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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덕골 이선생 Jan 01. 2024

결과보다 과정을 중시하자

기말고사 기간이었다. 한 학생이 USB를 내밀며, 강의 자료를 담아 달라고 했다. 결과만 중시하 태도에 불쾌감이 들었고, 제공할 수 없다며 단호하게 거절했다. 그 뒤 나는 교수평가란을 보며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자기 혼자 잘났다고 떠드는~'이라는 글귀를 보며, 얼마나 낯부끄러웠는지 모른다. 팀티칭 한 교수님께 피해가 될까 안절부절못했던 기억이 있다. 동일 학생인지 알 수 없지만, 씁쓸함이 밀려왔다. 그 후, 강의노트까지 제작하며 열의를 다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었지만, 시대 변화에 맞춰가는 선생이고 싶었다. 

  학창 시절을 떠올려 봤다. 시험 때만 되면 동급생의 필기 노트를 구하러 다니는 하이에나들이 많았다. 강의 노트의 희소성을 잘 알고 있기에, 어떻게든 환심을 사보겠다는 요량이었다. 아이러니 한 점은 노트 제공자는 그들의 요구를 너무 쿨하게 수락한다는 거다. 필기 내용이 빈껍데기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알맹이는 머리와 가슴으로 기억된다. 앎이 확신으로 바뀌는 순간은 종이가 아닌 교육 현장에 있다.


(삼원스케치북, 스텐들러 피그먼트 라인펜, 신한물감)

  일상에 쫓겨 살다 보면, 정작 나를 위해 쓰는 시간이 부족해진다. 간절히 바라던 걸 하게 됐는데, 최선을 다하지 못할 때 속상한 마음이 든다. 그럴 때는 내가 좋아하는 취미 생활도 의무로 느껴질 때가 있다.

  그림 그리는 시간이 부족해지다 보니, 한 주 과제는 곧 의무로 바뀌곤 한다. 내일이 수업이면, 오늘 급하게 스케치하고 후다닥 색칠한다. 그래서인지 내 생각과 마음은 뒷전에 두고 결과물을 만드는 데 급급해진다.

  선생님께 평가를 받았다. 왼쪽 풀잎은 떡이 고, 오른쪽 잎은 멀어질수록 더 진하다. 원근법을 무시한 거다. 이리저리 보아도 양쪽 균형이 맞지 않아 아쉽다는 평가이다. '보이는 대로 그려서는 안 된다'는 걸 잠시 잊은 게 탈이었다. 완성을 위해 찍어 누른 티가 역력했고, 세밀함이 부족했다. 천천히 그리는 과정에 더 충실했다면 좋았을 텐데, 아쉬움남았다.


  청소년기 학생들을 지도해 보면, 그만의 특징이  보인다. 그들은 나름 글 잘 쓰는 기준을 정해놓는다. 첫째로 빨리 쓰는 거다. 100미터 달리기 하듯 정신없이 달릴 때가 있다. 금세 다 썼다며 원고지를 들고 들썩이는 이들에게  "검토해 보고 다시 제출하세요"라는 말을 꼭 해야 한다. 두 번째로 많이 쓰는 거다. 그들은 얼마나 많이 쓰느냐로 우열을 다툰다. 1000자, 1200자 글자수만 채우면 모든 과제가 끝났다고 생각한다.  '이 책을 읽으며 우리나라의 우수성을 알게 되었고, 나의 발전을 위해 책을 더 많이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ooo은 참 대단하다. 나도 대단한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라는 문장들 가득 채운다. 알맹이는 다 빠진 채 껍데기만 남았다. 정해진 분량을 채우는 데 급급하다 보니, 추상적이고 반복적인 어휘만 무성하다. 나는 무엇? 어떻게? 왜?라는 질문을 던지지 않아 아쉽다는 말을 남겼다. 한 번 더 생각하고 다듬는 시간을 가지라 지도한다.

  가끔 책은 왜 읽고 글은 왜 써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묻는 학생이 있다. 학교 시험에도 안 나오는 걸 굳이 해야 할 이유를 모르는 거다. '음악도 미술도 딱히 필요 없는 과목이다. 대학 진학을 위한 과정일 뿐이다. 논술도 보조 수단에 불과하다'라는 게 그들의 생각이다. 엄마가 하라고 하니 그냥 결과물만 나오면 된다는 학생들을 설득하는 게 가장 힘들. 글 쓰는 일이 언제부터 수행평가나 자기소개서를 위한 선행학습이 되었는지. 인생의 모든 공부가 대학으로 귀결된다는 것에 안타까움을 느낀다.


 

결과보다 과정을 중시하자

백수를 꿈꾸는 학생이 있다. 백수? 여기서 백수는 따박따박 들어오는 월세로 부귀영화를 누리며 사는 건물주를 말한다. 그래서 물었다. 어떻게 그 많은 돈을 벌지? 너는 어떤 걸 좋아하고,  무엇을 잘하니? 라고. 그 질문에 딱히 모르겠단. 사람은 꿈을 크게 가져야 큰 사람이 될 수 있단다. 나는 큰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고 묻고 싶었지만, 묻지 않았다. 대신 "돈은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다. 어떤 일이든 계획을 세워 최선을 다하다 보면, 돈은 자연스럽게 네 뒤를 따라올 것이다. 네가 잘할 수 있고,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 먼저 찾아보라"라고 조언했다.



글을 읽어주는 당신에게

2024년에도 '내 삶의 주인이 되시길' 기원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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