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진 생각으로만 살아간다면 후퇴할 뿐이다.
- 가진 생각으로만 살아간다면 후퇴할 뿐이다.
당신의 능력은 무엇인가?
말하기? 수학능력? 탐구심? 과학적 재능? 당신은 당신이 가진 능력으로 현재 자신의 가치를 결정 받게 된다. 이는 흡사 최신 자동차의 속도나 승차감과 같다. 이때 중요한 것은 가진 능력이 많은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능력을 얼마나 표현할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 즉 단편적인 지식만 쌓는 것이 아니라 가진 지식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가에 집중해야 한다. 사실 우리는 충분한 지식을 이미 갖고 있다. 단 활용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했을 뿐이다.
당신이 지식을 쌓는 동안 그 지식은 이미 과거의 지식일 뿐이다. 그 지식을 활용해서 이상의 가치를 낳을 수 있어야한다. 생각(상상력)은 원래부터 지식보다 높은 가치를 낳는 창조적 활동이며, 산업이나 문명, 문화를 자연스럽게 발전시켜왔다. 여기에는 많은 지식을 알고 있다는 것은 중요하지 않으며 지식을 활용해 창조적인 생각을 해내야한다.
그러니 생각이라는 것을 하는 사람이 더욱 좋은 생각을 만들어내지 못하게 되면 주입식으로 외운 지식은 낭비로 변한다. 낭비는 당신의 유한한 시간을 쓰레기통으로 직행시키는 행위다. 낭비는 21세기와는 맞지 않는 일회적인 지식을 쌓는 사람들의 노력이나 인생의 시간조차 쓰레기통으로 보낸다. 우리 모두는 보다 좋은 가치를 낳기 위해 생각(상상)을 해야 할 의무가 있다.
연필이나 종이는 언제라도 쉽게 구할 수 있다.(우리와 다르게 빈민가 아이들에게는 그렇지 않을 수 있다. 그래서 내가 연필을 선물하는 이유다.) 그러나 조금만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쉽게 만들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다. 이것들이 시대와 함께 박자를 맞춰서 발전을 함으로써 가능해졌고, 이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생각이나 경험, 사고를 문장으로 남길 수 있었다. 이렇게 기록된 경험과 사고는 문명이 발전하는 데 큰 역할을 한다. 이것이 지식이 만들어지는 과정이다.
우리가 매일 접하는 지식들은 단순히 보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지식은 중립적일 뿐이다. 인간의 상상력과 호기심, 결핍 등을 통해 지식은 보다 높은 가치를 창조할 수 있게 된다. 지식은 단순히 외워서 시험을 치기 위함이 아니다. 지식에 창조적인 생각이 더해지지 않으면 지식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우리가 지식을 갖게 된 이유는 외우기 위함이 아니라 삶에 활용하기 위함이었다. 농사를 위해, 산업발전을 위해, 정보통신사회를 위해, 늘 지식은 진보해나갔다. 인간은 가진 지식을 가장 지혜롭게 활용할 수 있었기에 지금과 같은 시대가 펼쳐질 수 있게 되었다.
지금에 와선 쓸데없는 짓으로 보이지만 인간의 발전을 부른 행동은 크게 두 가지 마음에서 비롯했다. 하나는 귀찮은 마음, 즉 귀차니즘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쓸데없는 것처럼 보이는 멍 때리는 시간, 즉 지루함이다. 모든 사람은 이런 마음을 모두 갖고 있다. 귀차니즘은 좀 더 편하게 살고 싶은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마음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누가 대신 써줬으면 좋겠다. 아니면 그냥 노트북이 내 생각을 읽고 쳐다보기만 해도 글이 줄줄 써졌으면 좋겠다. 누구나 귀찮다는 느낌을 가져봤을 것이다. 이 생각이 세탁기를, 로봇청소기를, 이제는 무인자동차까지 만들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귀차니즘이 바로 과학을 발전하게 만든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좀 더 편하게 살고 싶다. 나대신 누가 해줬으면!’라는 진심이 숨어 있다.
지루함이란 따분한 시간이 아니다. 이는 인간이 뭐라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원동력이다. 우리는 모든 시간을 채우는데 쓰지 않으면 후퇴한다는 조급함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지루한 시간을 많이 보내봐야 진짜 내가 하고 싶은 것들로 나를 가득 채울 수 있다. 귀차니즘과 지루함 모두 결과적으로 지금까지와는 다른 결과를 만드는 핵심요소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새로운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지 않을까? 이 생각을 확장시키기 위해 공부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시험이나 자격증만을 위해 공부를 하는 사람이 많아진 최근 ‘해본 적 없는 것은 할 수 없지’, ‘모르니까 할 수 없어’라고 말하는 사람이 증가하고 있다. 지식을 활용해 본적이 없으니 시험처럼 정해진 답이 없으면 실패가 두려워 해본 적 없는 것을 해보지 않고 모르는 것을 알려고 하지 않는, 그런 사람들이 증가하고 있다. 이런 사람들이 증가하니 정해진 지식 ‘보다 좋은 것’을 만들어낼 수 없다. 보다 좋은 세상을 만들 수 없게 되면 지식은 낭비로 바뀌고 만다.
