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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동나동 Sep 09. 2019

수학자들은 덕후인가 (3편)

수학자, 과학자의 집착은 언제나 매력적인가?


<매드 사이언스 북>은 실험이 과학적 방법론으로서 확고한 지위를 획득한 이후에 벌어진 온갖 실험에 대한 이야기다. 과학지식이란 방대한 지도에서 미지의 영역을 몰아내겠다는 집념과 열정이 가득한 책이다. 동시에 그에 뒤지지 않는 광기도 살벌하다. mad(미친)와 science(과학)이란 조합은 열정과 광기 사이 간극을 효과적으로 표현한다. 소재 자체도 흥미롭지만 살짝 살짝 곁들이는 과학전문기자의 농담도 유쾌하다. 물론 어떤 농담은 여전히 낯설지만. 과학전문기자가 진득하게 한 분야에 전념할 수 있는 현실은 부럽기만 하다.


<매드 사이언스 북>에는 오늘날 기준으로는 용납하기 힘든 실험도 다수 포함되어 있다. 병원균의 실체를 확인하게 위해 자신을 대상으로 임상실험을 하는가 하면, 단두대에서 잘린 사람 머리를 몰래 훔쳐와 전기를 흘려보내기도 한다. 그 실험 가운데는 유용한 발견으로 이어지는 아이디어를 제공한 사례도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수학자들의 오덕스러움은 진리를 탐구하는 자가 감내해야할 고통으로 미화되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 일정하게 이름을 남긴 수학자 이야기만 대중에게 소구되기 마련이므로 결과는 다분히 교훈적이기도 하다. 하지만 현실은 꼭 그렇게 아름다운 것만은 아니다. 수학자도 사람이다. 아무리 수학이 특별한 동기 없이도 지적 요구를 자극하는 학문이라지만 당대의 관념을 초월한 채 존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수학이 가르쳐 준 집요함은 항상 그렇게 매끈하게 작동하지 않는다. 


합리적 태도와 신비주의적 태도의 공존


데카르트는 근대철학에서 합리주의 사조의 대표주자로 유명하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명제는 중세를 끝내고 근대를 열었던 이성의 승리를 상징하는 문구로 자주 인용된다. 르네상스 이후로 그리스 정신이 부활하면서 신의 언어는 인간의 언어로 바뀌기 시작했다. 당시 철학자들은 대부분 수학자였고 논리체계도 유클리드 <원론>에서 체계잡힌 공리-정의-정리로 이어지는 수학적 논증방식을 채택했다. 뉴턴의 <프린키피아-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와 스피노자의 <에티카>는 물론 미국의 독립선언문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책과 문서들이 <원론>의 형식을 따라했다. 


데카르트는 최초로 좌표를 도입한 사람으로도 유명하다. x축, y축을 설정해서 사용하는 가장 흔한 직교좌표계는 영어로 Cartesian coordinate라고 부르는데 데카르트가 만든 좌표계라는 뜻이다. 데카르트는 30년 전쟁 당시 용병으로 참여했는데 병영 침대에 누워 있을 때, 날아다니는 파리의 위치를 설명하려고 좌표를 고안했다는 일화가 있다. 좌표시스템과 함수 개념 도입이라는 엄청난 변화는 이렇게 사소한 생각에서 출발했다. 


그런데 데카르트도 당연히 삽질을 했다. 내세에 대한 믿음은 여러 종교에서 쉽게 발견된다. 서양에서는 피타고라스-플라톤으로 이어지는 신비주의 흐름이 초기 기독교로 이어져 신화의 시대에서 유일신의 시대로 넘어가는 이론적 배경을 제공해주기도 했다. 이성을 강조하는 경향은 대체로 육체와 정신이 분리되어 있다는 이원론과 연결된다. 이런 경우에는 대체로 정신이 육체보다 우월하다는 입장에 서는 경우가 많다. 더 나가면 육신은 죽어도 영혼은 불멸한다는 생각으로 이어지는데 이성의 절대적 우위를 믿었던 데카르트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러다보니 자연히 육체와 영혼이 따로 존재하는데 이 둘이 어떻게 복합적으로 작용하는지 설명해야만 하는 난처함에 처한다. 결국 데카르트는 육체와 영혼을 연결시켜주는 송과선이란 기관이 있다는 주장까지 하게 되는데 말도 안 되는 억지인 것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될 듯하다. 이 문제는 근본적으로 파고 들어가면 여전히 설명이 쉽지 않은 지점에 도달하지만 과거에 설명이 되지 않았던 질문은 대부분 뇌과학으로 설명이 가능하다. 


