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효기일이 임박한 호텔숙박권이 있는데 본인도 잊고 있었다며 대신 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란 말에 부랴부랴 짐을 쌌다.
집에서 2시간 10분, 경상북도에 위치했다는데 생각보다 가까운 느낌이다.
작년 대입에 실패하고 재수생인 딸과 동반해서 그런지 반은 무겁고 반은 즐거운 기분, 이왕 가는 것 잘 쉬고 오자며 나 스스로를 다독인다.
여행지까지 가서도 공부를 걱정하는 건 딸보다 내가 더할 것 같았다.
역시나 여행은 누구와 가도, 어디를 가도 설레고 신나고 심지어 사소한 소비에도 너그러워진다. 평소 잘 먹지않던 소세지나 호도과자를 고속도로휴게소에 들르면 두 말 않고 사게되니말이다.
문경에 왔으니 문경맛집부터 검색해본다.
“족살찌개”
처음 들어 본 메뉴에 왠만한 전국음식은 다 맛보았을 남편이 고개를 갸웃거린다. 사진만 봐도 벌써 식욕이 당긴다.
족살찌개 1호점은 버스터미널 근처더라. 멀리서 온 외지인들이나 고향에 돌아 오는 길, 두툼한 돼지고기에 얼큰한 두부로 빈 속을 달랬던 모양이다.
우리의 첫 끼니도 그렇게 해결되었다. 그 찌개사진은 지금 보아도 먹음직스럽다.
지인이 준 호텔은 문경새재도립공원에서 5분거리.
창문밖으로 탁트인 전경에 마음까지 후련해진다. 쾌적하고 깨끗하고 맑은 하늘, 좋은 날씨다. 하루가 아니라 몇 날이고 아무 생각없이 쉬었다갔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문경에 와서 호캉스는 아깝다. “힘들다” 며 침대위에 벌러덩 누워있는 딸을 채근한다.
이 조용한 동네에 외지인들이 와서 코로나 어쩌구저쩌구하면 절대 안되니 사람은 많지않아도 마스크를 쓰고 여유분도 챙긴다.
문경새재는 세재인지 새제인지 늘 헷갈리는 이름이었다. 학교 다닐 때는 분명 제대로 배운 듯한데 어째서 성인이 된 지금 오히려 무식한 티를 내는지 모르겠다만 확실이 문경새재가 맞다.
새도 날아서 넘기 힘든 고개 또는 새로 생긴 고개란 뜻도 있다고 한다.
힘들다고하니 더 도전해보고싶은 의욕도 생긴다.
문경새재도립공원, 넓은 잔디밭,
유월의 나무보다 칠월의 나무색깔이 더 진해보이듯 잔디도 그렇다. 파릇파릇이 아니라 푸릇푸릇이다. 지인대신에 이런 호강을 누리는게 미안하고 고마워진다.
‘맨 발로 걷기’
처음이다. 남산 흙길에서도 절대 벗어본 적이 없는 맨 발, 여행지는 단단했던 마음도 무장해제시킨다.
보드라운 흙 사이로 까칠한 흙도 느끼면서 발에 모든 신경을 모아본다. 아니 모아진다.
흙바닥을 걷다보니 평소 구겨 신었던 신발의 소중함도 깨닫는다.
사실은 발보다 신발에 더 신경쓰고 살았던 것 같다. 신발의 메이커와 모양새를 중히 여겼지싶다. 새 신발을 사면 또 얼마나 소중히 여겼던가? 정작 그 안에 더 소중한 내 발에 대해서 고마움을 표현한 기억이 없다.
얼마나 맨 발로 걸었을까
딸과 나는 동시에 “포기”를 외치며 양말과 신발로 재무장한다. 위에서 내려 오시는 분들의 맨발에 살짝 기죽지만 할 수 없다.
우리는 제1관문과 2관문까지만 올랐다. 조령산을 포함, 3관문부터는 다음에 와서 보자며 엄살을 부렸다. 대신 오픈세트장을 구경했다.
폐장시간이 가까운 탓에 우리 일행외에도 아무도 없었다.
“이리 오너라“ 큰 소리도 내보고 영화, 드라마에서 나왔던 장면들을 맞추기도 했다. 오픈셋트장의 한옥은 당장 누가 살고 있다해도 믿을 만큼 안전하고 예쁘게 지었더라.
영화감독의 꿈을 가지고 있는 딸이 오늘은 사진작가를 하겠단다.
“엄마, 아빠 큐하면 뛰어!”
그 한 장을 얻기위해 우리 부부는 무릎이 나가도록 뛰고 또 뛰었다.
