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년시절 어느 기억에 대해
6살, 처음으로 유치원을 갔다. 내색은 안 했지만 유치원은 별로였다.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사는 집에서 유치원까지 걸어가는 길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차도와 인도의 경계가 없는 골목길이라 건물 옆에 바짝 붙어야 했다. 차는 산만큼 거대해서 지나갈 때마다 놀랐고 거지라 불리는 지저분한 아저씨들이 느릿느릿 걸어 다녔다. 목줄 없는 강아지들은 언제 나를 덮칠지 몰랐다. 나는 언제나 할아버지 손을 꽉 움켜쥐고 유치원으로 향했다. 까칠까칠 주름이 느껴지면서 따뜻한 손이었다. 마찬가지로 집으로 돌아오는 길도 할아버지 손과 함께였다.
골목길엔 신기한 것들도 많았다. 문구점 앞을 지나면 눈이 뭘 봐야 할지 모를 정도로 가득 찼다. 뿅뿅뿅 소리 나는 오락기와 돌리고 싶게 만든 뽑기, 나를 부르는 장난감 인형이 걸려있었다. 나는 할아버지 손을 잡아끌어다가 장난감과 오락기를 가만히 쳐다보는 낙으로 유치원을 다녔다. 오늘은 뭐가 새로 들어왔는지, 누가 오락을 잘하는지가 관찰 대상이었다. 할아버지는 재촉하지 않고 가만히 같이 서있었다. 그러다 가끔씩 100원 쌍쌍바를 사주셨는데 엄마랑 있으면 잘 못 먹는 것들을 할아버지와 함께면 가능했다. 조심조심 반을 갈라 할아버지랑 나눠먹었다. 초코맛 아이스크림을 혀로 낼름낼름 핥아먹는 법을 배웠다.
그날도 그런 날이었다. 할아버지가 쌍쌍바를 사주실 수밖에 없는 날. 집으로 돌아가는 골목길이었다. 할아버지 손대신 유치원 가방을 두 손으로 잡고 내 신발을 보며 걸었다. 나는 조잘거리는 걸 좋아해서 유치원에서 먹은 음식, 친구들과 장난친 것들을 신나게 떠들고 있었다. 괜히 허전한 마음이 들어 고개를 올리자, 아무도 없었다. 어라 뭐지. 이거 무슨 상황이지. 정지됐다. 어안이 벙벙하고 철렁했다. 할아버지가 언제부터 없어진 건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눈물이 터졌다. 골목길이 떠나가라 울음 섞인 큰 소리로 할아버지를 불렀다. “으허허허어엉, 할아버지이이이이” 몰라, 다 몰라. 나 버려진 거면 어쩌지.
할아버지는 금세 나타났다. 자동차 뒤에 숨어있던 거였다. 나를 놀리고 싶은 마음인지 웃음을 참는 얼굴이었는데 나는 할아버지를 보자마자 더 크게 울었다. "다시 어디 가지 마, 다시 어디. 으어어어엉" 놀란 마음은 쌍쌍바로도 달래지지 않았다. 문구점도 재미없었다. 할아버지가 손만 꽉 잡은 채 엉엉 울었다. 결국 할아버지 등에 업혔다. 눈물은 멈췄고 콧물만 흔적으로 남았다. 훌쩍거리며 할아버지가 또 어디로 갈까 싶어 목을 끌어안았다. 할아버지에게 큼큼한 땀냄새가 났다.
할아버지는 돌아가시기 전까지 두고두고 그 날 일을 놀렸다. 내가 얼마나 서럽게 울었는지, 할아버지는 그런 손녀가 얼마나 귀여웠는지에 대해서다. 할아버지는 개구쟁이였다. 나는 두고두고 믿을 사람 없다는 생각으로 살았는데 돌아보니 귀엽고 따뜻한 순간으로 남는다. 어쩌면 나는 할아버지의 개구진 모습을 닮았는지도 모르겠다. 어릴 적엔 심하게 까불거려 멀쩡하게 나온 사진이 없을 정도다. 나로 인해 사람들이 웃는 게 좋다. 나에게 새겨진 할아버지의 기억이 나를 그런 사람으로 만드는 것 같다. 그래도 놀라게 할 정도로 장난치진 말아야지.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