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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영대 Sep 16. 2023

점심 산책과 밤 사냥

삶에 잡초는 없다.

회사에서 점심을 먹고 가벼운 산책을 한다. 우리 회사 뒤편에는 도당산이 있다. 봄이면 산 전체가 벚꽃이 만개하여 보는 이들로 하여금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4월 초, 중순에는 시에서 개최하는 도당산 벚꽃 축제가 화려하게 열린다. 서울이며, 인천에서 모여드는 상춘객들이 도당산에 펼쳐진 벚꽃 장관을 보기 위해 인산인해를 이룬다.


가을이면 산 곳곳에 있는 밤나무들이 작은 열매를 땅으로 뱉어낸다. 산길을 돌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작은 즐거움이 아닐 수 없다. 회사에서 점심을 먹고 30여분 남짓 시간이 남아 도당산 산책을 한다. 잘 정돈된 산길을 가다 보면 여기저기서 '두두둑' 하는 소리가 들린다. 나뭇가지 사이로 밤알갱이들이 떨어지는 소리다. 나는 가던 길을 멈추고 소리가 난 곳을 유심히 쳐다보곤 한다. 운이 좋으면 갈색 알밤을 제법 주울 수 있는데 이것을 사무실로 가지고 가서 까먹는 재미 또한 솔솔 하다.


 "알밤은 다람쥐나 야생동물들에게 양보하세요."


도당산 곳곳에 걸린 플래카드 문구다. 겨울을 나기 위해 야생 동물들은 많은 식량을 모아야 하고 그중에 밤은 아마도 가장 좋은 먹이가 아닌가 한다. 플래카드 문구에 잠시 멈칫하지만 밤을 줍는 재미 또한 나에게는 너무나 크다. 어린 시절 기억이 떠오르기도 하고 시골의 가을을 대표하는 밤에 대한 추억과 아름다움을 지나치기에는 본능이 더 강하다.


점심을 먹고 작은 산을 산책할 수 있다는 것은 큰 행운이다. 도심 속 빌딩숲이 아닌 자연과 산과 그리고 나무들을 품고 잠시 여유를 부릴 수 있다. 흙바닥이 가끔은 생소한 우리에게 질퍽거리는 흙무덤을 경험하게 하고 계절마다 바뀌는 풀종류를 눈으로 확인하게 한다. 조금이라도 오르막이 있으면 마음의 준비를 하고 쉼 없이 정상까지 오르고자 하는 오기도 생긴다.


점심 산책이 주는 시간은 30분 정도로 매우 짧지만 매일 다가오는 자연과 함께할 수 있어 다행이다. 가을 산책은 밤사냥을 할 수 있어 더욱 좋다. 사냥한 밤을 가져와도 좋고 열심히 나무사이로 움직이는 다람쥐 식량으로 챙겨줘도 좋다. 가을 하늘만큼이나 좋은 건 계절을 스스로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점심 산책이 없다며, 밤사냥을 하지 못했다면 아마도 올해 가을은 느끼지도 못하고 겨울을 맞이할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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