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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도우 Feb 21. 2024

이상한 사랑 9

아빠와의 마지막 50일

아빠의 사업정리가 마무리 되어갈 시점이 되니, 어느덧 병원에 갈 날짜가 다가왔다.


암은 시간과의 싸움이라는데, 그 사이 너무 시간을 허비한 건 아닌지 조바심이 났지만 좋은 병원에 가야 한다는 생각에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아빠는 묵묵히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원체 표현을 안 하기도 해서 표정을 읽을 수는 없지만, 생각이 늘 많은 얼굴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삼시세끼는 꼬박꼬박 먹었다. 그 전에도 아빠는 식사는 꼬박 챙겨먹는 '삼식이'였다. 아침은 무조건 밥을 먹어야 하고, 저녁에 술을 아무리 먹어도 해장으로 '식사'를 해야 했다. 엄마는 그 모습을 보며 "징글징글"이라고 표현했지만, 지금은 '삼식이'의 모습이 필요했다. 체력이 있어야 수술도 할 수 있다.



병원 가는 날, 나와 아내가 휴가를 내고 동행했다. 이제 어디를 가던지 엄마 혼자는 무리다. 아빠를 간신히 침대에서 일으켜 세우고 손에 지팡이를 쥐어주었다. 아빠는 한 걸음, 한 걸음 어렵게 내딛으며 걸었고 그나마 타기 편한 조수석에 앉았다. 운전석에서 본 아빠의 모습은 등이 조금 굽어져 있었다. 늘 호탕하게 소리치던 아빠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난 슬퍼하지 않았고 이를 악물었다.


다행히 병원 가는 길은 갈만했다. 그나마 집과 가까운 곳을 선택해서 40-50분이면 충분했다. 아빠가 다니던 병원이라 아빠도 친숙할 것이고, 소위 '네임드 병원'이기에 믿을 만도 했다. 그럼에도 운전하면서 많은 생각들이 스쳤다. '정말 암을 고칠 수 있을까?', '앞으로 치료를 받으려면 내가 다녀야 하는데, 휴가를 그렇게 낼 수 있을까?', '언제까지 이 싸움을 해야 할까?' 등등.


차 안의 공기는 무거웠다. 나는 내 머릿 속의 잡생각도 떨쳐낼 겸 어떻게든 그 공기를 바꿔보려 아무 말이나 쏟아냈다. 아빠는 운전하며 둘러보는 걸 좋아했다. "아 이곳이 이렇게 바뀌었구나", "내가 다닐 때 이 곳에 아무 것도 없었는데.."라며 그 근방의 지형지물을 설명해주고 눈에 담아뒀다. 그래서 그런지 아빠는 지리에 훤했다. 그리고 이제는 내가 그렇게 말을 쏟아내고 있었다.



드디어 병원에 도착했다. 좋은 일로 오는 건 아니다보니 여러모로 모두 긴장한 상태였다. 당시는 코로나19가 한창 창궐하던 시기, 당연히 병원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아빠는 걸음이 느렸기에 위험할 거 같아 병원에서 대여할 수 있는 휠체어를 구해 아빠를 앉혔다. 불과 몇 주전, 응급실에 갔을 때는 걸음이 느린 아빠를 타박했다. 아빠가 아프니까 이제서야 휠체어에 앉히는 내 자신이 또 한 번 원망스러웠다. 


접수를 마치고, 담당 교수를 만날 차례였다. 코로나19라 보호자는 단 한 명만 들어갈 수 있는 상황이었다. 아빠와 엄마가 들어갔고 나와 아내는 밖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주위를 둘러보니 정말 아픈 사람들 뿐이었다. 아빠가 이렇게 갑자기 환자가 될 줄은 몰랐다. 기적이 있기를 바래야 했다. 


단 몇 분의 기다림이 몇 시간처럼 느껴졌다. 

(이상한 사랑 10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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