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함이 있는 가게, 뉴마트

행복을 주문하세요.

by 원영대

베란다 문을 여니 시끌시끌한 목소리가 들린다. 아이들의 목소리다. 서로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들고 재잘재잘 거린다. 서로 자기 것이 맛있다며 자랑을 하고 누군가는 한입만을 외치고 있다. 한가로운 주말 모습이다. 우리 집은 아파트 관리사무소 바로 앞에 있다. 관리 사무소 앞에는 조그만 상가가 있는데 가장 규모가 큰 것이 뉴마트이다.

뉴마트는 마트 물건 외에도 가끔 과일도 팔고 때가 되면 쌀도 판다. 지금은 아이스크림 할인점도 추가로 오픈을 했다. 막걸리를 사러 뉴마트에 들르면 사장님이 아이스크림도 싸니 자주 사 먹으라고 하신다. 웃음으로 대신한다.



집이 신도시에 있다 보니 주위에는 커다란 백화점이며, 할인점이 많다. 현대백화점, 홈플러스, 뉴코아 등등등. 인천에 사는 사람들도 주말이 되면 생필품을 사러 이곳까지 원정을 오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주말에는 언제나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많은 주민들이 할인점에서 물건을 사다 보니 아파트 상가 슈퍼는 소외를 받을 수밖에 없다. 일부 아파트 상가 슈퍼는 문을 닫거나 다른 업종으로 변경을 해야 했다. 안타까운 일이다. 서로 상생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도 있지만 이해관계가 있는 한 해결 방법은 어려울 듯하다. 중이 절을 떠나는 수밖에 없었다.


뉴마트는 이런 전쟁터에서 살아남은 아파트 상가 슈퍼다. 아마도 뉴마트의 입지가 좋기 때문일 것이다. 바로 초등학교 후문 앞에 있으며, 몇 개의 아파트 사잇길 (일명 초록길)의 교차 지점에 있어 목이 좋다. 점심 즈음에는 하교를 하는 아이들과 이를 기다리는 엄마들의 쉼터가 되어 준다.

아이들의 손을 잡고 제일 먼저 가는 곳이 뉴마트이다. 더운 여름날은 아이스크림 매출이 많이 오른다. 충성 고객인 어린 초딩 고객들 덕분이다. 저녁 무렵에는 퇴근하는 직장인, 저녁을 준비하는 주부들이 뉴마트의 고객이 된다. 가끔씩은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하는 불편함을 감수해야 한다.


“오늘 뉴캔 한잔 해야죠?”

학교 체육관에서 배드민턴 운동을 할 때 게임을 마친 후배가 제안을 한다. 뉴캔은 뉴마트 캔맥주를 말한다.

“오키. 큰 거 아니면 작은 거?” 여러 명이 맞장구를 친다.


운동이 끝난 후 바로 뉴마트로 간다. 게임이 늦게 끝난 몇 명이 뉴캔 대열에 합류를 한다. 작은 사이즈와 큰 사이즈를 나누어 맥주를 마신다. 유난히 뉴캔은 시원하고 맛이 있다. 운동을 하고 마시는 맥주이기 때문에 더 맛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뉴마트 사장님의 따뜻함이 녹아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뉴마트는 아파트 입주와 함께 시작한 슈퍼다. 나의 이곳 생활과 함께 한 가게이기도 하다. 뉴마트가 친근하게 느껴지는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조기축구를 하던 시절 매주 마시는 물과 음료수를 이곳에서 주문했었다. 운동장 회식이 있던 날이면 시원한 얼음 수박을 주문하곤 했다. 배드민턴을 하면서 음료나 간식을 준비할 때 항상 뉴마트를 이용했었다. 그러다 보니 사장님과는 가끔 사는 얘기를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

사장님은 뉴마트를 운영하면서 우여곡절을 많이 겪으셨다. 뉴마트 옆에 있던 세탁소에 불이 났었다. 세탁소 보일러 과열로 난 화재였다. 세탁소는 물론이고 뉴마트도 많은 피해를 입었다. 뉴마트를 다시 일으켜 세워야 했었다. 불에 탄 뉴마트를 바라보는 사장님의 마음을 다 헤아릴 수는 없었다. 안타까운 마음뿐이었다. 다행히 열심히 정비를 해서 얼마 후에는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또 한 번은 사모님이 건강이 좋지 않아 뉴마트 계산대를 지키지 못하셨다. 밝게 웃으며 항상 우리를 맞이해 주던 분이셨는데 안타까웠다. 대놓고 건강을 물어보기가 어려웠다. 사장님의 얼굴에 수심이 가득했기 때문이다. 다행히 얼마 전부터 사모님이 다시 계산대를 지키고 계신다. 건강하신 모습을 보니 내 마음마저 따뜻해진다. 원래 살 마음이 없었던 초코파이를 한 상자 더 산다.



뉴마트에 가면 어릴 때의 가게 모습을 느낄 수 있다. 많은 것이 변했고 십 원짜리 동전으로 계산을 하는 일은 없다. 하지만 뉴마트는 마음속에 있는 시골 가게 느낌 그대로다. 기분 좋게 술을 한잔 마시고 집으로 가면서 아쉬운 마음에 멕주를 하나 살 때면, “건강 생각해서 조금만 마셔요”라고 웃으며 얘기를 한다. “예, 알겠습니다” 웃으며 답을 한다. 가게 주인은 맥주를 팔아서 이익을 남겨야 하는데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내 접기로 했다. 그것이 사장님이 살아가는 방식이니까.


하얀 백발에 항상 웃음이 많았던 사장님의 얼굴이 요즘 밝지가 않다. 아마도 사람들이 편리하고 조금이라도 싼 할인점을 이용하면서 매출이 줄었기 때문이다. 여러 가지 방법을 써 보지만 대기업을 상대하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잘 마련된 주차장에 많은 물건들, 그리고 먹거리까지 준비가 된 할인 매장은 누구에게나 매력적이다.

동네 슈퍼가 감당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다. 소상공인과의 공정, 상생을 이야기 하지만 결국은 자기들 이익을 위한 위장 전술이다. 알면서 당하는 것이다. 지구가 망하지 않는 한 이런 지배 구조는 계속되고, 뉴마트 슈퍼 사장님의 머리는 더욱 하얗게 변할 것이다. 살아남는 방법을 찾는 것이 우선이다.

“형님, 치킨집 가서 한잔 더하시죠?”

몇 개의 뉴캔을 마신 후배가 취기를 핑계 삼아 치맥을 외친다. 오늘도 그냥 가지는 않을 모양이다.

“야, 그냥 여기서 마셔. 안주 몇 개 더 사 오고. 여기 좋구먼. 바람도 시원하고. 나무 아래서 마시는 맥주가 최고야. 달님도 조명을 쏴 주잖아.”



후배는 아쉬운 듯했지만 뉴마트는 언제나 우리를 반겨주는 친구 갖은 존재다. 친구는 어려울 때 함께 하는 사이다. 조금이라고 저렴하게 팔기 위해 뉴마트는 최선을 다한다. 하지만 뉴마트를 향한 나의 마음은 결코 저렴하지 않다. 뉴마트는 그래서 고향에 있는 어린 시절의 동네 가게와 같다. 밤늦게 문을 두드려도 언제나 필요한 것을 내어주는 어린 시절의 24시간 편의점과도 같은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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