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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들이 Mar 02. 2024

|밤의 근시

 밤이 흐려졌어. 나는 낮보다 밤을 더 좋아해. 빛으로 가득한 세상은 되려 나의 시선을 가늠하지 못하고, 빛을 밀어내며 검은 하늘이 내 발등에 떨어졌을 때 나는 비로소 깨끗한 눈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되는 거야. 나는 어두운 곳에서 더 선명함을 느껴. 적어도 지금까지는 그랬다는 거지. 어느 순간부터 느껴지긴 했어. 내가 바라보는 밤이 조금씩 변하고 있다는 걸. 시선을 사로잡던 선명한 그림자의 경계가 조금씩, 아주 조금씩, 옅어지고 있었거든.


 내 옆에 있던 네가 자라는 것을 나는 눈치채지 못해. 왜냐하면 항상 곁에 있었으니까. 너의 변화에 둔감해진 거겠지. 그러다 어느 순간, 네가 나보다 더 큰 존재가 되어버렸구나 싶을 때가 있어. 그런 순간이 오면 조금의 거리감이 느껴지고는 해. 누구보다 가까웠던 네가 더 이상 나와 함께 걸어갈 수 있는 보폭이 아니라는 걸 깨닫고 마는 거야. 단순히 네가 더 뛰어나서 멀어진다는 소리는 아니야. 모두가 강의 흐름을 거슬러 헤엄치고 있지만 나는 두리둥실 떠밀려가고 있을 때.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써 너를 더 큰 존재로 보게 되는 거지.


 흐릿해진 밤을 보며 같은 감정을 느꼈어. 더 이상 이 밤은 나의 것이 아니게 되겠구나. 내가 움직이지 않은 만큼 밤은 조금씩 멀어져 버린 거고 이제는 그 차이가 명확해질 정도로 밤은 더 큰 의미를 지니게 돼버린 거야. 내가 정말 사람이라면 그래서 간절히 바라는 것이 있다면 멀어지는 의미와 이름을 좇아가기 위해 온 힘을 다해야 하는 건데, 이상해. 나는 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을까. 이렇게 흐릿해지다가, 점점 더 흐릿해지다가, 나의 밤이 낮과 다르지 않은 세상으로 변해버린다면 나는 그제서야 진심 어린 후회가 무엇인지 알게 되는 걸까.


 밤을 잃은 나는 내가 아니게 될 거야. 두 눈의 초점은 잡히지 않고 하나가 된 세상을 반으로 갈라보며 그 하나뿐인 세상까지도 등지고 결국 뒤집어지겠지. 그렇게 더 깊은 곳으로, 가늠할 수 없는 낮과 밤의 어딘가 갇혀서 더, 더, 깊은 곳으로.


 빛과 어둠. 매번 이것들에 대한 생각을 하지만 사실 내가 정의하는 빛과 어둠이 무엇인지 나도 모르겠어. 몇 년 전의 나였다면 분명히 알았을 텐데. 아, 나는 이미 나를 한 번 잃었었구나. 단지 나는 마음이 이끄는 곳으로 한 걸음씩 내딛은 거고, 나아간 걸음 위에서 매일 눈을 뜬 것뿐인데.


 이러다 다시 선명한 밤을 되찾을지도 모르지. 아마 그건 그것대로 좋을 거고 아니면 아닌 대로, 뒤집힌 세상도 결국에는 내가 선택한 길일 테니까.


 안녕. 선명한 밤.

 이 순간만큼은 생각을 멈추고, 아직은 나누어져 있는 나만의 밤을 마음껏 들이키겠어.

 너는 어때? 나와 함께 여기 있어줄 생각은 없는 거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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