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리다. 오후 4시가 넘어가면서 눈꺼풀이 스르르 내려온다. 어젯밤에 열대야로 뒤척이다 선잠을 잔 탓일까? 의도하지 않은 하품이 나와 깜짝 놀라 입을 막는다. 하품 소리는 내지 않았는지 잠깐 멈칫한다. 어깨를 한번 펴고 커피가 있는 사무실 구석으로 가서 알 커피 한잔을 탄다. 믹스 커피만 마시던 내게 프림이 몸에 안 좋다고 하던 아내의 말이 생각난다. 블랙커피를 다들 알 커피라 부른다. 커피의 신조어다. 알 커피 한 스푼을 넣고 뜨거운 물을 따르니 커피 향이 난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으로 내려와 출입문을 여니 뜨거움이 훅 들어온다. 점심때쯤 폭염 경보 메시지를 받은 것이 생각났다. 냉방이 잘 되는 사무실에만 있다 보니 건물 밖의 상황을 몸으로 느끼지 못했다. 그러다가 문을 열자 생각지도 못한 뜨거운 열기가 느껴진다. 목욕탕에서 냉탕에 있다가 한증막으로 들어갈 때의 느낌이 들었다.
뜨거운 태양 아래 애연가들이 옹기종기 모여 담배를 피우고 있다. 코로나로 인한 감염이 우려되어 회사 흡연장 모두가 폐쇄되었다. 애연가들은 어쩔 수 없이 건물 벽과 주차된 차 사이에서 담배를 필 수밖에 없다. 햇빛이 비추지 않는 곳을 찾지만 그곳은 이미 다른 사람들의 차지가 되어 버렸다.
적당한 곳을 찾아 몸을 기대고 하늘을 향해 기지개를 켠다. 하늘은 참 맑았다. 커피를 마시기 위해 고개를 숙여 바닥을 보니 담배꽁초 여러 개가 나뒹군다. 미간이 찌푸려진다. 담배를 피우는 것은 이해가 되지만, 담배꽁초를 버리는 것은 마음이 편하지 않다.
멀리서 빗자루를 든, 청소하는 사람이 다가오고 있다. 회사 이미지를 위해 오전에 두 번, 오후에 두 번 회사 주위를 돌며 청소를 한다고 한다. 이전에는 없던 일인데 흡연장이 폐쇄되면서 생긴 일이다. 35도를 넘는 더위에 회사 주위를 도느라 얼굴은 땀으로 흥건히 젖어 있었다. 기다란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든 어깨가 무거워 보였다.
남을 배려하는 것은 아주 작은 일에서 시작된다. 담배를 피우고 담배꽁초를 휴지통에 버리는 일. 그럼으로써 누군가가 이 뙤약볕 아래에서 청소를 하기 위해 돌아다니지 않도록 하는 것이 작은 배려이다. 이러한 배려를 통해 상대방에 대해 예의를 갖추고, 자신도 작은 뿌듯함을 느끼곤 한다.
유명 백화점에 큰 출입문을 통해 들어 가본 적이 있다. 앞사람이 문을 세게 열고 들어가는 바람에 출입문에 머리를 다칠 뻔 한 경험이 나에겐 있다. 화도 나고 짜증도 났었지만 참으려고 노력했다. 그런 사람에게 화를 내고 싶지 않았다. 배려가 없는 사람이었다. 그들의 머릿속에는 타인을 위한 배려심이 남아 있지 않은 것이다.
당신은 자신만의 편안함을 위해 다른 사람에게 불쾌함을 주었던 경험이 있었나요? 아마도 누구나 한두 번씩은 이런 경험이 있었을 것이다. 단지 우리는 기억을 하지 못할 뿐이다. 하지만 상대방은 이러한 불친절을 느끼고 기분이 상했을 것이다. 내가 그렇듯이. 배려는 아주 작은 행동에서 시작을 한다. 하지만 어느 순간 배려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내가 이렇게 하면 저 사람은 나를 어떻게 생각을 할까’ 내 행동을 오해하지 않을까 하는 고민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배려를 받는 사람은 고마움을 느낀다. 배려에 주저하지 말자.
주말 저녁 예능 프로그램에서 복불복 게임을 하면서 외치는 구호가 있다. 까나리 액젓과 커피를 올려놓고 선택하기 게임을 하면서 외친다. ‘나만 아니면 돼’. 예능이니까 가능한 말이다. 평범한 일상에서 이런 구호를 외친다면 어떻겠는가. 미쳤다는 소리를 들을 것이다. 우리는 남에게 손을 내미는데 익숙하지는 않지만 머리에서는 이미 배려를 하려고 준비를 하고 있다. 배려에도 연습이 필요하다.
뜨거운 태양 아래 뜨거운 커피를 마시고 있자니 무언가 잘못을 하고 있는 것 같다. 남들은 모두 얼음이 가득 든 아이스커피를 들고 총총히 에어컨이 있는 건물로 들어가고 있다.
“뜨거운 데서 뭐해요? 시원한 거 한잔 하실래요?”
얼굴 두 뺨에 땀이 줄줄 나는 모습을 한 후배 녀석이 지나다가 얼음물을 마시며 물었다. 회사에서 공무 쪽 일을 하는 녀석인데, 신규 라인 조성을 하느라 요즘 많이 바쁜 모양이었다. 얼굴은 뜨거움으로 인해 벌겋게 달아 있었지만 표정만은 생글생글했다.
“됐어. 너나 많이 마셔. 날 더운데 물 많이 마시고 해라. 쓰러지지 말고. 요즘 쓰러지면 코로나 검사받고 응급실 가야 한단다. 응급실도 맘대로 못가.” 농담을 섞어 말을 건넸다.
그를 배려한 것은 아니었지만 난 진심으로 그를 걱정하며 건넨 말이었다. 배려는 곧 사람의 진심이다. 상대방을 배려하는 일이 우리의 일상이 된다면 우리 삶은 풍부해지고 아름다워질 것이다. 비록 코로나로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지만 배려는 곧 희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