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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덕골 이선생 Dec 18. 2023

보편성과 특수성의 조화로 균형미를 갖추자


(다이소스케치북, 스텐들러 피그먼트 라인펜, 신한물감)

나는 평범한 사색녀였다. 모든 부분에서, 뭐 하나 특별날 게 없는 그런 아이였다. 교내 백일장이 있던 날, 불교 색채가 강한 시 한 편을 써냈다. 당시 나는 싯다르타에 빠져있었고, 불교 용어에 익숙한 상태였다.

 선생님이 나를 조용히 불렀다. 내 작품이 심사위원 사이에 논란이 됐던 모양이다. 다른 작품을 베끼지 않았는지 걱정하는 듯싶었다. 선생님은 네가 쓴 시가 맞냐고 물었고, 나는 그렇다고 답했다.

 얼마 뒤 나는 상을 받았다. 그러나 맘껏 기뻐하지는 못했. 모든 사람들이 호응해 주길 바란 건 아니였지만, 나의 진심이 퇴색됐다는 생각에 속이 상했다. 눈에 띄지 않은 아이라 그런 걸까. 나의 가능성확인한 계기가 되었지만, 기쁨과 억울함이 중첩되어 아픈 열일곱의 기억으로 남았다.




(삼원스케치북, 스텐들러 피그먼트 라이펜, 신한물감)

얼마 전 나는 '어반스케치: 실내 그리기'에 도전했다. 풍경화에 비해 단순하다 생각했지만 오산이었다. 빛의 변화가 크지 않아, 보이는 대로 그려서는 안 다. 내 그림은 '색이 탁하고 어둡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상하게도 칙칙하고 어두운 빛깔이 많다는 거다. 입체감이 드러나지 않아, 밋밋한 색채가 되었다니. 채색 공부가 더 필요한 듯싶었다.

  다소 직설적인 표현이지만, 내게 큰 깨달음이 되었다. '칙칙하고 탁한 색'은 나만의 빛깔이 될 수 있지, '밋밋하고 평면적인 명암'은 기초가 부실한 탓이다. 기초부족하면 한계에 부딪칠 수밖에 없다. 어떤 일이든 열정이 전부가 되어서는 안 된다.  특별한 성과를 이루려면, 기본 학습에  충실해야 한다. 그리고 비판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삼원스케치북, 스텐들러 피그먼트 라인펜, 신한물감)

  가끔 '같은 소재, 다른 서사'라는 주제로 과제를 낸다. 얼마 전 황순원의 '소나기'를 읽고, '소년과 소녀'를 주인공으로 한 창작 동화를 써보자고 했다. 학생들은 자신만의 특별한 서사를 위해 고심하는 모습이었다. 외계 소녀와 지구 소년의 사랑, 사랑하는 소녀를 눈 앞에서 잃은 독립군 소년. 나는 창작의 재미에 흠뻑 빠진 학생들을 보며 뿌듯함을 느꼈다. 그럼에도 한 친구의 말이 기억에 남는다. 한달음에 글을 쓰더니 "휴~"하고 한숨을 내뱉으며, "선생님, 막장 드라마가 됐어요."하고 깔깔깔 웃었다.

  겉은 화려해도 막상 뚜껑을 열어보면 다른 경우가 있다. 비약적이거나 주제가 없는 글. 이는 독특한 소재, 기이한 장면을 연출하다, 개연성을 놓치고 반전으로 끝나는 경우이다. 스토리텔링의 기본을 무시한 채, 낯선 상황과 독특한 캐릭터에 집착하면 이런 문제가 생긴. 

  '보편적 특수성'이란 말이 있다. 난해한 말이지만, 이런 상황에 어울린다. 참신하고 특별함을 가지되, 보편적 감정을 이끌어 내는 작품. 다른 말로 하면 낯섦에 소름이 돋지만, 공통감을 느끼게 하는 작품이다. 보편성과 특수성은 서로 상충되는 조건인데, 이 두 가지의 조합이 가능한가. 오랫동안 사랑받아 온 명작의 경우라면 충분하다. 고흐의 특별함은 당대에 인정받지 못했지만, 그의 은 울림과 감동으로 남았다. 오래 보아도 질리지 않는 작품, 그것은 보편성과 특수성이 조화를 이룰 때 완성된다.


보편성과 특수성의 조화로 균형미를 갖추자

보편성과 특수성으로 균형미를 갖추자

글은 마음을 담는 그릇이자 소통의 도구이다. 이에 글 쓰는 자는 읽는 이의 마음을 고려해야 한다. 다만, 말로 전할 수 없는 걸 담아내는 게 글이다. 익숙하지 않은 상황을 연출하면서도, 보편적 정서를 자극할 수 있는 산출물이어야 한다. 반대로 익숙한 상황을 연출하면서, 인식의 눈이 남다르면 좋겠다. 이를 위해 나만의 가능성을 들여다봐야 한다. 각자 잘할 수 있는 분야를 찾고, 자신만의 문체를 만들어야 한다. 또한 읽고, 쓰고, 고치는 기본기에 충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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