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예상했음에도 예상못한 은퇴

by 유원썸

큰일이다.

젊은 아저씨들이 너무 많이 여기저기서 보인다. 밤이 아닌 낮이라서 그렇다.


전에 공원과 동네 뒷산으로 대낮에 산책을 하면 사람만나기가 힘들었다.

어떤 날은 우리나라가 이렇게 인구밀도가

적었나싶을 정도였고 여기서 누군가 죽었다는데...란 기사를 떠올리며 앞 뒤를 살펴야했다.


요즘은 아침이고 낮이고 애매한 시간대인 4-5시에도 젊은 아저씨들이 자주 보인다.

은퇴자들로 보임직한 분들이라 마음이 편치않다.


3,4년전 대학 모임에 가면 모두가 현직이었다. 자영업을 하거나 사업을 하는 동문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명함이 부장, 팀장 이사도 더러 있었다.

이야기는 활기찼고 술값을 걱정하거나 누가 더 많이 낸다고 해서 말리지도 않았다.


그랬던 동문모임에서 "이제는 현직에서 물러나야 할 것 같다. 그런 눈치가 대놓고 보인다"며 은퇴후에 뭐할까란

주제가 자주 등장하기 시작했다.

간혹 나이많은 사람이 돈을 내야한다란 과거의 생각을 가진 선배가 주머니를 열면 위아래 할 것 없이 말리고 그러지말자고 야단이다. 머쓱해진 선배는 여전히 찝찝한 마음과 얼굴이다.

선배님~사주세요란 애교와 떼는 이십대와 잘나가던 삼십대로 족하다.

(난 개인적으로 요즘 젊은 아이들이 하는 페이더치, 엔분의 일, 내가 먹은 것은 내가!란 방식이 아주 마음에 든다. 누군가 사는 밥을 먹을 때 솔직히 그 분의 입장을 생각해서 먹고싶은 것 보다 가격을 더 생각하는 부담감이 싫다. 내가 산다고 해도 상대방도 똑같은 부담감을 느낄 것이다. )


사실 많은 상사들을 모셨지만(?) 함께 했던 그들이 은퇴할 무렵의 심경을 전혀 헤아리지못했다. 당시의 분위기는 상명하복 그 자체였다.

그 분들이 주도하는 회의는 조용했지만 혼나는 내용이 태반이었고 재미없었고 감히 이렇습니다 저렇습니다를 손들고 말하기는 커녕 산더미같은 일이 더 중요했다.

특히나 그 분들이 1호에게 혼이 나면 2호인 그들은 자동 3호 4호급인 아랫사람들에게 그대로 내려갔다.

더이상 내려갈 데가 없는 남자직원들은 " 담배나 피러가자..." 소리가 그나마 위안이었다.


은퇴가 아주 가까운 상사분들은 착한 어른이었다. 아무것도 지시하지않고 말도 잔소리도 없었으니 그렇다.

여러가지 상황이었겠지만 은퇴하고 뭐하고 살지란 생각이 많았으리라

그 때의 퇴직금과 이자는 지금과 상당히 다르니 돈 걱정은 덜했을까.


착하든 안착하든 그들은 앞 선 차였고 병목의 원인이었고 정승집 속담의 주인공들이었다.

(내가 그 병목을 만들거라곤 상상도 안했는데!)

한창 일할 때인 대리급 직원이면서 아이러니하게도 회사 그만 두는 게 목표인 직장생활 10년차의 사람이 은퇴자의 마음을 어떻게 헤아리겠나만 지금 생각해보면 따뜻한 차 한 잔이라도 대접해드릴 걸 그랬나싶다.

그 나이가 되기 전에는 절대 이해못하는 부분이다.


은퇴의 순간을 모두 알고 있지만 막상 은퇴자가 되어보니 집에 있는 게 여간 힘든 게 아니란다.

그 중에 와이프 눈치를 많이 보게 된다고 한다.

평생 일했고 그걸로 먹고 살았고 나도 좀 쉴 때가 되었다란 당당함도 내세우기 힘들다.

"영식님, 일식이, 이식놈이란 우스개가 더이상 우습지않다.

아내의 동네 커뮤니티는 너무나도 잘 활성화되어있는 것에 비해 자신의 것은 직장을 떠난 순간 이건 아니다싶기도 한 의문의 1패같은 느낌도 싫고...


30년 넘게 공직생활을 한 분이 동료와 내기 한 얘기가 씁쓸하다.

"퇴직하고 내가 부르면 바로 내려 올 직장동료가 몇 명일까" 라고

결론은 둘 다 세 명을 넘어가지못했단다. 직장동료는 그래서 아쉽다.


직장생활을 하는 여자들도 말한다. 동네에 있는 휴일, 밥 한끼 같이 먹을 이웃이 없다고. 밥은 둘째치고 인사나누는 이웃도 없단다.

주부인 학교 엄마들과 어울리는 게 너무 힘들다고 덧붙힌다.

하물며 30년동안 해 뜨면 직장, 해 지면 귀가였던 남자들에게 "동네"라는 커뮤니티는 더 낯설고 외로운 곳일게다.

은퇴 전, " 도데체 집구석에 앉아 여편네가 뭐하는 거야" 라 큰 소리를 쳤던 게 민구스럽다.

바쁜 아내가 부럽고도 밉다.


뭐 하고 살까, 어떻게 살까.

전에 받던 월급보다 더 적은 월급으로 재취업이 되어 자존심이 상할 수도 있고

30년동안 아내의 커뮤니티를 인정해왔으니 자기보다 바빠 보이는 아내를 이해할 필요도 있고

그 바쁜 아내의 출타를 대비해 밥, 찌게정도는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었다.

요리를 할 수 없는 건 운전못하는 아내를 데리고 전원주택으로 가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다.

아내를 위해 24시간 운전사 역할을 해줄 수는 없지않은가?


모두가 다 알고 있는 은퇴인데 막상 닥치니 뭐부터 어떻게 해야할 지 모르겠다.

성인이 된 이후 오랜 시간동안 함께 한 동료임에도 막상 전화하면 바로 나와 줄 동료가 세 명이 안 넘는다고

직장생활을 소홀히 할 수도 없다. 동네 커뮤니티를 위해 종교 취미를 의도적으로 준비해야하나

가족의 눈치때문에 적성에도 없는 공인중개사나 자격증을 따야하나 생각이 많아지고 복잡해진다.

정말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tv에서는 은퇴후의 삶을 짜장면 그릇으로만 계산한다.

짜장면 5천원으로 생각하고 하루에 세끼를 먹을 경우 최소 30년을 산다고 했을 때 15,000*365*30=164,250,000원이 필요하다고. 두끼만 먹는다고 해도 109,500,000원이라고 하는데

이걸 어떻게 대비할거냐? 최소한의 그 식비가 준비되어있냐라고 물어본다. 안되면 루저라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러다보니 짜장면값만 걱정해왔다. 매일 짜장만 먹을 수도 없구 어쩌지..


돌이켜보면 월급 ₩₩₩로 먹고살 수 있는가 걱정하면서 직장생활을 하지않았다.


이걸로 어떻게 집을 사

이걸로 어떻게 애들 키워

이걸로 어떻게 먹고사냐

이 모든 걸 걱정만 했으면 우린 이미 서른의 나이에 노인의 얼굴로 살았을 게다.


선행 걱정까지는 하지말자.

짜장면 걱정은 더더욱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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