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나를 두고 떠났다. 그건 내가 원했던 믿음과 원망의 원초적인 시작이다. 내가 조금 더 강경하게 말했어야 하는 걸까. 그랬다면 너는 나의 말을 들어주었을까. 내가 어떤 방법으로 너를 묶어놔도 너는 빠져나왔을지도 모른다. 나는 이 자리에 묶여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해바라기다. 태양이 저문 밤에도 달을 향해 고개를 치켜드는, 주름도 없이 빳빳하게 커버린 존재. 너는 그런 나에게 달도 태양도 앗아가 버렸다.
나의 세상이 너였음을 너는 알고 있었을까. 네가 그런 선택을 했다는 건 너의 세상은 내가 아니었다는 거겠지. 그런 느낌이다. 절친이라고 생각했던 친구에게 사실 나는 중요하지 않은 사람이었다는 배신감. 사실 이것보다 조금 더 심오한 무언가일 것이다. 넌 단순한 친구가 아니었으니까. 그래서 그렇게 가버리면 안 되는 거였다. 정말 그렇게 가버려서는 안 되는 거였어.
이제 그만.
너를 원망하고 싶지 않다. 너를 탓하고 싶지도 않다. 하지만 시간이 나를 그곳으로 몰아넣는다. 이제 나에게 존재하는 모든 시간에는 네가 없을 거잖아. 함께한 시간보다 함께할 시간이 많았어야 했던 거잖아. 아, 또 이렇게 널브러지는구나. 너는 나를 조울증 환자로 만들고 있다. 너의 미소와, 너의 눈물과, 너의 찡그림과, 너의 공허가, 떠오를 때마다 나는 네게 투영된다. 설령 그게 싫다 하더라도 그렇게 되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가끔 이런 생각을 하기도 한다. 내가 널 붙잡고 있는 게 아니라 네가 날 붙잡고 있는 건 아닐까. 그럼 이제 그만 놓아달라고, 제발 놓아달라고 목놓아 소리도 쳐보지만 내가 미친 건가. 미쳐가고 있는 건가. 아, 모르겠다. 네가 나인지 내가 너인지. 이제는 정말 모르겠어. 내 머릿속 당신이 진짜인지 가짜인지도. 그렇다면 나의 원망은 어떻게 되는 거지? 나의 믿음은?
이건 정돈되지 않은 내 머릿속의 푸념이다. 행복이 행복이 아니게 되는 순간, 슬픔이 슬픔이 아니게 되는 순간. 모든 감정은 거짓이 된다. 이제는 나 자신을 믿는 것이 어렵다. 내가 쓰는 언어와 표현. 내가 느끼는 감각과 감정. 그게 진짜 내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방금 했던 이 생각까지도 말이야. 나는 어떤 사람일까. 어떤 모습이 진짜 나인 걸까. 나는 정말로 미쳐가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완전히 미쳐버리게 되면, 진짜 네가 있는 곳을 찾게 될 것만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