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3살까지 수원에서 살았다. 수원 집은 낮은 주택이 옹기종기 붙은 골목길 중간에 있었다. 집은 방 하나가 전부였다. 방엔 부엌과 장롱, 장난감 넣는 서랍장과 어린이 도서가 빽빽히 꽂힌 책장이 있었다. 위인전집과 식물도감, 과학동아 시리즈 같은 책들이었다. 동네 꼬마들은 책을 보기 위해 우리 집에 왔다. 그래서 엄마는 외출할 때도 집안 문을 열어두었다. 우리 집은 마을도서관이었다. 두 살 터울인 오빠는 이웃에게 맡겨져 친구들과 놀았고, 겨우 아장아장 걷던 나는 엄마 등에 업혔다.
엄마는 익숙하게 나를 안아 등에 고정시키고 포대로 몸을 감쌌다. 나는 얼굴을 쏙 내밀었다. 끈을 동여 매니 등에 딱 붙었다. 엄마 등은 넓고 단단했다. 엄마 심장소리가 등을 타고 전해졌다. 옅게 두근거리는 진동에 집중하다보면 쌔근쌔근 잠이 왔다. 자다 깨다를 반복해도 울거나 보채지 않았다. 엄마 심장소리는 안도감을 주었기 때문이다. 여기가 어디인지 궁금할 땐 고개를 들었다. 엄마 머리칼이 얼굴에 닿았다. 간지럽다. 얇고 부드러운 감촉이다. 엄마에게만 나는 은은한 향을 맡으면 어디에 있는지 상관없었다. 엄마 머리칼에 얼굴을 묻고 킁킁거렸다. 지금 여기가 엄마 등이라는 게 중요했다. 밖에서 나는 소리가 궁금해서 고개를 왔다갔다 움직이기도 했다. 버스와 지하철에선 웅성거림을, 시내 한복판에선 차의 경적소리를 들었다. 엄마는 주변 소리와 상관없이 열심히 걷고 움직였다. 씩씩한 발걸음에 맞춰 몸도 작게 들썩였지만 기분 좋았다. 엄마 등은 어린 나에게 모든 것이었다.
엄마 등 너머로 보이는 세상이 있다. 엄마는 내가 태어난 87년부터 여성운동과 환경운동을 했다. 내가 앞으로 살아갈 사회는 여성을 비롯한 소수자에 대한 차별이 없어야 한다고, 지금처럼 개발되다간 자연은 지속가능하지 않다고 했다. 생산자 중심의 생협을 만드는 일도 했다. 농업이 얼마나 중요한지, 우리가 어떤 먹거리를 먹어야 하는지, 문명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말을 들으며 자랐다.
엄마 등에 업혀 간 곳은 이모가 많은 사무실이었다. 우리가 도착하면 소란스러워졌다. "재은이 왔구나, 반갑다, 벌써 이 만큼 컸네"라면서 이리 안기고 저리 안겼다. 사람마다 품은 달랐다. 누군가는 딱딱하고 서늘했으며 누구의 품은 파묻히는 느낌이었다. 엄마가 시야에서 사라져도 이모들이 있었다. 스케치북에 그림을 그리고 동화책을 읽었다. 어느 초봄엔 다라이 가득 딸기를 담아 맨발로 밟았다. 딸기가 터지고 향긋한 봄기운이 퍼졌다. 이모들은 딸기를 으깬 다음 설탕을 넣고 불에 조려서 딸기잼을 만든다고 했다. 발에서 느껴지는 물컹한 딸기 감촉에 행복했다. 다시 집으로 돌아갈 땐 엄마 등에 업혔다. 엄마의 앞보다 등이 더 익숙했다. 나는 엄마 등에 업혀서 잤다. 따뜻하고 포근했다.
엄마는 나에게 ‘이거 해라, 저거 해라’ 말하지 않았다. 하면 안 되는 것도 별로 없었다. 엄마가 그저 자신이 보고 있는 앞을, 내가 직접 경험할 수 있게만 했다. 엄마 등에서 세상을 배웠다. 이모들이 있는 사무실, 벌레와 친하게 놀 수 있던 시골, 한동안 '바위처럼 살아가보자'노래를 흥얼거리게 만든 호주제 폐지 집회에 갔다. 딸이 자유로운 여성으로 크길 바라는 마음이 전해졌다. 학교교육이나 언론에서 주입하는 '경쟁에서 이기고 성공해야 한다'는 신화에서 자연스럽게 벗어날 수 있었다. 내가 나답게 사는 게 중요했다. 혼자 집으로 돌아가는 길엔 나무와 대화했고 소외받는 친구들이 있으면 무리에 함께 어울리도록 했다. 엄마의 등에서 배운 삶이 체화된 셈이었다. 고등학교 때부터 나의 꿈은 시민운동가였다. 사회를 아름답게 만드는 사람이고 싶다고 다짐했다.
30년이 지난 지금, 그렇게 살고 있다. 청년문제를 해결하는 중간지원조직에 있다가 전기와 화학물질에 의존하지 않는 삶의 방식을 연구하는 일을 하다가 잠시 멈춘 상태이다. 엄마는 자신이 하고 싶었던 일을 내가 하고 있다며 굉장한 호기심을 드러냈다. 우리는 이런저런 고민을 나누는 삶의 동료가 되었다. 지금도 가끔 지하철에 사람이 많아 엄마 등에 바짝 붙어있을 때가 있다. 엄마 머리칼의 촉감과 향은 여전하다. 그러나 이젠 엄마가 내 품에 쏙 들어온다. 내가 엄마의 등이 되어야지, 누군가에게. 많은 사람들에게 받은 사랑을 널리 퍼트리며 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