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방석에 앉아보셨나요?”
은행에 들어갔을 때 어린 선임이 했던 최초의 유혹(?)이었다.
“ 돈다발로 맞아보실래요?”
어린 선임과 좀 친해지자 그가 두 번째 유혹(?)을 했다.
일만원지폐를 띠지로 묶은 게 1백만원, 열 개면 1천만원, 그게 모여 오천만원,
일억원짜리 덩어리가 되면 방석만한 사이즈가 된다.
돈을 금고에 계속 쟁여놓을 필요가 없으니 본점에 보내느라 그 덩어리를
정리 할 때면 의자에도 올라가고 책상에도 올라가니 돈방석이란 말이 나오는게다.
1백만원 열묶음을 여직원들은 고무줄 하나로 여며서 담당자에게 갖다주는데
그 고무줄이 튕~하고 튕겨나가면 돈다발이 쏟아진다.
어쩌다 머리에도 맞으면 그다지 좋은 기분이 아니다.
1억짜리 다발이 발에라도 떨어지면 x씨 소리가 절로 나올만큼 무게도 나간다.
돈이 짐스렀다란 표현이 딱이다.
그 많은 돈뭉치를 보면서 침 흘리거나 심장이 쿵쾅거리는 직원은 거의 없다.
“내 돈이 아냐, 내 돈이 아닌게야!!!!!!!”
라고 세뇌할 필요도 없다.
하루종일 고객의 돈을 만지지만 장수의 개념뿐이다. 그러나 은행셔터가 내려가고 마감할 때 돈 천원이라도 모자르면 바닥에 흘리기라도 했나싶어 눈을 까뒤집고 찾아 본다.
그 때부터는 피같은 내 돈이 되는거다.
가끔 은행원의 금전 사고가 일어나면 “고양이한테 생선을 맡기지”란 속담과 비교하는데 모든 고양이가 집밥을 좋아하는 건 아니다. 고로 그런 사고는 아주 드물다.
기계로 휘~리릭 세고 “현금은 싫어요. 카드로 결제 해 주세요”하는 스타벅스도 있지만 돈은 손으로 꼭 잡고 반쯤 구부려 하나, 둘, 셋, 넘어가면서 세는 맛이 있다.
(월급 봉투가 사라지면서 가장의 권위가 사라졌다는데 나는 그 말에 수긍이 간다)
지갑에 현금이 차있으면 설사 그게 마이너스통장에서 나온 거라 해도 왠지 모르게 부자인듯한 착각에 잠시동안 배부르다. 뭐니 머니 해도 머니는 내 손안에 있을 때 돈이 아닌가?
로또가 처음 나오고 한동안 1등 당첨자가 없어서 이월, 이월을 하다보니 꽤 큰 누적금액으로 전국이 그야말로 “로또광풍”이 불었던 적이 있다.
2003년 명절즈음이었는데 800억 가까운 숫자에 어디를 가나 이 이야기였다.
“로또가 되면 이렇게 쓸거야. 일단 해외여행부터 갈거야. 건물을 살거야.....”
줄 사람은 생각도 않는데 다들 급하게 김칫국을 마셨다.
자기가 들고 있는 번호가 꼭 될 것 같아 서로 보여주지도 않았다.
나도 초롱초롱 밤을 새면서 로또되면 뭐하지 생각하자 즐거움은 잠시, 서서히 걱정이 되었다.
당첨되면 바로갈까? 나중에 갈까? 매스컴이 가만히 두지를 않을텐데...
복권당첨되면 집앞에 어려운 사람들이고 단체고 줄을 선다는데 어떻하지?
차라리 재단을 만들까?
00는 집이 없는데...00는 나한테 잘했으니 얼마라도 줘야겠지...
쓸다리없는 걱정에 한숨까지 나왔다.
그런데 100억까지는 어떻게 써보겠는데 아, 200억 300억 넘어가니 사용할 곳이 떠오르지가 않는거다.
돈방석에도 앉아보고 돈다발에 맞아도 봤는데 돈도 써본놈이 쓴다고 800억원은 과했다.
그냥 나만 알고 남들이 인지하지 못할 정도의 가벼운 공돈이 있었으면 하는 음흉한 심정이 하늘에 닿았는지 800회가 넘는 로또역사중에 제일 높은 금액은 딱 한번, 5만원 짜리가 전부였다.
200억원이상을 어떻게 쓰지...란 나의 초라한 상상력으로는 요즘 회자되는 재벌총수들의 수입이
“밝혀진 것만 천억원 이상” 이란 것을 상상할 수가 없다.
도데체 어떻게 그 많은 돈을 감당하고 지키며 무엇보다 다음달에도 또 그 다음달에도 그만큼의 돈을 받아야하는데 어떻게 다 쓰고 살까?
너무 많다고 반려하는 일은 거의 들어 본 적이 없으니 내년, 그 후년에는 더 어마어마한 금액이지않을까
“ 대대손손 잘 먹고 잘 살라 그런다. 조상덕에 먹고 살게 해줄란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조상덕에 사는 일부 후손들은 영화 베테랑에서 본 것과 비슷한 행보를 걷고 있다.
그들의 불명예스러운 매스컴 출현에 나는 “고소하다, 벌받는구나” 란 생각보다 어째서 그 많은 부를 가지고도 가르치지못했을까?
의구스럽다.
그들에게 식탁예절을 가르치지 않았을까?
“포크는 왼쪽에, 나이프는 오른쪽에, 음식을 먹을 때는 소리내지않고.”
외국어는 또 어떻고
“미국식 영어는 이렇고, 영국식 영어는 저렇고..”
골프는 기본이고
“ 오른 다리에 무게중심을 잡고 고개는 들지말고 어깨를 돌리세요”
식탁예절을 가르쳤다면 같이 밥먹는 사람들을 배려하는 것도 배웠을테고
외국어를 가르쳤다면 소통하는 방법도 배웠을테고
골프를 가르쳤다면 심판보다 에티켓이 더 필요하다는 것도 배웠을텐데...
돈과 교양, 돈과 명예는 비례하지않는다.
교양과 명예는 돈으로 사기 어렵다.
rich와 noble은 동급이 아니다.
noble(귀족)은 oblige(의무)가 따르지만 rich는 oblige가 따르지않는다는 걸
또 한 번 깨닫게 해준다. 김준호의 유행어대로
“ 씁쓸하구만!”
스티븐 잡스의 “ 세상에서 제일 비싼 침대는 병석”이란 고백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
“ 이제야 깨닫는 것은 평생 배굶지 않을 정도의 부만 축적되면 더 이상 돈버는 일과 상관없는 다른 일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사실이다. ”
안타깝다..조금만 더 일찍 깨닫고 일로부터 스트레스 안받고 살았담 좋았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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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나를 포함해 많은 덜부자들이 로또를 사러 명당집을 찾아나선다.
참 아이러니다.
“ 내가 돈 있으면 그렇게는 안쓴다. 개처럼 벌었어도 정승처럼 써보리라.” 다짐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