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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들이 Jan 23. 2024

|날 위해 써준 편지

 언젠가 나 자신에 대한 무력함에 삶을 잃어버렸을 때, 그때 날 살렸던 건 다름 아닌 편지 한 장이었다. 내가 어떤 상황에 처해있는지도 몰랐던 친구가 뜬금없이 내 손에 쥐여주었던 것. 나는 나의 이야기를 글이 아닌 곳에 꺼내지 않는다. 그리고 누구에게도 나를 들키지 않았다고 자부할 수 있었다. 그렇게 소문 없이 사라지는 것이 어쩌면 나의 작은 소망이었다. ​그런데 어쩜 이렇게  완벽한 시기에 편지를 써 주었을까.


 나는 마음을 들키기라도 한 걸까 손을 떨었지만 편지를 받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이제는 알아도 상관이 없겠구나 싶었다. 어차피 사라지고 나면 누군가는 나의 글을 보게 될 것이다. 나의 속에 무엇이 있었는지 누구 한 명쯤은 알아주길 바랐기에 내가 쓴 글들을 모두 어딘가에 숨겨놓았으니까. 그런 나를 가장 먼저 알게 된 게 너였다면 그다지 나쁜 결말은 아니었을 거다.


 삶에는 기적 같은 순간이 있다. 살다 보면 한 번쯤은 느끼게 되는 순간. 어쩌면 나도 모르게 지나갔을지도 모르는 그런 날. 네가 나에게 편지를 건네주었던 순간이 내 생에 두 번은 없을 기적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사실 편지를 받고 며칠이 지나서야 봉투를 열어보았다. 그때 나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줄 만큼 여유롭지 못했으니까. 편지를 열어보게 된 건 그 공허가 나를 현실에 붙잡아두고 있던 이성마저 삼켜버렸을 때였다.


 매일 밤 눈물로 지척이던 내가 가을의 낙엽처럼 푸석하게 말라버린 날. 발끝이 조금만 스쳐도 그대로 으깨져버릴 만큼 약해진 내 눈가에 편지봉투가 들어왔다. 나는 아무런 생각 없이 그 봉투를 열어 편지를 읽었다. 하지만 이미 멍해진 머릿속에는 어떠한 글자도 들어오지 않았다. 단지 종이 표면에 남겨진 검은 선의 흔적들을 눈으로 따라갈 뿐. 이해가 되지 않아 두 번, 세 번, 그렇게 다섯 번을. 어쩌면 그보다 더 많이 읽어야 했다. 보이지 않던 글자가 여러 번을 반복하니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어색하게 써놓은 인사말과 자질구레한 일상의 흔적들. 그다지 특별한 무언가를 전하고자 했던 편지는 아니었다. 아니, 너에게는 특별하였을지도.


 어쩌면 어제도 나누었을 다소 밋밋한 이야기였다. 하지만 나는 왜 울고 있을까. 슬플 겨를도 없이 이미 내 눈가에는 눈물이 가득했다. 말라버린 가지에 새파란 잎이 자라났다. 매일 겪던 일상이 단지 글로 적혀있을 뿐이었는데 뭐가 그렇게 슬퍼서 눈물이 나는지. 지금도 나는 그 눈물의 의미를 모른다.


 요즘 나는 다시 그날의 시작점으로 돌아가고 있다. 그리고 그 도착지가 어디인지 나는 안다. 내가 그곳에 닿기 전에 혹시 모를 또 한 번의 기적을 원하고 있지만 편지를 전해주었던 너는 이미 내 곁에 없기에, 기적은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 포기할 수가 없다. 네가 나타날 것만 같아서. 내가 숨 쉬고 있는 한 또 언젠가는 네가 나타나 그날의 편지를 써줄 것만 같아서.


 그 편지에 쓰인 말이 무엇이든 상관없으니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너의 언어를 내 안에 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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