“내가 책을 쓴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강연? 글쎄, 해본 적 없어서 못해!”
이처럼 해본 적 없는 것을 무조건 피하기만 하는 사람이 증가하는 원인은 무엇일까? 그건 사회와 기업이 만들어낸 잘못된 인재상 때문이다.
사회에서 성공이라는 것이 틀로 정해져있다. 크게 나누면 3가지로 분류된다. 좋은 대학, 좋은 직장(대기업), 안정된 생활.
대량생산을 했던 20세기까지는 대기업 위주의 생산방식으로 같은 품질의 제품을 계속해서 만드는 것이 중요했다. 그렇기 때문에 도전하려는 정신은 오히려 방해가 될 뿐이다. 이로 인해 그 나라에 가장 머리가 좋다고 인정받을 수 있는(진짜 좋은 것이 아닌!) 대학에 나오고, 대기업에 들어가서 안정된 삶을 사는 것을 최고로 생각했다. 이제는 공무원, 건물주가 이 자리를 대체하려고 한다. 이런 공무원, 지식인, 직장인들이 많아지니 확실한 성공이 보장된 것만 하려고 한다. 마음대로 연구하고 고민한 것이 잘못을 초래하면 안정된 삶이 무너질 수 있기 때문이다.
현실이 이러니 사회를 지탱해야할 중소기업들과 벤처기업들이 도전을 하지 않고 대기업을 지탱하기 위해 대기업이 말하는 대로 일할 수밖에 없다. 새로운 시도는 불가능하다. 대기업에 미흡하다는 인상을 주면 대체가능한 다른 중소기업에 일을 뺏기게 된다. 안정된 생활을 위해 회사는 실패하지 않는 방향인 대기업의 수발이 될 수밖에 없다. 실패하지 않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새로운 시도를 하지 않는 것이라는 답이 나올 뿐이다. 상황이 이러니 누군가가 지시한 것만 한다.
이런 상황에서 암묵적으로 허가된 ‘보다 나은’은 ‘보다 안정하게’로 변질된다. 결국 좀 더 값싼 제품을 생산할 수밖에 없게 된다. 이런 일들은 기계로 교체하거나 훨씬 임금이 낮은 나라에 일을 맡기는 방식으로 충분히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 그러니 누가 중소기업에 가서 저임금으로 기계식으로 일을 하려고 하겠는가? 이 틀이 사회의 악순환이다.
이런 사회에서 태어난 사람들은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허락되지 않는다. 공부, 사색, 지혜, 고민, 개성, 창의력도 필요 없다. “쓸데없는 짓은 하지 마라”, “궁금한 게 왜 이렇게 많니? 그냥 외워!”와 같은 말을 들을 뿐이다.
이런 환경에 장시간 노출되면 발전할 수 있는 마음을 잃게 된다. 처음부터 지니고 태어난 귀차니즘도 지루함도 인생에서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한다. 이런 자신이 잘못 되었다는 생각을 할 뿐이다. 그러니 장난도 못 치게 하고, 누군가를 돕는 친절함도 공부해서 이 사회가 정한 틀에 맞게 성공해야 되는데 방해만 될 뿐이다. 인간이 가지고 태어난 진정한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것이다. 시대가 정한 방법으로만 발전을 계속 한다면 우리 사회는 결국 무너질 것이다.
우리는 초등학교 도덕시간에 인간은 더없이 소중한 존재라고 배워왔음에도 스스로 생각함을 포기함으로써 스스로 가치를 깎아내리고 있다. 이처럼 자신의 존재 이유를 내세울 수 없는 사람이 자신감을 갖고 살아갈 수 있겠는가? 무력감만 느낄 뿐이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을 시작으로 우리사회가 조금씩 변화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당신과 나는 ‘행운아’이다. 당신의 지루함이 지금의 슬픔과 고통을 눈치 챘다. 자신감이 사라질 때야말로 자신의 위치를 생각해 볼 수 있는 시점이다. 포기는 이제 그만. 우리는 꺼져가는 자신감을 붙잡고 자신의 수준을 인정하는 순간 진정한 배움을 포기했던 자신과 이별하고 자신의 진정한 발전을 향해 올바른 생각을 할 수 있다. 이제 용기가 생기는가?
진정한 성공은 역경일 때 기회를 포착하고 웃을 수 있는 순간이지 않을까? 조금만 달리 생각하면 기회가 보일 것이다. 역경을 뛰어넘으면 용기가 되고 용기는 다시 도전할 수 있는 희망을 줄 것이다. 귀차니즘을 해결하려고 노력하면 평생 편하게 살 수 있다. 당신의 귀차니즘 리스트를 적어보자. 이제 당신은 에디슨을 뛰어 넘는 발명왕(특허왕)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