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와의 마지막 50일
꽤 긴 시간이 흘렀다.
엄마와 아빠는 나오지 않았고, 응급실에서는 정밀 검사가 필요하다는 소견을 받았다.
결국 밤을 넘겨 그 다음날 아침까지 검사를 받아야 했기에 엄마와 아빠는 응급실에서 밤을 보내야 했다.
나는 다시 발걸음을 돌려 집으로 향했다.
사실 이 때까지만 해도 '큰 병은 아니겠지' 라며 크게 마음을 쓰지 않았다. 아빠가 소아마비를 앓았고, 다리가 약간 불편하지만 그동안 큰 병 치레를 하지 않았을 뿐더러 늘 삼시세끼를 챙겨먹는 '삼식이'이기에 이번에도 대수롭지 않게 하나의 '에피소드'로 흘러갈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그렇게 생각해야 마음이 편했다. 아빠의 건강은 늘 이렇게 대했다.
다만, 이제 아빠의 나이도 있고 점점 쇠약해져 가는 아빠의 모습에 새삼 '아빠가 병원에서 나오면 올해는 꼭 건강검진을 해야겠다' 이 생각 뿐이었다.
다음 날, 다시 병원을 찾았다.
나는 급하게 휴가를 냈고, 소식을 들은 아내도 함께 했다. 아내는 당시 우리나라에 손꼽히는 대기업 이직에 성공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와중에도 시간을 내줬다. 아내는 매사에 현명하고 꼼꼼해서 같이 있으면 의지가 되는 좋은 사람이다.
병원 앞 식당에서 만난 엄마는 생각이 많아 보였다. 며느리가 앞에 있어 애써 웃어보였지만, 아들은 속일 수 없다. 아빠는 병원에 입원을 해야 했다. 생각지도 않았던 폐 조직검사를 해야 하고, 엄마 말로는 피가 섞인 가래가 나온다고 했다. 아내와 생각했던 가장 안 좋은 시나리오가 그려지고 있었다.
아빠의 병명은 '폐암 3기'였다. 말이 3기지, 거의 말기에 가까운 중증환자였다. 병원에서는 온갖 검사를 하며 "이 곳에서 빨리 수술을 받으셔야 한다"고 설명했다. 엄마는 갑작스럽게 암 환자의 아내가 되었고, 나도 생각지도 못했던 암 환자의 가족이 되었다. TV 뉴스나 다큐에서만 보던 암 환자가 아빠가 되는,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처음에는 멍했다. 어떻게 해야할 지 몰랐고, 이걸 받아들여야 되나 싶었다.
'이 병원이 잘못 진단한 건 아닐까?' 의심이 들다가도 '아빠는 왜 이 지경까지 몸을 혹사시킨 거야"라고 아빠탓을 하다가도 '올해 건강검진을 갔어야 되는 건데, 아니 작년에 갔어야 했는데..' 온갖 후회가 밀려왔다.
수많은 감정과 생각들이 반복됐고, 이 날부터 우리 가족의 모든 생활 패턴은 아빠 케어로 맞춰졌다.
일단, 아빠가 하고 있는 사업부터 정리해야 했다.
아빠는 부탄가스 재충전사업 대리점을 하고 있었다. 오래 전부터 해오던 LPG 판매업이 내리막길을 걷자, 이 사업으로 전환해 오랫동안 운영해오고 있었다. 하지만 나이가 70이 가까워오니 체력적으로 힘에 부쳐 가끔 일손이 모자라면 아빠의 친구들이나 엄마가 배달을 도와주곤 했다.
아빠는 참 부지런한 사람이었다. 매일 아침 6-7시에 기상해 신문을 읽고, 아침밥을 먹고, 내가 출근할 즈음에 영업용 1톤 트럭에 가서 부탄가스를 정리하고, 판매 장부를 일일이 수기로 기입해 관리했다. 평일, 주말 가릴 것 없이 배달 전화를 받았고, 수많은 사장님들을 상대했다. 안양, 군포, 의왕을 내비게이션 없이 구석구석 누비며 '남 사장님'이라고 불려온 지도 거의 30년은 넘었을 것이다.
그런 아빠의 일을 생각해보니 난 거의 도와준 적이 없었다. 장성한 아들이 있는데도 아빠는 나에게 "도와달라"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고, 못난 아들인 나도 대학생 때 한 두 번 일을 거들고 말았다. 아빠는 언제나 강할 것이고, 안 아플 거라는 이기적인 믿음 때문이었다. 이건 어쩌면 의도적인 외면이기도 했다.
아빠가 갑작스럽게 입원하면서 아빠의 부탄가스 배달을 기다리던 식당 사장님들의 전화가 빗발쳤다. 알바를 두고 한 사업도 아니라 내가 직접 나서야 했다. 아빠의 일을 경험한 적 없는 내가 불안한 엄마는 입원해있는 아빠를 두고 나를 도와주기로 했다.
해가 뉘엿뉘엿 지는 시간이었다. 자동차 창 밖으로 비치는 사람들의 모습은 평화로운데 차 안의 공기는 점점 무거워졌다. 조수석에 앉은 엄마는 큰 이모와 작은 이모에게 전화해 말했다.
"도우 아빠, 폐암이래. 나 어떡해"
엄마는 참았던 눈물을 터트렸고, 난 엄마가 그렇게 오열하는 걸 처음 봤다.
아빠가 암이라는 걸 처음 실감한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