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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도우 Jun 14. 2022

이상한 사랑 1

아빠와의 마지막 50일

나는 아빠를 아버지라고 부르지 않는다.


올해 나이가 30대 중반인데, 으레 남들처럼 "아버지"라고 부르는 게 여전히 낯 간지럽고 또 남들과 다르게 보이고 싶다는 이상한 심리 때문이다.


아빠 이야기를 이렇게 꺼내는 것은 기록하기 위함이다. 

지난해만 해도 아빠와의 마지막 기억들이 생생했는데, 이제 점점 기억이 왜곡되고 그 때의 감정들이 흩어지기 시작한다. 더 시간이 지나면 어렴풋이 생각나는 기억과 감정들에 의존해 아빠를 떠올릴까봐 조금이라도 마지막 순간들을 기억하는 때에 글을 써야겠다고 다짐했다.


그 다짐만 하다가 1년이 흘렀다. 이제 안 되겠다 싶어 아빠와의 마지막 50일을 쓰려 했는데, 그 사이 아빠라는 단어보다 아버지라는 단어를 쓰고 싶어졌다.


이유는 모르겠다. 다만, 아버지라는 호칭이 아빠의 인생을 존중하는 것 같고 아들로써 이제 아버지라고 불러야 할 것 같다. 아버지는 어떤 호칭으로 불리길 좋아했을까? 세상을 떠나고 난 뒤에, 물어볼 것이 너무 많아졌고 나도 이제서야 철이 들어가고 있는 것 같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기 약 50일 전 쯤이다.


나는 아내와 함께 제주도 여행 중이었다. 서로 회사 일에 지쳐 일상을 뒤로 하고 어디든 여행 가고 싶었는데 마침 일정이 맞게 되어 코로나19 시국임에도 제주도로 떠났다.


제주도의 유멍 맛집과 좋은 숙소 그리고 렌트카도 BMW미니 컨버터블을 빌려 여행 내내 '플렉스'했다. 

'아, 이게 사는 맛이지'

날씨는 어찌나 좋았는지 지금도 사진을 찾아보면 그림 속에 우리 부부가 있는 것 같았다. 모든 게 좋았고 행복했는데, 이상하게 어떤 느낌이 좋지 않았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찝찝한 감정이 여행 내내 느껴졌다. 하도 회사 일에 치여 살다 보니 그런 건가,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제주도에서 돌아오는 날 저녁은 가족 모임이었다. 아버지와 엄마, 동생네 부부 그리고 우리 부부까지 총 여섯 명이 부모님 집에 모이기로 했다. 나와 아내는 끝까지 놀다가 갈 생각이었기에 여행 계획을 모임 직전까지 잡았다. 빠듯하게 비행기를 타고 다시 공항버스로 안양까지 오다 보니 당연히 피곤함이 쌓였다.


가기 귀찮았지만, 그래도 모처럼만의 가족 모임인데다 동생은 임신까지 한 상태여서 다음으로 미루기도 힘든 모임이었다. 엄마는 오랜만에 솜씨를 발휘해 맛있는 음식들을 내오고 우리는 음식들을 날랐다. 아버지는 불 꺼진 안방 침대에 누워있었다. 


드디어 맛있는 식사가 차려지고 아버지만 거실로 나오면 된다.

"나와서 식사 하셔"

그런데 아버지는 밥을 안 먹겠단다. 엄마 말로는 갑자기 저런다며 나보고 아버지를 끌고 나오라고 했다. 처음엔 두 분이 싸웠나 했는데, 그건 아닌 것 같았다. 아버지는 가끔씩 자기 기분에 따라 밥을 안 먹기도 했고, 나중에 따로 뒤늦게 먹을 때도 있었다.


그래도 오늘 어렵게 모였는데, 아버지 없이 식사하는 건 좀 그런 것 같아 '아버지의 최애' 며느리를 등판시켰다. 나는 안방에 불을 켜고 누워있는 아버지에게 "같이 밥 먹아, 아버지가 있어야 밥 먹지! 얼른"이라고 말하며 재촉했고 아내 역시 "같이 드셔야 저희도 마음 편하게 먹죠. 조금이라도 같이 드세요"라며 아버지 설득에 나섰다.


결국 아버지는 못 이기는 척 침대에서 일어나 거실로 나왔다. 당시 아버지는 하체에 힘이 없다면서 의자를 끌고 다니기 시작했는데 이날 유독 힘들어보였다. 간신히 자리에 앉았지만 아버지는 밥을 한 술도 뜨지 않았고,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왜 안 드셔?"

"입맛이 없어"

결국 아버지는 그날 식사 자리만 함께 했고, 바로 안방으로 들어가 누웠다.


가끔 그런 모습을 봤던 나는 별 느낌이 없었지만 아내는 달랐다. 아내는 "오늘 아버님 좀 몸이 안 좋아보여"라며 느낌이 이상하다 했고 나는 "그런가?"하며 저녁 시간을 곱씹어보았다.


'삼식이'라 불리며 삼시세끼 밥은 어떻게든 챙겨 먹는 아버지는 숫가락을 들지 앉았고, 우리 사이에서 '토크왕'이라 불리던 아버지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이따금 우리 이야기에 희미한 미소로 반응할 뿐이었다.


잠들기 전, 생각이 많아졌다.

'그래, 어딘가 안 좋아보이긴 했어. 올해 꼭 건강검진을 해야겠다'


그리고 다음날,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아빠가 침대에서 못 일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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