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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덕골 이선생 Dec 25. 2023

'사물 되기'로 공감력을 키우자

20년도 더 된 일이다. 코 끝이 아리도록 추운 , 나는 헐벗은 나무 사이로 스치 골바람을 잊을 수 없다. 엄마와 나는 누군가의 병문안을 다녀오던 길이었다. 따뜻한 국물로 몸도 녹일 겸, 병원 근처 식당에 들렀다. 홀에는 몇몇 손님들이 허기를 채우고 있을 뿐 한산해 보였다. 우리는 설렁탕을 시켜놓고 기다리던 차에, 정적을 깨는 듯한 소리에 놀랐다. 사장이 초라한 행색을 한 여인과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엄마는 좌초지종을 물었고, 식사값을 내겠다며, 설렁탕 한 그릇을 대접하라고 했다. 나는 그녀와의 동석이 못내 불편했지만, 아무 말 못 했다. 그녀는 엄마의 호의에 감사하다며, 자신의 사연을 털어놓았다.

  엄마 차가운 분이었다. 한평생 자식에게 공부하라는 말은 안 했지만, 생활교육에는 누구보다 엄격한 분이었다. 언제나 당당하게 살아가되, 남에게 폐 끼치는 행동은 강박적으로 단속하였다. 우리 집은 늘 친구들로 북적거렸지만, 오히려 친구네 방문은 극히 꺼려했다. 나는 엄마의 선행을 지켜보면서 복합적인 감정이 밀려왔다. 규칙과 도리에 분명하면서도, 타인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그런 분이었다니. 내가 알던 엄마는 일부분에 지나지 않았다.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존재를 인식하는 새로운 방식에 눈을 뜨게 되었다.


(삼원스케치북, 스텐들러 피그먼트 라인펜, 신한물감)

어반스케치는 현장에서 직접 보고 느끼는 감정을 표현하는 그림이다. 일상에서 마주하는 풍경을 간단한 선과 색채로 표현한다. 실제 그대로를 재현하는 것보다 짧은 시간 안에 풍경을 포착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만큼 현장에 대한 감정 이입이 더 중요하다.

  나는 야외스케치 경험이 없다. 타인의 시선이 부담스러워, 미술도구를 펼칠 용기가 나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주로 사진 속 상황을 상상하면서 그린다. 사물에 대한 현장감을 알지 못할 때가 많으니, 사진 찍은 사람의 위치에서 공감하려 애쓴다. 현실 그대로를 옮기는 데 의미를 두기보다, 그 순간에 느꼈을 수많은 감정들에 몰입하고자 한다. 명암과 색채를 재현하는 것에 앞서, 대상과의 조우에 느껴지는 기운을 포착하는 거다. 아슬아슬 세워져 있는 나무집, 모퉁이 옆 쭉 뻗은 나무, 그 아래로 당당히 자리한 화분, 의자들을 꼼꼼히 살피며, 존재의 숨결을 새겨 넣으려 애쓴다. 


수년 전, 나는 모 대학에서 철학 전공과 인문 교양 수업을 맡아 가르쳤다. 언젠가 글쓰기와 영상 수업을 진행하면서, 자신을 표현하는 과제를 리포트로 제출한  있다. 자신의 모습을 대상으로 표현하는 과제였는데, 학생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예시를 들어 설명다. '나는 트럭 위에 누운 빗자루를 보며 눈물을 흘렸다. 비를 흠뻑 맞은 빗자루를 보니, 거울을 보는 듯한 감정에 슬펐다. 일에 겨 스스로를 잃어가는 나의 모습이, 비에 두들겨 맞은 싸리빗자루와 같았다'며, 내 경험담을 쏟아냈다. 초반에 학생들은 내 의도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는 듯보였다. 얼마 후 그들은 '줄에 매달린 풍선', '외면당한 우체통', '구겨진 종이컵', '어항에 갇힌 물고기' 등의 이미지를 담아 제출했다. 다수의 학생들이 소외, 속박, 고독 등의 감정을 사진으로 담았고, 이미지 제작 과정과 의도를 언어로 표현했다.

  예술은 아름다움을 담는 매체이다. 인간과 자연, 대상을 보며 느낀 감정과 생각을 각 매체를 활용하여 전달하는 것이다. 다만 말하고 싶은 대상이나 마음을 다른 대상에 빗대어 표현하는 기술이 필요하다. 문학에서 은유, 직유, 의인법 등의 비유법을 사용하면, 독자들의 공감을 이끄는 데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또한 '사물 되기'는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하나의 방법으로 쓸 수 있다. 존재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는 동시에, 자신의 무의식을 의식 밖으로 도출할 수 있다. 언어의 한계성을 극복하며,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이나, 심리상태를 대상에 비유해 제시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복합적인 상황을 보다 효과적으로 이해하고 전달할 수 있다.  


'사물 되기'로 공감력을 키우자


공감 능력은 작가가 가져야 할 최우선의 조건이다. 세상에 대한 공감은 창작물을 더 풍성하게 만들 뿐 아니라, 원활한 소통을 위한 전제 조건이 다. 다만 '이해와 공감'은 일순간에 일어나지 않는다. 긴 시간 대상을 관찰하면서 기다림의 미학을 깨우칠 때 이뤄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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