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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도 Dec 27. 2021

네가 지나간 환상

자욱한 너를 닦아내지 않고 있다


너만큼 예쁜 사람을 또 만날 수 있을까. 네가 스쳐간 모든 것들에 남겨진 자욱들은, 수려한 그림 위의 멋들어진 서명 같다. 그 그림에 가장 잘 어울리는 모습으로 너의 존재를 내게 드러낸다. 왜 너의 시간은 예쁘기만 할까. 왜 너와 함께 있으면 난 좋은 사람이 될까. 왜 너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을까. 왜 더 이상 시간이 지나감에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을까. 

너 때문에 난 겁나는 게 없는 당돌한 사람이 되어 웃음으로 세상에 날 보인다. 네가 좋아하는 입꼬리로 세상에 도전장을 내밀 수 있을 것만 같다. 너는 내 눈웃음을 좋아한다지만, 난 너의 눈웃음에 시리다. 시린 눈동자 안에 담긴 옅은 형체가 더없이 소중하다. 자꾸 눈을 깜빡이는 버릇은 끝없는 동공이라는 허공 속 드리운 막을 걷어, 이 모든 환상이 어느 시간 안엔 존재하고 있음을 확인하기 위해서다. 

환상, 너만큼 예쁜 사람이 내게 왔다는 건 환상이 아니고서야 불가능하지 않은가. 달콤하기 그지없는 시간들이 내게 왔다는 건 환상이 아니고서야 불가능하지 않은가. 오늘은 정말 일어나기 싫어, 자욱한 너를 닦아내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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