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냐? 너는!

by 유원썸


78학번으로 기억되는 사촌언니는 당시 드문 여대생이었다. 재원에 미모도 좋았다. 따라다니는 남학생이 많았다.


서울 소재 D대학으로 기억되는 남학생이 거의 스토커처럼 따라다녔는데 언니의 매몰찬 거절인지 뭔지 어느 순간부터 시야에서 사라졌다.

언니는 말했다

" 짭새였어."


짭새같아. 짭새맞죠란 언니의 추궁은 상대남학생의 침묵을 불렀다. 그래서 확신이 들었다고 했다.


영화 1987을 보면서 대학교든 공장이든 존재했을법한 짭새가 불현듯 사촌언니를 떠올리게 했다.

재원에 미모에 용기까지 대단한 언니였다. 만약 그가 진짜 짭새였다면.


지금은 편히산다싶은 대학동창이 있는데 학교다닐때는 표정이 그렇게 밝은 편이 아니었다. 성실하고 착하고 공부도 잘하는데도 시원하게 웃었던 기억이 아무리 생각해도 없다. 관심있게 안 본 탓도 있겠지만 늘 공부만 하고 과묵한?


졸업하고 얼마나 지났을까? 밴드의 힘으로 SNS의 힘으로 다시 만나게 된 동창들가운데 그는 전에 없이 활기차보였다. 하는 일도 잘 되고 결혼해서 아이들 모두 건강하게 잘 살고 보통의 가장다운 너스레도 떨고 그래서 많이 웃고 즐거웠다.

대학다닐 때는 출가전이니 부모님의 이야기는 베플이 되기위한 고백에 가까웠다. 이혼하셨어 부모님이 가난하셔서. 돌아가셨어등 쉽게 내뱉지못하는 게 집안얘기다. 그러나 성인이 되고 자기 가정을 꾸린 이후의 부모님 이야기는 그냥 과거일뿐이다. 그렇지않은가?


학교 다닐 때 가정이 어려워서 장학금을 받았다. 공부를 잘해서 받았다 혹은 술값으로 다 날렸다 웃음이 묻어나는 대화속에 그가 말했다.

학교 다닐 때 제의를 받았다 그래서 한동안 그 역할에 고민했다라고. 그제서야 이해되었던 젊은 날 그의 표정, 이제라도 시원하게 터놓은 걸 보니 아무도 밀고(?)하지 않았다는 셈이다. 설사 우리중에 그런 걸출한 인물이 있다손해도 그의 성품으로는 글쎄...제의한 쪽에 별 도움이 되지않았다고 보아진다.


이제는 운동권학생도 없어진 마당에 그 역할 그 존재의 힘 또한 없는거다. 그냥 사라진 직업의 하나일뿐이다.


똑같은 역할인데 사촌언니의 스토커와 동창은 전혀 다르게 와닿았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스무살 이제 막 대학생이 되어 다른 동창말마따나 술값으로 학생증 맡기고 장학금받아 퉁치고 또 학생증맡기던 철없는 나이,가치관도 개념도 정립되지않은 그 어린 나이에 학생이면서 학생을 감시하는 역할을 했다는 게. 수없이 자신에게 질문했겠지. 나는 누구인가? 무엇을 하고 있는가? 학생인가? 끄나플인가?

이제야 말할 수 있었던 젊은 날의 기억이 그에게는 좀 아팠겠지 하지만 그런 제의를 받고 활동했던 이가 어디 동창뿐이랴?


Identity


자녀수가 많은 집안의 막내였던 나는 내 옷을 입어 본 기억이 거의 없다. 언니옷 오빠옷 사촌언니옷 사촌오빠옷

부모님 옷만 안입어봤다. 남들이 일자형 오버코트를 입었던 유행때도 나 혼자 A라인 오버코트였다.

지금같으면 학교안가라고 떼쓸만했는데 학교 가기만해도 이쁘다하셨던 부모님께 그런 행동은 상상도 할 수없었다.

그러나 내 눈에도 나는 참 다르구나란 것을 긴긴 겨울 통학기간동안 자주 느꼈다. 중학생인데 뭔가 올드한 느낌, 서울인데 뭔가 시골스러운 느낌, 여자인데 왠지 남자애같은 느낌, 계절에 맞는 옷을 입었는데도 다른 나라에서 온 그런 느낌이라고 할까? 옷이 날개라는데 내게 예쁘다소리 한 친구를 떠올려보지만... 없다.

