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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들이 Feb 16. 2024

|부서진 희망, 그러나.

 깨진 찻잔이 다시 붙는다. 본드나 테이프 따위로 복원하는 것이 아니다. 찻잔이 깨진 자리에서, 당신과 나의 숨으로 스며든 미세한 조각까지도 본래의 자리를 찾아 역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나를 흥분하게 한다. 불가항을 넘어선 잘못된 순리. 그 어딘가에 있는 작은 희열. 또, 그 뒤에 간신히 서있는 기쁨. 놓친 줄로만 알았던 기회가 끝이 아니었다면, 두려움과 희망 사이를 저울질하기에는 이미 충분한 것이다.


 나에게는 저울이 두려움으로 치우친다. 결코 이 현실이 영원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찻잔은 언젠가 다시 한번 깨지고 말 것이고 아주 만약에, 설령 그럴 일이 없다고 하더라도 나는 긍정과 동시에 부정된 결말을 끌어오고야 만다. 다만 아무리 생각하고 생각해도 결국 그 현실이 닥치면 또 한 번 무너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암시하고 되뇌어도 눈앞에서 보는 현실은 분명히 다른 거니까. 나는 두려움을 좇으면 눈이 먼다는 걸 알면서도 두려움을 향해 나아가는 모순된 인간이다.


 너는 어떠할까. 너는 희망에 손을 내밀었겠지. 끊어진 동아줄도 어떻게든 다시 묶어 올라가고자 하는 사람이니까. 하지만 나는 알아버렸다. 이 찻잔을 다시 붙인 게 바로 너라는 걸. 그걸 깨달았을 때,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하냐고도 물을 수 없었다. 마술사가 트릭을 공개하지 않는 것처럼, 내가 묻는다고 한들 너는 발뺌할 것이 분명했으니까. 너는 그렇게라도 나를 바꾸고 싶었던 거다. 나의 희망은 부서지지 않았다고. 아직 늦지 않았다고 말야.


 하지만 나는 변화하고 싶지 않다. 적어도 지금은 말이다. 희망과 절망이 동시에, 게다가 내가 가장 원했던 꿈 앞에서, 그것도 여러 번 무너지는 일을 겪다 보면 이렇게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런 시기에 제자리에 안주하겠다는 건 정말 위험한 생각이겠지만, 지금의 나는 아침에 눈을 뜨는 것만으로도 한 걸음을 나아가는 일이 되어버렸다. 적어도 오늘 하루는 살아가겠다는 의미일 테니까. 그렇다고 너의 바람이 완전히 부서졌다는 건 아니다. 적어도 그 찻잔이 계속 붙어있는 한, 나는 매일 아침 눈을 뜨기를 반복하게 될 테니까.


 어쩌면 너는 지금 이 순간까지 예상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이렇게라도 눈을 뜨다 보면, 나는 네가 바라는 사람이 될 수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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