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부선 완행열차의 추억

구미에서 수원까지 밤기차 여행의 추억

by 원영대

나는 경상도 구미에 있는 고등학교를 다녔다. 집이었던 이천에서 버스로 가려면 예닐곱 시간이 걸렸다. 버스도 두 번을 갈아타야 했다. 충주 수안보를 지나 이화령을 넘어 문경 땅이 시작되면 경상도 지방이다. 드라마에서 보던 옛날 관리가 중죄를 짓고 귀양살이를 가면서 느끼는 감정이 이렇겠구나 하는 생각을 이화령을 넘으며 상상한다.


고등학교는 공업계였고 모든 학생이 기숙사 생활을 했다. 특별히 집에서 다녀야 하는 사정이 있는 학생만 빼고 모두 기숙사에서 생활을 했다. 학년마다 길고 큰 회색 건물에서 생활을 했다. 기숙사에서는 아침저녁으로 점호를 했다. 그 당시의 점호는 인원을 점검하는 것뿐만 아니라 후배들의 군기를 잡는 시간이었다.


아침 점호가 끝나면 운동장에서 시작을 해서 구미시내로 나가는 큰 도로까지 구보를 했다. 저녁에는 한 기수 선배 학년의 선도부들이 점호에 들어와 호실 점검을 하고 훈계를 했다. 고등학교 기숙사의 점호는 바로 윗 기수 선배들이 가장 무서웠다. 그때는 왜 그리 무서웠는지. 후에 알게 된 사실은 군대에서의 점호보다 고등학교 기숙사 시절 선배들의 점호가 더 무서웠다.


기숙사 생활로 인해 집에 갈 기회가 방학 말고는 없었다. 방학을 맞아 집으로 가는 길은 그래서 더욱 즐겁고 행복했다. 방학을 하면 구미에서는 기차를 타고 집으로 왔다. 집으로 갈 때쯤 집으로 가는 방향이 같은 친구들과 무리를 지어 함께 기차를 탔다. 용돈이 넉넉하지 않았던 우리에게 구미역에서 밤 10시 40분에 출발하는 완행열차는 행복열차였다.


밤 기차는 모든 생물이 쉬어가는 시간인 밤 시간을 이용할 수 있게 해 주었고, 저렴한 기차 삯은 가는 동안 군것질을 할 여유를 주었다. 완행열차가 제시간에 출발을 하는 것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대부분 연착을 한다. 정해진 시간에 도착한 기억이 없다. 하지만 아무도 연착과 늦어진 출발 시간에 대한 불만이 없다. 완행열차는 으례 늦게 도착하고 늦게 출발한다고 생각을 한다. 그러려니 한다.


기차를 기다리는 구미역의 밤은 왁자지껄하다. 구미공단에서 일하는 젊은 노동자들이 쉼을 위해 집으로 가기 위해 기다린다. 서울로 시집간 딸을 만나기 위해 정성껏 만든 음식을 빨간색 보자기에 싸서 안고 있는 어머니의 모습도 있다. 시간이 될 때까지 열리지 않는 개찰구만을 바라보는 이들은 가슴속에 누군가를 만나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그 벽을 까만 두꺼운 철로 만든 개찰구가 가로막고 있는 것이다.


11시가 넘어서야 완행열차는 구미역을 출발한다. 영화에서나 볼 듯한 큰 기적 소리가 울린다. 지정 자리가 없는 완행열차는 비어있는 자리를 찾아 앉으면 내 자리가 된다. 친구와 빈자리를 찾아 앉았다. 자리에 앉자마자 방학 동안에 무엇을 할 것이며, 어디를 갈 것인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시간이 12시를 넘어서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잠 속으로 빠져 들었다.


친구의 집은 용인에 있는 양지면였다. 나와는 집으로 가는 방향이 같아서 함께 완행열차를 타고 다닌다. 몸집이 크고 우락부락 하지만 마음이 아주 순수한 친구다. 학교에서 교련 시간에 몸집을 보고 기수단에 뽑혔는데 남들 앞에 나서는 게 떨리고 긴장이 돼서 죽겠다고 너스레를 떠는 친구다. 2학년 때는 우리 학년 중대장을 했으니 그 긴장과 떨림이 효과가 있었던 것 같다.


