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글주글 자글자글 할머니 손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살기 시작한 건 4살 무렵이다. 엄마가 직장을 다니게 되면서 오빠와 나를 맡아줄 사람이 필요했다. 우리 가족은 서울 서쪽의 산동네에 있는 할머니 집으로 이사를 갔다. 파란 철문을 열면 마당에 작은 텃밭이 있고, 연탄이 내 키만큼 쌓여있었다. 놀 것들이 무궁무진했다. 마음에 들었다. 대문 맞은편으로 허벅지까지 오는 계단 두 개를 힘겹게 오르면 마루가 나왔다. 볕이 좋은 날은 내부가 보이는 유리문으로 여닫았는데 한참 뛰어놀다가 집에 오면 진한 갈색의 마룻바닥이 햇빛에 반사되어 반짝거렸다. 할머니는 마루에 앉아 가만히 볕을 쬐고 계시길 좋아했다. 마룻바닥 색과 할머니의 꽃무늬 치마가 잘 어울렸다.
2살 터울의 오빠가 뭐 하는지가 가장 관심사였던 나는 오빠를 쫒아 다녔다. 오빠는 내 손을 잡고 "이거 하자, 저거 하자"며 잘 놀아주다가도 골목길에서 친구들을 만나면 어디론가 사라지기 일쑤였다. 내 발걸음은 왜 그리 더딘지 오빠 무리들을 따라 뛰어도 항상 뒤쳐졌다. “오빠, 오빠” 찾다보면 다시 집이었다. 아무도 나랑 놀아주지 않아 서럽고 슬퍼서 집이 보이는 골목길에서부터 큰 소리로 울며 파란 철문을 열었다. 마루에 앉아계시던 할머니가 유리문을 열었다. 드르륵 문소리에 울음이 그쳤다. 할머니는 조용히 무슨 일이냐, 어디 넘어졌냐 물었다. 오빠를 탓하기는 싫고 배가 아프다고 했다. “할머니, 배가 이상해. 꿀렁꿀렁한 것 같아.” 할머니의 아빠다리 위에 몸을 뉘였다. 할머니가 내 티셔츠를 올렸다. 맨살에 할머니 손이 닿았다. 거칠고 투박하면서 자글자글한 주름이 느껴졌다. 할머니가 익숙한 멜로디로 흥얼거렸다. “우리 재은이, 할미 손이 약손이다. 자장자장, 우리 아가” 내 배가 할머니 손으로 꽉 찼다. 할머니는 위에서 아래로 배를 쓸었다. 간지럽고 따뜻했다. 포근해져서 잠이 왔다.
할머니 품에서 몽글몽글 따사로운 꿈을 꿨다. 자고 일어나니 방구가 나왔고 똥이 마려웠다. 할아버지가 마루 구석에 신문지를 깔아주셨다. 신문지 위에 쪼그려 앉아 힘을 줬다. 힘을 줄 땐 집이 떠나가라 “할머니, 할아버지” 소리 지르는 게 효과가 있었다. 할머니는 멀리서 “그래, 그래” 응답할 뿐 가까이 오시지 않았다. 구슬모양 똥이 여러 개 나왔다. 똥 모양이 신기해서 쳐다보고 있으면 어느새 오빠가 옆으로 왔다. '밥을 안 먹고 사탕이랑 과자를 먹어서 그런가. 내 배에 구슬이 살고 있었다니.' 우리 둘 다 흥분했다. 오빠는 나에게 괴물이라고 놀렸고, 할머니는 잘 했다고 내 엉덩이를 퉁퉁 쳤다. 괴물이어도 좋았다. 구슬을 낳고 몸이 개운해진 것 같았다. 할머니 손은 약손이었다.
내가 초등학생이 되면서부터 할머니와 멀어졌다. 할머니는 머리가 자주 아프다고 했고 혼자 가만히 방에만 앉아계셨다. 할머니 증상은 갈수록 더 심해졌다. 나에게 다른 이름을 불렀고 집을 나가는 날도 생겼다. 나는 할머니가 아가씨가 되었다가 소녀가 되었다가 아가가 되어간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옛날 우리 할머니가 그리웠고, 이상하게 변한 할머니는 낯설고 무서웠다. 할머니가 치매라는 진단을 받고 요양원에 들어가시는 날, 내심 잘됐다고 생각했지만 가슴 한켠이 시렸다. 온 몸이 차가워지는 기분이었다. 할머니 손을 한번더 잡아보면 나았을까. 할머니에게 감사하다고 말했으면 괜찮아졌을까. 한참을 앓고 난 뒤에야 전처럼 생활할 수 있었다.
할머니는 이미 돌아가신지 오래지만 지금도 할머니 손을 기억하고 있다. 찬 음식을 먹고 배고 살살 아픈 날은 뜨거운 찜질을 한다. 할머니 손과 비교할 수 없지만 몸에 남은 긴장이 풀리면서 포근해진다. 나는 어떤 할머니가 될까. 우리 할머니처럼 내 품에 기대는 누구든, 배를 쓸고 손을 잡아줄 여유를 가지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