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함께 걸어서 가자.
후배를 기다리기 위해 벤치에 앉아 휴대폰을 보다가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게 된다. 엉덩이를 의자에 붙이고 허리를 숙여 휴대폰 화면만 보다가 고개를 들면 사람들의 발만 보인다. 빠르다. 무언가에 쫓기는 듯한 사람들의 발은 달리기 선수와 같다. 또각또각 보다는 쿵쿵하는 소리가 들린다. 나도 그럴까? 여기서 일어나면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바쁘게 움직이고 걷는 것일까? 갑자기 궁금해졌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빨리빨리 문화는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 잘 알려져 있다. 지금은 그런 대화가 많이 사라졌지만 얼마 전까지도 한국을 처음 방문한 외국인에게 ‘빨리빨리’는 가장 먼저 배우는 한국어였다. 김치와 함께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상품이었다. 가끔씩은 우리의 생활을 비꼬는 의미로 말을 하곤 했다.
하지만 이러한 빨리빨리 문화는 우리의 산업화에 큰 공헌을 한 것 또한 사실이다. 한강의 기적이 그것이며, 자동차 생산 속도가 대표적이다. 남들이 100년이 지나야 가능하던 일들을 우리는 30년 만에 해내었다. 외국인들의 기억 속에 ‘기적’이라는 단어를 인상 깊이 심어주었던 한국인만의 문화다.
삶은 빠름보다 느림을 좋아한다. 많은 직장인들이 은퇴 후 가장 하고 싶은 일이 ‘자연인의 삶’이라고 한다. 이름 모를 산속에 들어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나만의 삶을 즐기고자 한다. 느리게 여유 있는 삶을 즐기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실천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듯하다. 시골 인구가 증가한다는 소식을 들어본 적이 없으니 말이다. 이렇듯 우리는 빠른 생활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생각의 여유조차 없이 하루를 보낸다. 내일도 바쁜 일상으로 인해 무엇을 했는지에 대한 기억이 없이 살 것이다. 삶이 빠르게 지쳐가고 있다.
“형, 오래 기다렸어요?” 고개를 들어 얼굴을 보니 후배의 얼굴엔 땀방울이 가득했다. 뛰어 왔는 것 같다.
“늦었네, 무슨 일 있었어?” 그의 얼굴에 흐르는 땀을 보며 물었다. 평소에 약속을 잘 지키는 후배였다.
“아니요. 별일 없었어요. 사무실을 나오는데 고객한테 전화가 와서 처리하느라 늦었어요.” 연신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아내며 말한다. 손수건이라도 있으면 꺼내 주고 싶었다. 안타까웠다.
후배와 함께 지하철역으로 들어가는 에스컬레이터를 탔다. 상동역이 개통이 되면서 서울로 출퇴근하는 사람들의 교통사정이 좋아졌다. 버스를 타고 송내역이나 중동역으로 나가자 않아도 쉽게 서울 가는 지하철을 탈 수 있게 되었다. 지하로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의 오른쪽에 서서 멍하니 아래만 바라보았다. 내려가는 동안 특별히 할 일이 없었다. 후배는 아직도 흐르는 땀을 닦아내고 있었다. 20대로 보이는 청년이 무엇이 급한지 바쁘게 움직이는 에스컬레이터 좌측선으로 뛰어서 내려가고 있다. 무언가 급한 것이 있는 모양이다. 에스컬레이터의 경사가 생각보다 급한데 얼마나 바쁘면 위험을 무릅쓰고 뛰어가는 걸까? 왜 그리 급하게 가는지 궁금해졌다.
“지하철을 타야 해서 저렇게 빨리 가는 것이 아닐까요?” 내 맘을 읽었는지 후배가 뒤를 돌아보며 말한다. 그의 마스크는 이미 흘러내린 땀으로 젖어 있었다.
“그래도 위험할 텐데...”
내 아들이라도 되는 것인 양 걱정이 되었다. 무엇이 그리도 급했을까?
회사일을 하면서도 급하게 처리할 일들이 많다. 상사에게 지시받은 일, 내일 발표해야 할 보고서 등. 하지만 일을 빠르게 처리하다 보면 잦은 실수를 한다. 숫자가 틀리거나 글자를 잘 못쓰거나 하는 것들이다. 이것은 생각의 시간이 적었기 때문이다. 보고서를 쓸 때 한번 더 생각을 하고 작성을 한다면 실수는 줄어든다. 그것이 더 현명한 일처리다. 하지만 알면서도 늘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우리의 삶도 한 템포의 여유를 가지고 살아간다면 실수와 후회를 줄일 수 있다. 어떤 일의 결과가 나온 뒤 우리는 자주 후회를 한다.‘ 그때 한번 더 생각하고 할걸. 그랬으면 이런 실수는 안 했을 텐데.’ 반복되는 후회다. 하지만 이미 시간은 지났고 후회는 저 멀리 달아나 버린다.
삶은 내 생각의 의지이다. 생각대로 살면 그것은 곧 내가 살아가는 삶의 방식이 된다. 바쁘게 생각하고 행동을 하면 내 삶의 대부분은 여유 없는 바쁜 일상이 된다. 지금 일을 하면서 다음 해야 할 일을 걱정하며, 내일 준비해야 할 것 들을 걱정한다. 생각의 틈이 보이지 않는다. 남들하고 같은 행동을 하면서 그들과 다른 삶을 살기를 원한다. 한 박자 쉬는 여유를 갖는 것이 필요하다. 그것이 여행이든, 멍 때리기 든 상관없다. 우리는 지금 너무나 빠른 세상 속에 살고 있다.
지하철 역사에 내려가니 아까 그 청년은 벌써 개찰구를 지나가고 있었다. 후배가 얘기한 것처럼 지하철을 타기 위해 그렇게 빠른 속도로 에스컬레이터를 내려 간 듯하다. 인생은 한번 가면 다시 오지 않지만 지하철은 10분만 지나면 다시 온다. 그 청년에게 다가가 얘기해 주고 싶다. 10분을 기다리면 당신 인생이 달라진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