그런가 하면 수학사에 빼놓을 수 없는 천재, 미적분학과 근대 물리학의 창시자 뉴턴 역시도 비슷한 오류를 범한다. 이 천재는 여러 분야에 걸쳐 숱한 업적을 남겼지만 본질적인 정신세계는 신비주의자의 면모를 갖고 있었으며 독실한 기독교 신자이기도 했다. 꼭 연관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불우한 가정사와 연결시켜 설명하는 사람들도 있다. 아버지는 뉴턴이 태어나기도 전에 세상을 떠났고, 어머니는 3살 때 떠나 11살 때 재혼해서 돌아왔다. 뉴턴은 양아버지를 매우 싫어했는데 비참한 가정생활을 잊게 해주는 유일한 낙은 자연에 대한 관심이었다.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았던 탓에 대학에서도 친구가 많지 않았다고 한다. 


뉴턴은 혼자 방에 틀어박혀 고대 그리스의 철학과 수학을 공부했다. 뿐만 아니라 소수의 고대 철학자들만 알았다는 비밀스런 연금술이 재발견되리라 생각했다. 평범한 금속을 금과 은으로 만들고 더 나아가 불멸을 가능케 하는 생명의 영약을 만드는 방법이 있다고 믿고 직접 실험도 했다. 그런가하면 성경 속에 신의 명령이 숨어 있다고 생각해 여러 언어로 번역된 성경을 뒤져가며 있지도 않은 암호를 찾으려 애썼고 수학적 방법을 동원해 신의 재림 날짜를 알아내려고 하기도 했다. 이런 노력은 한 순간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이어졌다. 


객관 이전에 존재하는 의지


수학법칙을 흔히 진리라고 부른다. 이것은 조건 없이 참이라는 말이다. 수학이론은 항상 가치중립적인 포즈를 취하고 있다. 그런데 그 동일한 결과를 써먹는 사람에 따라 결론은 완전 판이하다. 


맬더스라는 유명한 고전경제학자가 있다. 맬더스는 『인구론』이란 책에서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 증가하는데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는 이론을 전개한다. 쉽게 말해 식량은 100, 101, 102, 103, 104, ... 이렇게 일정한 양이 증가하는데 인구는 1, 2, 4, 8, 16, 32, ... 이렇게 일정한 비율로 증가한다는 의미다. 그럼 어떻게 되겠는가? 당장엔 식량이 훨씬 많아도 시간이 흐르면 인구가 식량을 추월한다. 맬더스는 이 이론으로부터 다음과 같은 결론에 이른다. 시간이 흐르면 인구에 비해 식량이 모자라는 현상이 일어나는데 이것은 자연의 법칙이다. 따라서 인간이 굶주리고 죽는 것은 사회나 경제제도의 문제가 아니다. 그냥 자연법칙이다. 따라서 죄책감을 느끼지 마라. 그렇게 자연스럽게 세상은 다시 균형을 잡아간다. 


맬더스는 19세기 중반 영국 산업혁명 시기에 자본가 입장을 대변한 고전경제학자다. 1842년에 도입된 광산법은 10세 이하 아동노동을 법적으로 금지시켰다. 이 말은 거꾸로 당시에 10세 이하의 아동노동이 횡행했다는 이야기다. 19세기 런던 노동계급의 평균수명은 20세를 넘지 못했다. 맬더스는 이런 잔혹한 체계를 정당화하기 위해 수학을 끌어들인 것이다. 


맬더스 인구이론은 19세기 영국에서 몇 십 년간 잘 들어맞다가 용도폐기 된다. 일단 출산율이 일정하다는 가정 자체가 맞지 않았고 식량증가나 인구증가 패턴도 예상과 맞지 않았다. 그러나 이런 견강부회식 이론은 엄청나게 많았고 앞으로도 많을 것이다. 슬프게도 이 이론들이 자신을 정당화하는데 수학을 동원한다. 모든 실천 앞에는 의지가 먼저 존재한다. 객관은 가장 극단적인 주관 속에서 태어나기도 한다. 오덕스러움과 광기는 한 끗 차이다. 아름답고도 싸늘한 이야기다. 


수학자들은 덕후인가(1편)

https://brunch.co.kr/@nadongpeace/10

수학자들은 덕후인가(2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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