완행열차는 쉼 없이, 그러나 천천히 달리고 있었다. 대전역에서는 부산에서 출발한 새마을호나 무궁화호를 먼저 보내기 위해 오랫동안 정차를 한다. 우선순위에서 비둘기호 완행열차는 가장 마지막 순서이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으며, 제복을 입은 차장을 불러 따지지도 않았다. 완행열차의 운명은 항상 그들 다음이었으니까.


요즘과는 사뭇 다르다. 지하철 운행 중에 어떤 이유로 잠시 멈출 때가 있다. 만약 기관사가 상황에 대한 방송을 하지 않았다면 그날 지하철 공사 홈페이지에는 불만의 글로 도배되는 것과 대조된다. 완행열차는 태생이 그러했던 것이다. 슬슬 배가 고파진다. 출발하기 전에 구미 역전앞 시장에서 비빔밥 한 그릇에 떡볶이까지 먹었다. 하지만 늘 청춘의 배는 고팠다. 가방 속에 넣어 두었던 새우깡과 초코파이를 꺼내어 친구와 나눠 먹는다. 아무 말 없이 기다란 새우깡을 입에 넣고 우걱우걱 씹는다. 거칠게 초코파이를 크게 베어 문다. 입술은 초콜릿 색으로 변한다. 아직 아침이 되려면 시간이 많이 남았다. 차창밖엔 여전히 달빛만 가득하다.


“이번 정차할 역은 수원, 수원역입니다. 잊은 신 물건이 없는지 확인하시고 미리.......”


열차가 수원역으로 들어서면서 차장의 묵직한 안내 방송이 나온다, 친구와 나는 부스스한 모습으로 짐을 챙겨 출입구 쪽으로 나온다.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다시 한번 앉았던 자리를 확인한다. 빠진 게 없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이다. 예전에 완행열차를 탔다가 열차에 지갑을 내려놓고 나온 기억이 있었다. 그걸 수원 터미널에 도착해서야 알았으니 얼마나 멍청했단 말인가!


수원역에 내리자 싸늘한 12월의 찬바람이 분다. 추웠다. 두꺼운 옷을 입었는데도 여전히 12월 새벽의 겨울 날씨는 춥다. 총총걸음으로 대합실로 발길을 옮긴다. 수원역은 제법 큰 역이어서 사람들이 많이 내린다. 작고 직사각형인 누런 차표를 내고 대합실을 나오니 4시 30분이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목적자를 향해 제 갈길을 간다. 그들의 뒷모습은 마치 오래된 영화 속의 한 장면과 같다. 눈이라도 내린다면 멋진 영화 속 장면이 될 듯하다.


우리는 이제부터 노숙자로 2시간을 대합실에서 기다려야 한다. 이천으로 가는 첫차는 7시에 출발한다. 그전까지 수원역 대합실에서 기다려야 한다. 대합실은 점차 사람들의 목소리가 사라졌다. 집으로 혹은 자신의 목적지로 갈 사람들은 모두 떠나고 우리처럼 버스 시간을 기다리는 사람 몇 명만 남았다. 가끔씩 또래의 애들과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지만 그것 또한 오늘은 내키지 않는다. 12월의 찬바람 때문이었을까.


완행열차는 재촉하지 않는다. 남들보다 늦어도 누구 하나 불만을 갖지 않는다. 태생이 그러려니 하며 느리게 목적지를 향해 간다. 비록 늦지만 목적지는 언제나 정확히 도착을 한다. 그리고 자신의 임무를 다한 양 의기양양하게 잠시의 휴식을 위해 집으로 향한다. 완행열차는 그래서 인생 열차와 같다.


딱딱한 나무 의자에서 개구리 자세로 잠을 자다 눈을 뜨니 서서히 아침이 밝아 온다. 눈곱이 있는지를 확인하고 헝클어진 머리를 손으로 정리하고 버스터미널로 향한다. 터미널까지는 10여분 정도 걸린다. 12월의 겨울 아침 바람이 매섭다. 하지만 나는 완행열차와 같이 느리지만 묵묵히 나의 길을 가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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