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망하지 않은 벌거벗음, 사우나

사우나의 뜨거움이 그립다.

by 원영대

내가 사우나를 좋아하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어린 시절부터 목욕탕이라는 문명화된 시설을 경험해보지 못한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고 오래 앉아 있는 것이 싫었다. 그렇다고 몸만 씻고 나오면 돈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우리 집 여자들은 목욕탕에만 가면 두, 세 시간이 지나야 나오곤 했다. 한 번은 먼저 나와 대기실에서 기다리다 잠이 든 적도 있었다. 여탕에는 재미있는 무언가가 있는지 너무나 궁금했었다.


대학교를 다닐 적에 목욕탕은 수면실이었다. 새벽부터 일을 하고 저녁에 학교를 다녔었는데, 일을 마치고 학교 앞에 도착하면 수업 전까지 조금의 시간이 남았다. 그럴 때마다 학교 앞 목욕탕에 들러 잠을 자곤 했다. 열탕보다는 미지근한 물속에 들어가 눈을 감으면 바로 잠이 들었다. 피곤한 삶을 살던 시절이었다. 제시간에 잠에서 깨지 못해 수업에 늦은 적도 많았다.


결혼을 하고 나서는 야외 운동을 하고 가끔 사우나를 다녔다. 흘린 땀을 씻기도 하고 뭉친 근육을 풀어주는 데는 사우나만큼 좋은 게 없다는 동네형의 꼬임에 몇 번을 따라갔었다. 그러다가 점점 사우나의 즐거움을 느끼기 시작했다.


사우나가 내 생활의 일부가 된 계기는 아내 때문이었다. 아내가 피부에 문제가 생기면서 피부에 좋다는 약을 먹고 한약도 처방했었지만 좀처럼 통증이 가라앉지 않았다. 아내는 연안부두에 있는 해수탕이 피부에 효과가 있다는 얘기를 듣고 나에게 함께 가자고 졸랐다.


’ 가까운데 좋은 사우나도 많은데 왜 하필 연안부두까지...‘


생각만 하고 차마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그랬다면 아마 몇 달은 고요함 속에서 살아야 했을 것이다. 인터넷으로 검색을 하니 ’ 명진 해수탕‘이라는 곳이 물이 좋다고 한다. 연안부두에 있는 몇 개의 해수탕들이 모두 자기네 해수탕의 수질이 최고라고 자랑을 한다. 해수탕의 원조라는 말도 빼놓지 않는다. 이젠 이런 광고들에 대해 ’그러려니‘ 한다. 연안부두 해수탕까지는 40분 정도 걸렸다.


해수탕 건물은 생각보다 낡았다. 오랜 전통이 있어서일까? 작은 골목 한편에 2층으로 된 건물로 1층은 여탕, 2층은 남탕이었다. 2층으로 올라가서 문을 열자 제일 먼저 보이는 것은 구두닦이 통과 반짝반짝 광이 나는 구두들이 줄을 맞춰 놓여 있다. 구두도 깨끗이 목욕을 한 것 같다.


옷장으로 이어지는 구석에는 옛날식 이발 의자가 있다. 오랜만에 보는 이발 의자가 반갑기도 하고 새롭기도 했다. 블루클럽 외에는 머리를 깎는 일이 없었는데, 옛날 의자를 보자 이발을 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불투명 유리창이 있는 반쯤 있는 은색 철제문을 열고 들어서자 뿌연 습기로 인해 앞을 가늠할 수 없다. 영화 속 한 장면에서는 이런 모습이 무언가 불안한 일을 예고하곤 한다. 으스스한 기분마저 든다. 화산 폭발이 일어날 때 나오는 연기와 같이 뿌연 연기가 연신 허공으로 뿜어져 나온다.


"후~~ 시원하다. 아이고 살 것 같다”


습식 사우나 문을 열고 들어서자 누군가 연신 땀을 손으로 닦아내며 고래 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희미한 연기 사이로 희미하게 사람의 형상만 가늠할 수 있었다. 한쪽에 앉아 머리를 벽에 기대니 곧 온몸에서 땀이 줄줄 흐른다.


몸속에 쌓여 있는 불순물들이 모두 빠지는 기분이다. 머릿속의 감정 쓰레기들도 함께 흘러내린다. 이런 기분을 즐기려고 사우나에 오는 것이다. 창가에 놓여 있는 모래시계가 두 번쯤 비워지고 나서야 사우나를 나왔다. 세상의 모든 걱정이 씻겨 내려간 기분이었다.


상쾌함으로 마무리를 하고 대기실에 나와 기다리는데, 아내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예상한 대로 몇십 분은 더 기다려야 할 듯하다. 예전에 우리 집 여자들이 두, 세 시간의 시간을 저 안에서 보냈던 것처럼.


사우나에서는 누구나가 벌거벗은 모습이어야 한다. 벌거벗음이 결코 민망하지 않은 유일한 장소이다. 자신의 모든 것을 보여줘야 하는 곳이며, 그래서 인간 본연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곳이다. 그래서 드라마나 영화 속에서 권력이 있는 사람들이 중요한 이야기를 할 때 사우나 장면이 많이 나오는 것 같다.


우리들의 삶도 이와 같다. 자신의 모든 것을 드러낼 수 있는 사우나는 누구에게나 평등하다. 지위가 높든, 돈이 많든 옷을 벗고 자신의 맨몸을 드러내면 모두 평범한 사람일 뿐이다. 사회가 정해 놓은 굴레에서는 서열이 있고 권력이 존재하지만 이곳에서는 모두가 원초적인 인간의 모습이다. 잠시나마 모두가 평등한 사람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는 곳, 그곳이 사우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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