하고 아름다운 소도시로 가 볼 거예요.


여기는 존더스하우젠(Sondershausen)이라는 도시입니다. 독일의 중심, 튀링엔(Thüringen, *튀링겐) 주(州)에 속한 존더스하우젠은 인구 2만 명이 조금 넘는 작은 도시예요. 우리에겐 생소하지만 튀링엔 안에서는 '음악의 도시'라고 불릴 정도로 문화적 유산이 많은 도시죠. 주변에 산과 공원이 많아 전반적으로 조용하고 한적한 동네지만, 과거에는 한 가문이 다스리던 작은 나라의 수도였기 때문에 멋진 성(Schloss)도 있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이 아름다운 동네에 대해서는 차차 여러 번에 걸쳐서 소개하도록 할게요. 우선은 여기서 열린 소박한 결혼식부터 만나보시죠.


존더스하우젠 시청. 슈탄데스암트(Standesamt) 역시 이 건물 안에 있다.
시청 정문을 바라보고 오른쪽으로 돌면 결혼식을 위한 Trausaal(트라우잘; 예식홀)과 인포메이션 센터가 있다.

존더스하우젠은 작은 도시이기 때문에 시청과 *슈탄데스암트가 함께 있습니다. 그래서 결혼식을 진행하기 위한 예식홀(Trausaal) 역시 같은 건물 안에 마련돼 있고요. 결혼식이 열리는 건물이 어딘지 헷갈릴 염려는 없겠네요.


시청 건물은 총 3층으로 돼있고, 예식홀은 1층에 있습니다. 건물 외부에서 바로 들어갈 수 있는 입구가 따로 마련돼있어서 하객들이 찾아가기에도 좋아보였죠.


*슈탄데스암트: 출생, 혼인 등 시민들의 신분과 관련된 업무를 하는 관청

존더스하우젠 시청의 예식홀 모습.

입구 안쪽으로 들어가자 작은 예배당처럼 생긴 예식홀이 나타났습니다. 전반적으로 하얀 톤을 사용해 통일감도 있고, 결혼식이라는 테마에도 잘 맞네요. 다만 사람에 따라서는 너무 평범하다고 느낄 수도 있겠죠. 특히 시리즈 1편에서 함께 봤던 라이프치히 시청 홀과 비교하면 화려함보다 단아함에 가까운 공간이니까요. 같은 '시청 결혼식'이어도 도시마다 공간의 분위기가 이렇게나 천차만별입니다.


결혼식 시작을 앞두고 하객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

예식 시간이 가까워지자 하객들이 하나 둘 안으로 들어와 자리를 잡았습니다. 이 날 결혼하는 커플은 신랑이 한국인, 신부가 독일인이었는데요. 신랑 하객으로는 근처에 사는 한국인 친구, 지인들이 참석했고 신부 하객으로는 직계 가족들이 참석했습니다. 존더스하우젠에서 멀리 떨어진 함부르크에서 귀한 걸음 해 주셨죠.


그런데 정말 신기하네요. 텅 비었을 때와 사람들이 함께 모여있을 때, 같은 공간이어도 분위기가 이렇게나 달라지는군요. 역시 공간의 분위기를 결정하는 마지막 열쇠는 사람인가 봅니다.


참석한 결혼식 모두 슈탄데스베암테가 중년 여성이었다. 말하고 보니, 그렇다면 슈탄데스베암틴(Standesbeamtin; 여성형)이라고 해야 더 정확하겠다.

이 날도 어김없이 *슈탄데스베암테(Standesbeamte)가 결혼식을 주관했습니다. 재미있는 사실 하나는, 제가 지금까지 가 본 결혼식에서 슈탄데스베암테는 항상 중년 여성이었다는 겁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 건 아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중년 여성의 차분하고 따뜻한 말투가 이 자리에 잘 어울린다고 생각해요. 이 '시청 결혼식'은 엄밀히 말하면 법적 관계를 부여하는 행정 절차이지만 동시에 축하 행사의 자리이기도 하니까요. 말투가 너무 딱딱하지 않으면서도 동시에 공적인 무게감을 줄 수 있는, 노련한 분들이라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슈탄데스베암테: 혼인의 법적 효력을 선언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유일한 공무원

중요한 순간을 놓치지 않고 담으려는 카메라맨의 열정.

결혼식에는 특별한 요소도 하나 들어있었습니다. 신랑의 지인 중 한 사람이 휴대폰을 들고 계속 상황을 실시간으로 찍고 있었어요. 이는 사실 한국에 계신 신랑의 부모님을 위한 배려였는데요, 결혼식이 진행되는 장면을 실시간으로 보실 수 있도록 휴대폰으로 영상통화를 건 뒤 계속 카메라로 현장을 담았던 것이죠. 덕분에 결혼식 중에 이렇게 열정적인 카메라맨(?)의 모습도 함께 볼 수 있었답니다.


