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대다 보니 나 되었다
동남아시아를 여행하다 보면
익숙하게 보이는 장면이 있다.
건물마다 총을 차고 건물을 지키고 있는
보안관을 쉽게 볼 수 있다.
처음 동남아시아를 만났을 때는
‘이 건물에 지킬 것이 얼마나 많길래
보안관이 있는 것일까?’
이런 생각을 했었지만 이런 생각이 바뀌는 데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소매치기, 노숙자, 구걸하는 분들을 막기 위함,
그리고 싼 인건비.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저 가짜 총을 들고 있는 보안관을
무서워하는 사람이 있을까?
저 가짜 총을 들고 있는 보안관은 자기가 하는 일에
얼마만큼 만족감을 느끼고 있을까?
저 가짜 총을 들고 있는 보안관은 자신이
무엇을 지키기 위해 저기 서 있는지 알까?
여행하다 보면
보안관 일하는 걸 자랑스러워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보안관 일하는 걸 부끄러워하는 사람이 있다.
그 차이는 무엇일까?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사람, 생계를 위해
억지로 하는 사람의 차이일까?
이런 차이일 수도 있지만
내가 바라본 그들의 자부심 차이는
세계적인 호텔, 은행, 백화점 등을 지키는 보안관인가,
편의점, 허름한 호텔,
오래된 쇼핑센터 등을 지키는 보안관인가.
내가 어떤 일을 하느냐보다는
내가 어디서 일하느냐가 더 중요한 것 같았다.
동남아시아에서 살아가고 있는 저들만 그럴까?
동남아시아에서 저 일하고 있는 저들만 그럴까?
우리도 이와 같지 않을까?
똑같은 회계 업무를 하고 있지만
중소기업에서 일하는 사람은 친구를 만나러 갈 때
사복으로 갈아입고 나가지만
누구나 들어도 알만한 대기업에서 일하는 사람은
친구를 만나러 갈 때 굳이 회사 유니폼을 입고 나가고
자기소개할 때도
중소기업에 다니는 사람은 “작은 회사에서 회계 업무하고 있는 XXX입니다.”라고
말하며 자신의 회사를 숨기지만
대기업에 다니고 있는 사람은
“삼X전자에서 회계 업무하고 있는 XXX입니다.”라고
말하며 굳이 자신의 회사를 당당하게 드러낸다.
자세히 들어보면 자신의 이름보다
자신의 회사 이름 말할 때 더 당당한 것 같다.
그런데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중소기업에 있는 것이라면,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뭔지 모른 채
대기업이란 이유로 회사 다니고 있는 사람보다
더 당당함을 느껴야 하는 거 아닌가?
월급이 더 높을 수도 있고 복지가 더 좋을 수도 있고,
미래 비전이 더 좋을 수도 있고
세상에 가치를 더하는
훌륭한 일을 하는 곳일 수도 있는데,
단지, 지금 사람들이 모두 다 알만한
유명한 회사가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자신뿐만 아니라 부모님마저 주변 지인에게
우리 자녀 회사 이름을 당당하게 말하지 못하는 건
너무 슬픈 일 아닐까?
어느 순간 우리 사회는
내가 얼마나 ‘훌륭한 일’을 하고 있는지보다는
누구나 들어도 알만한 곳에
존재하는 걸 ‘훌륭한 일’로 인식하게 된 것 같다.
나로 인해 중소기업이 대기업이 될 수도 있지만,
대기업은 나로 인해 달라진 게 크게 없는데 말이다.
대통령을 경호하는 사람만 멋있는 게 아니다.
내가 지켜야 할 대상을 오늘도 제대로 지키고 있다면,
그 보안관도 위대한 일을 하는 것이다!
누가 뭐라 해도 자기의 일을 지키는 당신,
위대한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