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보니 살만한 인생이더라

동네형으로 살아가기

by 원영대

아주 오래전 두 개의 산을 넘어야 도착할 수 있었던 초등학교는 내게 새로운 세계였다. 주변이 온통 논과 밭이었던 내게 넓은 운동장은 새로움을 느끼기에 충분했고, 운동장 가장자리에 있던 철봉은 신기하기만 했다. 이제 더 이상 발이 푹푹 빠지는 소나무 아래에서 축구를 하지 않아도 되었다. 산이 가로막았던 문명과의 거리를 초등학교라는 커다란 파도가 무너뜨린 것이다.


나의 삶의 영역이 천등산 아래의 촌구석에서 버스가 다니는, 콘크리트 건물이 있는 곳으로 넓어진 것이다. 나무와 들판이 보이는 것이 전부였던 곳을 떠나 사람들이 만들어 낸 문명의 이기를 몸으로 느낄 수 있는 세상으로 나간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발은 천등산 줄기를 타고 내려온 곳에 아홉 가구의 촌 식구들과 함께 하고 있었다.


산업화가 급속도로 발전을 하고 촌구석 사람들이 농촌의 궁핍한 생활을 벗어나고자 도심으로 떠나기 시작했다. 나의 가족도 오랜 기간 살아왔던 천등산 아래 촌구석을 떠나 도시로, 더 큰 도시로 떠나게 되었다. 어린 시절 고향을 떠난다는 느낌은 오로지 새로운 것에 대한 동경뿐이었다. 좀 더 달달한 과자를 먹을 수 있는 곳, 집 앞에 슈퍼가 있다는 것만 기억을 할 뿐이다. 촌구석을 떠난다는 어떤 슬픔과 미련은 남지 않았다. 적어도 그 시절에는.


나이가 들고 교복을 벗고 자유복을 입을 즈음, 떠나온 촌구석이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여전히 궁핍했던 도시 생활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여전히 세상은 촌구석을 떠나 콘크리트 도시로 떠나는 사람들로 넘쳐나고 있었다. 아마도 쪽방이나 판자촌이 늘어난 시기가 이때부터가 아닌가 한다.


그렇게 몇십 년의 세월을 도시에서 살면서 그 옛날 촌구석의 기억을 잊어버린 듯하다. 힘주어 기억을 하려 할수록 점점 멀어지는 느낌이다. 이제는 자그마한 기억조차도 희미해져서 가물가물하다. 그럴수록 다시 촌구석으로 돌아가고픈 마음이 간절하다. 지금의 촌구석은 예전의 촌구석의 모습이 아닐 것이고, 아홉 가구였던 촌 식구 들은 모두 떠나거나 사라졌을 것이다. 그럼에도 촌구석으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드는 것은 세월을 살아오면서 늘 그곳을 그리워했던 증거이고 바람이다. 이러한 나의 바람은 늘 아내에게 핀잔을 듣곤 하지만 그럴수록 촌구석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나의 소원은 더 간절해진다.


살아온 세월이 쉬운 길만은 아니었고 꽃길만은 아니었지만 살아보니 살만한 인생이었다.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촌구석을 떠나 도시로 떠나올 때의 설렘을 늘 간직하고 살아왔다. 그 설렘의 기록들을 이곳에 기록하며 살만했던 인생을 추억하고자 한다. 축구 경기에서 휘슬이 불기 전, 양 팀 선수가 각자의 자리에서 긴장된 모습으로 경기 시작을 기다리는 심정이다. 휘슬이 불기를 기다려 나의 모든 것에 최선을 다한 이야기를 펼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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