인근 와이너리에서 2020년 대한민국주류대상을 받은 오미자 와인도 시음해보았다. 왜 우리나라에는 이름난 술이 없는지 그것이 계기가 되어 연구하고 연국하고 또 연구한 덕분에 대상도 받은 듯, 역시나 모든 성공은 “부족함”과 “ 열의”에서 오나보다.
잠들기가 아깝다. 내일 두어곳을 돌고나면 다시 서울로, 일상으로 돌아가야한다. 창문너머 들어오는 달빛도 두고 갈 생각하니 그마저도 아깝다. 어제까지 책과 씨름하던 딸은 어느 사이 취침모드다. 남편의 코고는 소리, 운전하느라 애쓴 모양이다.
다음 날은 더 부지런히 움직였다. 하나라도 더 보고가자 욕심이 났다.
터널을 관광상품으로 만든 오미자테마터널은 그야말로 냉장고다. 어찌나 시원하던지 과학으로도 설명할 길이 없다. 곳곳에 볼거리도 충분하다.
“쉽게 번 돈은 쉽게 쓰고 힘들게 번 돈은 다 쓰고...” 위트가 넘치는 하상욱님의 시도 전시되어있다.
“ 가족은 영어같아요. 하고싶은 말은 많은데 할 수가 없어요” 란 시는 뜨끔하다.
가족은 뭘까? 머리보다 가슴으로 말하는 가족. 든든하면서도 짠하다.
오미자테마터널에서 나오면 바로 고모산성이다. 고모산에 있다하여 붙혀진 이름인데 1,300미터나 되는 대형산서이다. 신라때 축조되었다고 하니 우리나라의 유적으로는 상당히 보존이 잘 된 측에 속한다.
오르고 또 오르고 조금 전 오미타테마터널의 차가움이 그립다란 간사함으로 어느 새 정상이다. 비로소 문경이 보인다.
딸은 바람을 맞대고 서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어제부터 공부이야기는 하나도 하지않았다. 저도 나도 걱정은 한 바가지, 묵직하다만 둘 다 그에 관해서는 입을 다물고 있다.
말 안해도 다 알지. 영어로 이야기하지않아도 다 알지. 아무렴 본인만큼 힘들까? 그저 지금의 바람이 딸의 답답하고 불투명한 내일을 시원하게 뚫어졌으면싶다.
문경에 왔지만 처음 문경을 보는 듯한 이 기분, 머리는 뜨겁지만 가슴은 터널보다 더 시원하다.
긴 산성을 걷는다. 신라때 축조되었다고하니 신라때야 수도를 지키는 중요한 요새였겠지만 고려, 조선시대는 어떠했을까? 변방이나 다름없으리라.
지금도 서울로, 서울로 외치는 시대, 조선의 한양도 그와 비슷하지않았을까?
누구는 남대문을 지킨다며 출세했다고 하겠지만 누구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변방을 지키니
“내가 여기있을 사람인가?” 싶기도 했을테고 보이는 문경너머를 상상도 했겠다.
한양의 고관대작이나 변방의 지킴이나 동시대에 태어나 전혀 다른 삶, 보이는 게 다이니 전자의 삶이 더 대단하고 부럽지만 후자의 삶이라고 의미없는 건 절대 아니다.
나는 어느 새 오십을 훌쩍 넘었다. 지나보니 한양의 고관대작을 꿈꾸었던 한 때가 있었고 아무리 애를 써도 고관대작은커녕 정규직유지도 힘들다는 것을 충분히 체험했다. 그러기에 딸에게는 지금의 애씀이 내일의 성공을 보장해 줄 것 같기에 “공부”를 강요한다.
나는 어느 새 오십을 훌쩍 넘었다. 지나보니 한양의 남대문이나 변방의 산성도 모두 중요하고 나름의 역할이 있다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다. 그러기에 딸이 지금의 애씀보다 덜한 결과를 받는다 할지라도 그 나름의 길과 의미가 있음을 또한 알려주고싶다.
다섯가지 맛을 담고 있다는 문경의 오미자.
인생도 그러하다. 늘 단 것만 먹을 수도, 신 것만 먹을 수도 없다. 매운 맛과 단 맛은 적절히 어울린다. 달콤함만 찾는 혀의 욕구를 다 채울 수야 없겠지만 그 때 그 때 그 재료가 주는 고유의 맛을 음미하면서 다섯가지 맛을 찾듯, 우리의 삶도 딸의 삶도 그렇게 찾아가리라.
새도 넘어가기 힘든 고개지만 또 넘어가야 할 이유가 분명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
갑작스레 주어진 티켓으로 48시간, 우리 가족 모처럼 같은 방향을 같이 바라보았다.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