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량살상 수학무기>
빅데이터 분석으로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점을 들여다보고 싶은 경우 추천. 한국의 경우 인터넷 관련 인프라가 발달해 빅데이터를 모으기 좋은 환경이다. 그만큼 폐해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상황. 가장 먼저 와 닿는 건 SNS로 인한 폐해다. 시도 때도 없이 뜨는 맞춤형 광고, 외모에 대한 과시욕과 절망감을 조장하는 다양한 사진 편집 어플, 기호를 분석해서 연결시켜주는 온갖 쇼핑채널, 확증편향을 강화하는 알고리즘과 가짜뉴스들. 가끔은 내 일상이 스마트폰과 SNS에 지배당하고 있는 게 아닐까 싶은 정도. SNS와 관련해서는 넷플릭스에서 인기를 얻었던 다큐 <소셜 딜레마>를 같이 챙겨보면 좋다.
이 책을 나오는 예들은 좀 더 미국적이이다. 정확히는 자본주의적이다. 공공성이란 필터가 약할수록 제어받지 않는 시장은 우려되는 상황을 좀 더 노골적인 방식으로 밀고 나간다. 기업에 의해 상품화되었거나 각종 기관 등에 의해 시스템화 된 빅데이터 악용 사례를 읽다보면 지금 한국의 현실은 그나마 다행이라 해야하나 싶을 정도로 소름 돋는 대목들이 많다. 공적 영역까지 상당 부분 시장에 맡기는 경우가 많다. 한편으로는 이미 우리 일상에 들어와 있지만 보지 못했던 것들을 다시 생각해 보게 되기도 한다.
<소셜 딜레마> 인터뷰이들처럼 이 책의 저자도 빅데이터 분석에 관여한 전문가다. 수학 전공자이기도 해서 빅데이터 분석 알고리즘에도 익숙하다. 문제는 눈높이. 대개 수학을 전공한 사람들이 쓴 책들은 퀄리티가 들쭉날쭉한 편이다.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과 대중적 눈높이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다 길을 잃어버리기 일쑤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이 책의 저자는 대중서에 대한 감각이 꽤나 뛰어난 편이다.
관련 기업에 종사했다가 환멸을 느끼고 빠져나온 케이스로 일종의 내부고발자와 비슷한 관점을 공유하고 있다는 점도 중요한 독서 포인트. 대개 이들은 전문가, 투자자, 연구자, 노동자 등 복잡한 정체성을 갖고 있다. 원래부터 정해진 포지션이랄 게 없기 때문에 선택에 따라(해리포터가 그린핀도르를 선택했듯, 운명은 결국 자신이 결정하는 거야!) 입장이 갈린다.
저자는 기본적으로 빅데이터 분석이 공공성 확장, 불평등 완화, 민주주의 발달을 위해 충분히 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입장. 하지만 규제 없이 이윤추구를 위해 폭주하는 자유시장체제와 기업을 법과 정치가 제어하지 않으면 기본권과 민주주의가 크게 위협받을 것이라는 입장. 그래서 대량살상무기(Weapons of Mass Destruction, WMD)에 빗대 대량살상 수학무기(Weapons of Math Destruction, WMD)란 제목을 붙였으니, 이 입장에 동의하며 논리를 갖추고 싶은 사람이 읽기에는 더없이 좋은 책이다.
수학 모형은 우리의 도구여야지 우리의 주인이 되어서는 절대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