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애하는 나의 집에게>
집에 관해서라면 누구나 저마다 책 한 권씩은 할 이야기가 있을 것이다.
얼마 전, 업무차 필요해서 주민등록등본(초본)을 뗐더니 스무 번 이상의 이사 기록이 뜬다. 당연히도 나는 그 집들을 다 기억하지 못한다. 어떤 집은 그저 스쳐 지나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니 그 집에서 밥을 먹고 잠을 잤는데 어떻게 그럴 수 있지? 지나간 시절이 길어질수록 기억의 상대적 길이는 짧아진다. 1년을 머물렀다 해도 내 몸과 마음이 부유하던 시절에는 집이란 그저 잠시 몸을 누이는 곳이었고, 나는 그 집을 드나드는 유령과 같았던 때도 있었다.
가끔 잠이 안 올 때마다 양을 세는 대신 이사 다녔던 집들을 순서대로 떠올렸던 적이 있다. 어떤 집은 아예 생각이 나지 않는 반면, 어떤 집은 거기 얽힌 구체적 기억을 소환하기도 해서 기억이 구체성을 띨수록 시간도 잘 가고 잠도 잘 온다. 그래서 늘 지금 머무르는 집에 이르기 전에 잠이 들었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은 여전히 의미를 만드는 와중이기 때문에 그 의미를 정확히 알 수 없다.
집은, 내가 그 집과 이별하고 난 뒤에야 의미를 갖는다는 작가의 관점이 평소 내 생각과 너무 비슷해서 단숨에 읽었다. 빈곤과 청춘이란 책에 달린 참고 목록처럼 줄줄이 달려 있는 이사 기록. 오랜만에 지난 시간 거쳐왔던 집들을 생각했다. 집 하나씩 들를 때마다 거기 머물던 그땐 뭘 하며 지냈는지를 생각해 봤다. 유무형의 요소들이 만들어낸 과거의 모습들과 집의 상관관계를 떠올렸다. 신기하게도 집이 우울한 모습을 하고 있을 땐 대체로 나도 우울하고, 집이 희망찬 모습을 하고 있을 땐 나도 그랬다. 아니 인과관계는 그 반대였을 수도 있다. 어쨌든 집은 나를 닮아간다.
애틋한 전반부를 지나면 후반부는 그래도 조금 포근하다. 나름대로 자기 스타일을 찾아 안정감을 찾아가는 와중에도 여성으로서 집이란 무엇인가 고민을 놓지 않는 후반부를 더 좋아하는 사람도 있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