그래서인지 솔직히 외모에 대한 자신감도 없는 편에 속한다.


엄마는 종종 친척들앞에서 내 이야기를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들낳으려다가 딸을 낳았어, 더이상은 안낳아야지했는데 낳았어 아들이었으면 좋았겠지

그게 마음이 걸렸다고는 생각지않았다.

"학교가는 것만도 이쁜, 너 안낳았으면 어떻할뻔했어"란 막내였으니깐.


심리학 박사가 된 고등학교 동창의 상담소에서 몇 해 전 망년회를 했었는데 친구들이니 무료로 심리상담해주겠다면서 몇가지 그림과 도구를 나눠주었다. 같은 그림인데 함께 했던 친구들 모두 다른 의견 다른 시선이었다. 신기하게도.


그런데 내 차례가 되어 상담한 그녀가 뜻밖의 검사결과를 알려줬다.

" 엄마자리가 부족하네."라고.

아들낳으려다가. 안낳으려다가...너무 가난해서 너무 아들이 귀해서 등등 이런 역사적인 사실이 성장기 아이에게 얼마나 큰 상실감을 주는지, 자존감이 떨어지는 얘기인지 옛날에야 그렇게 키울 수도 있었겠지만 우리는 그래선 안된다라며 각자의 소견을 펼쳤다. 다른 여고동창은 먹을게 없이 너무 가난하게 태어난 자신에게 방석을 올려놓고 죽기를 바랬단 말을 엄마에게 들었다고 했다. 이제는 어른이 되어 결혼하고 또 자녀를 낳은 마당에 그런 과거가 자존감에 영향을 주었든 말든 현재는 노모와 투닥투닥하면서 잘 살고 있다고 했다.


정규직을 그만두고 오랜 시간이 흐른 뒤 다시 기간제, 비정규직으로 근무했었던 나는 정규직원들이 보너스나 성과급 혹은 고가점수로 의견이 분분하고 삼삼오오 모였을 때는 어디 쥐구멍보다 큰 다른 구석에 가있고싶어지기도 했다.

똑같은 일을 해도 나의 정체성은 거기까지였으니깐. 그 이상은 허락되지않은 자격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들만의 이익과 관련한 주제가 나올 때는 어떻게 처신해야하는지 안듣고 안듣는 척하는 요령도 생겼다. 그들에게 난 없는 존재였다. 주제가 끝나면 나는 다시 생기는 존재.

정규직이었을 때 몰랐던 또 다른 기분이었다. 존재감이 낮은 경우 우울 열등감이 동반된다고 하니 아마도 그런 증상인가보다.


보헤미안렙소디는 양성애자인 프레디가 자신의 성정체성에 대해 고민하고 괴로워했다는 것을 표현한다고 하는데 "태어나지않았으면 하고 바래기도 했다..( I sometimes wish I'd never been born at all) " 란 가사를 거기에 맞춰보면 자존감, 자신의 존재에 대한 긍정감이 정체성에도 영향을 준다는 말에 일리가 있어보인다.


성정체성, 신분 정체성 모두 쉬운 게 아니다. 내가 소중한 존재로 여겨졌으면 하는 바람은 열살이나 스무살이나 어른이 되어서서도 마찬가지인거다.


친정어머니가 세상을 떠나고나니 자존감 없이 키웠으면 좀 어때, 내 엄마이고 그 때 상황이 그랬을뿐인데로 바뀌었다. 살아서 이 기집애 혹은 더한 욕을 해도 감격할 것 같다.

그러나, 조금만 더 사랑받고 살았더라면 조금만 더 사춘기소녀의 감성에 마음을 쓰셨더라면 나의 자존감과 정체성 그리고 인생은 달라졌을까?


위키백과에 나온 것을 참조해본다. 타인과의 경쟁에서 얻어지는 자존심은 패할 경우 곤두박질이 되지만 자존감은 자신 스스로 인정하는 확고한 믿음, 긍정적인 마인드여서 주변의 상황에 쉽게 영향받지않는다고 한다.

엄마의 말한마디가 아니라 나 스스로 나는 귀하고 소중한 존재라는 걸 매순간 되내일필요가 있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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