열렬한 축하와 환호 속에 결혼식이 마무리됐다.

신랑의 지인들이 함께 준비한 축가를 끝으로 결혼식은 마무리됐습니다. 신부는 출산 예정일을 한 달 정도 앞둔 상태였는데요, 만삭의 몸이라 움직이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도 불구하고 환한 얼굴로 하객들에게 감사 인사를 건넸습니다. 축가를 들으면서는 촉촉해진 눈가를 연신 훔치기도 했고요.


신혼부부와 신랑 지인들이 함께 찍은 사진.

사실 이 날 원래는 비 예보가 있어서 걱정했었는데, 다행히 날씨가 무척 좋았어요. 덕분에 홀을 나와 야외에서 사진도 여러 번 찍었답니다. 성으로 올라가는 계단은 평소에도 존더스하우젠 사진 명소 중 하나로 꼽히는데, 이 날 특히 사진이 참 잘 나왔죠.


카페 필레(Cafe Pille)에서 만날 수 있는 메뉴들.

사진 촬영까지 모두 끝나자, 사람들은 다 함께 카페로 이동했습니다. 존더스하우젠에는 무려 1836년부터 운영한 카페가 있어요. '카페 필레(Cafe Pille)'라는 곳인데, 심지어 이 튀링엔 주에서 가장 오래된 카페라고 하죠. 옹기종기 예약석에 둘러앉아 각자 원하는 음료를 시키고, 케이크를 먹기 시작했습니다.


말이 나온 김에 음식 이야기로 잠깐 샐까 하는데요, 가장 왼쪽 사진에 보이는 커피는 독일어로 '아이스카페(Eiskaffee)'라고 하는 음료입니다. 영어로 번역하면 '아이스커피'인데, 우리가 생각하는 바로 그 아이스커피의 모습과는 사뭇 다르죠. 독일에서는 '아이스(Eis)'를 얼음뿐 아니라 아이스크림을 지칭하는 단어로도 써요. 그래서 독일의 아이스카페는 블랙커피 안에 아이스크림을 한 두 스쿱 정도 넣고, 그 위에 휘핑크림과 드리즐을 추가한 메뉴랍니다.


신랑이 준비한 폴라로이드 카메라로 신랑이 하객들의 사진을 찍고 있다.

편안한 분위기가 무르익을 무렵, 신랑은 준비해 온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꺼내 하객들의 사진을 찍기 시작했습니다. 커플로 찍기도 하고, 가족 단위로나 혼자 찍기도 했죠. 원래 신랑의 의도는 하객들에게 기념으로 한 장씩 사진을 주는 거였다고 하는데, 센스 있는 하객들은 오히려 역으로 아이디어를 냈어요. 그 아이디어는 바로...


방명록에 붙인 폴라로이드 사진. 훨씬 더 풍성해보인다.

하객들이 방명록에 남긴 축하 인사말 옆에 각자의 사진을 붙여주자는 거였습니다. 귀엽죠? 방명록에는 하객들의 얼굴과, 한국어와, 독일어가 함께 뒤섞여 적혔고, 마침내 신랑신부의 두 손에 예쁘게 전달됐습니다. 나중에 언제라도 이 방명록을 펼쳐보면 이 날의 장면들이 새록새록 되살아날 수 있겠네요. 성대하거나 화려하진 않았지만, 가장 가까운 사람들과 편안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던 결혼식이었습니다.



이렇게 세 번째 결혼식까지 소개를 마치면서, '독일 결혼식' 시리즈가 끝났습니다. 한국 결혼식과 비교했을 때 다른 점도 명확하지만, 각각의 결혼식 마다도 차이가 있다 보니 어디 가서 "독일 결혼식은 이렇더라"라고 딱 잘라 말하기가 참 어렵겠더라고요. "이렇게도 하더라" 정도는 말할 수 있겠네요.


무엇보다 이번 시리즈를 함께 읽어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려요. 제가 담아 온 독일의 결혼식 풍경이 신선한 문화적 체험이었길 바랍니다.


다음 글은 어떤 주제로 쓸지 아직 잘 모르겠네요. 이번처럼 시리즈가 될지 아닐지도 잘 모르겠고요. 하지만 여러분에게 또 새로운 대리 체험을 안겨드릴 수 있는 장면들을 잘 담아서 오겠습니다. 다음 주에 만나요!




1편: <독일에선 정말 혼인시고만 할까?>

https://brunch.co.kr/@nachklang/12


2편: <아침부터 자정까지, 독일 시골 마을 결혼식>

https://brunch.co.kr/@nachklang/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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