핸드폰 진동이 울린다. 심장이 쿵하고 내려앉는다.
“네, 선생님. 안녕하세요?”
“어머님, 잠시 통화 가능하세요?”
한껏 떨린 목소리로 받은 전화는 아이의 담임선생님이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지 한 달도 되지 않았는데 벌써 여러 번 담임선생님과 통화를 했다. 아이가 다른 아이의 얼굴을 꼬집었다는 이유로, 배를 때리고, 화를 내고, 나쁜 말을 했다는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전화가 걸려왔다. 급기야 선생님께서는 학교 외부에서 따로 만나자는 제안까지 하셨다.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이혼한 지 어느덧 5년. 부모님과 함께 살면서 나름의 소신을 가지고 아이를 키웠다. 살아야 하기에 이른 아침부터 늦은 시간까지 일을 했다. 아이를 볼 수 있는 시간은 어린이집 보내기 전과 아이가 잠든 밤, 주말이 전부였다. 저녁 7시가 되어야 집에 돌아오는 아이는 할머니, 할아버지와 저녁을 먹고 놀다 잠이 든다. 한창 생떼를 부릴 나이라 할머니가 많이도 업어주고, 달래주며 힘들게 키우셨다. 나는 조금 엄격했던 반면 할아버지, 할머니는 아이 말이라면 다 들어줄 정도로 사랑을 듬뿍 주셨다. 아마도 안쓰러운 마음도 크셨을 것이다.
언제부턴가 아이는 그림을 그리고 맘에 들지 않으면 찢어버렸다. 블록을 쌓다가도 실수를 하면 부숴버렸다. 맘대로 되지 않으면 심하게 소리 지르고 우는 일이 자주 반복되었다. 나는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그 또래에 흔히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초등학교 입학 후 선생님께서도 같은 이야기를 하셨다. 수업 시간에 맘에 들지 않으면 화를 내고 짜증을 내고, 찢어버리고, 부수어 버리는 일이 종종 있다고 했다. 다른 아이들과 좀 다르다는 이야기를 몇 번이나 들었다. 다른 아이 엄마들에게 몇 번이나 사과 문자를 보내고서도 전혀 아이가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학교에서 전체 학생을 대상으로 진행된 심리검사에서 ADHD라는 결과가 나왔다. 황당했다. ‘학교 검사라 어설픈가보다’라고 생각했다. 학교에서는 결과에 따라 상담사를 연결해주었다. 상담사는 병원 상담을 권유했다. 나는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내 아들이 ADHD라고? 집중 조금 못한다고 ADHD라는 거야? 초등학교 1학년이 집중을 너무 잘해도 문제 아닌가?”라며 결과를 부정했다. 이후 몇 달 간 담임선생님과의 통화는 지속되었고, 아이 행동도 날이 갈수록 격해졌다. 학교에 가기 싫어했고, 우리는 싸우는 횟수가 잦아졌다. 나도 사람인지라 언성이 높아지고 예민해져 갔다. 밤에 잠든 아이를 보면서도 화가 났다. 안쓰러운 마음과 힘든 마음도 교차했다.
지독한 쓴맛을 경험하고서야 선생님을 찾아갔다. 선생님의 권유대로 심리상담사를 만나 다시 검사를 진행했고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도저히 수용할 수가 없었다. 부정하고 또 부정했지만, 지친 나의 마음은 결과를 꾸역꾸역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급기야 상담사는 병원 상담까지 권했다. 화가 나고 자존심이 상했다.
“왜? 내 아이가 정신병원 상담을 받아? 이 나이 때는 이럴 수도 있는 거 아냐? 정확하지도 않은 결과로 무슨 근거로 판단을 하는데...”
생각할수록 화가 났고 이런 상황이 이해가 안됐다. 절망스러웠다. 더 솔직히는 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차라리 피가 철철 나서 아프다면 당장 들쳐업고 병원이라도 뛰어갈테다. 그것도 아니고 신경정신과를 내 발로 내 아이를 데리고 간다는 것은 상상해 본 적도, 상상하기도 싫었다.
여름 방학동안에도 지속된 돌봄 선생님과 잦은 통화로 내 인내심은 한계에 다다르고 있었다. 2학기를 맞이할 무렵 결국 신경정신과를 예약했다.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기며 남들의 시선을 잔뜩 의식한 채 병원으로 향했다. 3시간에 걸친 종합심리검사에서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더 이상 부인할 수가 없었다. ADHD라는 진단을 받고 약을 복용하기 시작했다. 그 후 2달 정도 됐을 때 심장을 때리는 전화가 걸려왔다. 담임선생님이었다. 또 무슨 일을 저질렀을까? 가슴이 두방망이질을 쳤다. 염소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어머님, 통화 괜찮으세요?
“네... 선생님”
“어머님, 오늘은 칭찬하려고 전화드린 거예요”
순간 내가 잘못 들었나 싶었다. ‘칭찬이라니, 무슨 칭찬?’ 떨리는 목소리로 통화를 이어나갔다. 약을 먹고 두 달 동안 아이는 많이 안정되어 보인다고 했다. 선생님과의 대화도 원만해졌고, 화도 많이 줄었다고 했다. 집중력도 높아졌다고 했다. 전화를 끊고 흥분되어 한동안 진정할 수가 없었다. 선생님도 상담사도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텐데 용기를 내주어서 오히려 감사하다고 했다. 예전의 그 막막함과 자존심은 다 잊어버린 채 그저 눈물만 흘렀다.
아이는 지금 4학년, 약을 먹은 지 3년이 다 되어 간다. 몇 번의 사건 사고는 있었지만 큰일 없이 지내왔다. 소량 복용하는 약임에도 얼마 전 학교에서 진행한 심리검사에서는 ‘양호’라는 결과가 나왔다.
‘그 때 약을 먹지 않았으면 지금 어떻게 됐을까? 내 자존심 때문에 아이를 망칠 뻔했구나.’ 그때 생각으로 가슴을 쓸어내렸다. 진단을 받고 병원에 발을 들여놓기까지 아이의 상태보다 내 자존심과 싸워야했다. 부끄럽고 창피해하는 내 마음이 병원을 허락하지 않았다.
아이가 세상에 나오던 날, 손가락과 발가락이 5개인지 확인하고 태어나줘서 고맙다고 했었다. 아프지 말고 건강하게만 자라달라고 기도했었다. 그 때의 나는 온데 간데 없었다. 오로지 자존심 때문에 아이의 상황을 부정하고 또 부정했다. 모든 생각을 내려놓지 않으면 상황이 더 악화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절감했을 때 비로소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의 난 그랬다. 아이의 일이 아니었다면 아직도 나를 내려놓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어떤 희생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혹독했던 한 번의 경험은 나를 내려놓을 수 있는 용기를 내게 했다. 그깟 자존심 없어도 사는 데 전혀 지장이 없다는 것도 알게 해줬다. 누구를 위한 것인지도 모르는 그 알량한 자존심이 밥 먹여 주지도 않는다는 것을 이제야 마음에 기록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