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 따위 나를 가로막지 못하게

문장수집_독서인심리학

by 글로잇다


0330.png 독서인심리학_이재연 교수




우울은 나도 모르게 그림자를 키운다. 어느새 크기가 커져 나를 감싼다. 이미 그때가 되면 나는 그림자에 감춰져 어찌할 도리가 없다.


우울해본 사람은 안다. 주위에선 움직여라, 운동을 해라, 취미 활동을 해라... 많은 조언을 하지만 그게 마음대로 안 된다는 것을.. 머리로는 너무 잘 알고 있지만 몸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만사가 귀찮고 아무것도 하기 싫다. 그저 누워서 뒹굴뒹굴...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몸은 독립 개체가 된다.


나도 지독한 우울과 무기력을 겪었다. 8-9개월 정도. 가정을 지켜야 하기에, 아이를 키워야 하기에 일은 다녔지만 도살장 끌려가는 소처럼 괴로웠다. 퇴근 후 드러누워 핸드폰만 만졌다. 주말엔 소파와 한 몸이 되어 텔레비전만 봤다.


'이러면 안 돼. 너 왜 그러는 거야?'


스스로 자책하고 비난했다. 그렇게 몇 달의 시간 동안 매일 나 자신을 혼내며 자존감은 바닥을 뚫었다. 안 되겠다 싶어 뭐든 해보려 했지만 역시나 되지 않았다.


전부터 배워보고 싶은 악기가 있었다. 드럼이다. 그 무기력과 우울의 상황에서 드럼이 생각난 것이 정말 다행이었다. 머리로는 드럼이 너무 배우고 싶었다. 다만 몸을 움직이기 귀찮았을 뿐이었다. 그러나 난 이겨냈다. 접수는 어차피 인터넷으로 하는 거였기에 일단 접수를 먼저 했다.


첫 수업날 아~~~ 너무 가기 싫었다.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러나 낸 돈이 너무 아까웠다. 환불을 할까도 생각했지만, 이겨내지 못하면 답이 없다 생각이 들었다. 겨우 몸을 움직여 드럼을 배우러 갔다. 가는 내내 집으로 돌아갈까 말까 수천번 고민했다.


그런 고민도 무색했다. 드럼을 배우는 내내 신났다. 아... 이게 이렇게 신나는 거였던가. 드럼을 신나게 두들기며 쌓였던 스트레스를 풀었다. 물론 첫날은 드럼 스틱 쥐는 법과 한 동작만 배웠지만 그게 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었다. 그때부터였다.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한 것은.


우울과 무기력은 물꼬를 트면 된다. 그게 어렵다. 뭐든 한 번 움직이면 빠져나올 수 있다. 방 청소, 쓰레기 버리기, 슈퍼마켓 갔다 오기, 아이스크림 사 먹기, 카페에서 커피 한 잔 마시기, 집 앞에 한 번 나갔다 오기 등등 뭐라도 몸을 움직이면 헤어 나올 수 있다.


드럼은 몇 번 가지 않았다. 우울과 무기력에서 벗어나게 해 준 거기까지였다. 그 이후로 나는 서서히 활력을 찾았다. 지금은 하고 싶은 것이 너무 많아서 탈이다.


우울이 나도 모르는 커다란 그림자로 다가오지 않게 해야 한다. 오늘도 게으름의 멱살을 부여잡고 우울이 절대 틈타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우울 따위 나를 가로막지 못하도록 오늘도 게으름과 세력 다툼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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