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기지만 배달알바를 했었다.
가족에게 말했을 때
다 웃었다.
물론 1일천하로 끝났지만 시급을 다투는 음식에 대한 예의, 주문자에 대한 예의를 갖추느라
마음이 급했다.
네비가 없던 예전에 남편과 여행을 다닐 때도 늘 혼나던 분야
" 지도못보는 여자"
였는데 네비가 있어도 지도 못보기는 매한가지더라.
음식은 점점 식어가는데 내 마음은 타들어가고.
어쩌자구 자전거 하나 믿고 배달한다고 나서고 나댔을까?
귀가 얇은 편이라 세상 사람들이 다 그러더라하면 나도 얼른 숟가락을 올린다.
(그렇다고 이상한 다단계를 했다거나 엄청 손해를 보았다거나까지는 아니다.
숟가락을 올려도 내 입맛이 아니면 또 얼른 내리는 한마디로 포기가 빠르다.)
남들이 다 배민과 쿠팡배달을 한다는 기사읽고
혹시 나만 안했나싶어 얼른 엡을 깔고 안전교육을 들을 때까지만해도 신선한 도전이었다.
교육만 들어도 커피 4잔을 주신다니 얼마나 나이스인지.
그러나 비상경보령처럼 온 집안을 울리는 호출에는 적잖이 당황했고
"밀면 수락"이란 메세지에 아주 많이 망설였다.
다시 보니 안전교육 플러스 첫 배달을 해야 커피 4잔값을 주신단다.
으이그~
아무것도 하지않으면 아무일도 일어나지않늗다...는데
해? 말어? 해? 말어? 하기를 갈등했다가 결국 "밀면 수락"이란 말을 듣기로 했다.
첫 배달은 가까운 치킨집에서 음식을 픽업하고 가까운 주택으로 배달하는 거였다.
자전거 바구니에 넣으니 박스가 구겨진다. 손잡이에 걸자니 흔들거린다.
이러니 아예 자동차로 다닌다는거네~ 다른 경험자의 글이 기억났다.
어찌어찌 해당 집을 찾는데 00로로 바뀐 주소가 영 눈에 들어오지않는다.
염치불구하고 근처에 있는 상가에 주소를 물어본다.
아이쿠, 하필이면 치킨집이네!
" 저어쪽 어딘가일걸요. 여하튼 이쪽은 아니야."
남의 집 치킨박스를 들은 내가 미웠을까 아니면 진짜 주소가 그랬을까
사장님 나빠요. 덕분에 두 바퀴를 더 돌았다.
응팔에서 골목길은 사랑과 우정이 싹트는 곳이었는데
내가 들은 치킨과 콜라는 골목에서 영 자리를 못잡고 뱅뱅 돌기만 할 뿐이다.
센타의 도움으로 겨우 찾은 주소는 뜬금없는 자리에 있다.
이 주소체계는 며느리도 몰라요!!!
once is enough 한 번으로 족하다.
한 번 해보았으니 전국민이 아니라 전 세계가 다 했다고 해도 난 하지않을, 아니 안하는게 낫다.
밤 늦게 재활용을 하러 엘리베이터를 타면 간간히 만나는 00택배맨이 있다.
문 앞에다 내려놓고 찰칵!!!
급하게 계단을 내려가는 소리, 시동걸리는 소리가 들린다.
로켓배송, 번개배송이라고 해서 주문 당일이나 최소 그 다음날 새벽에 갖다주는 이 시스템은 진짜 놀랄 노자다. 외국인이 보고 깜짝 놀라는 동영상 1순위다.
그나마 아파트는 동호수가 쉽게 찾아지지만 주택이나 골목길은 주차하기도 어렵고 찾기도 쉬운 게 아니다.
택배차량에서 물건을 내리는 얼굴은 대학생같기도 하고 20대 후반, 30대 초반같은 젊은 얼굴이다.
너무 열심히 사는 거 아니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사무실에 나가고 주말이면 햄버거집에서 알바를 하고
쉬는 날이 연짝이면 복합물류센타에서 철야알바를 하고 그렇게 열심히 사는 사람들을
찾는 건 그닥 어렵지않다.
그 중 한 명인 A에게 무슨 일을 그렇게 많이 합니까?라고 물었더니 빚이 좀 있단다.
택배철야작업은 수당이 세단다.
나도 택배일을 해보았으니 이 직업은 얼마나 흔한지 또 얼마나 택배가 많은지...
방금 모르는 집을 찾느라 나름 고생했다고 생각했는데 내 집앞에 상자 하나가 놓여있는 아이러니에
이건 동지만났소.동종업계요가 아닌
쓴 웃음이 나온다
택배로만 끝나는게 아니다.
겹겹이 쌓은 비닐, 뽁뽁이. 스치로플에 플라스틱 통에 칭칭 감은 박스테이프에
재활용을 하는데 경비아저씨가 길게 한숨을 쉰다.
" 아휴. 이거 어떻해."
우리 아파트 가구수에 비해서 일이 많단다. 재활용이 너무 많아진데다 재활용업체도
갖다 쓸 일이 없단다.
쿠당당 쿵쿵당당. 재활용이 부딪히며 "나 천덕꾸러기~"라고 말하는 것 같다.
마트에서 생수를 살까하다가 택배가 싸니깐...택배로 해야지하다가
아들이 물류센타에서 알바했을 때 했던 말이 떠올라 두어병을 집어들었다.
" 엄마. 물 절대 시키지마. 진짜 진짜 제일 힘든게 생수야"
사실 많은 사람이 먹고 살 수 있는 새로운 직업이긴하다.
AI가 언젠간 이 일까지 대신하겠지만 그 전까지는 나같은 발품, A의 발품, 나같은 주문
A의 주문 모두가 필요한 직업이고 고객이다.
그런데 해도 해도 너무 많고 끝도 없다.
택배회사는 빨리 빨리 주문하세요~입금하세요~라 하고
나는 서둘러 주문 후 입금하고
아들같은 분류자는 서둘러 박스에 담고 00택배맨은
서둘러 운전대를 잡는다.
내가 주소를 못찾아 헤맨 시간은 길어야 5분-8분정도였던 것 같다. 그 이상인가?
그럼에도 난 음식이 식을까 고객이 화를 낼까 마음이 불편했다.
내가 개 당 얼마를 받는 정식 택배맨이었다면 그 5분이 달리 느껴졌을거다.
안타깝게도 자꾸 택배기사님들에 대한 유고기사가 뜬다.
분류작업만 하는 데 5만보를 걷는다는데 내가 한라산을 오르내린 게 3만보였다.
비누로 머리를 감는다는 오래 전 직장동료,
" 나 한 사람이라도 화학제품 덜 써야지. " 자기 소신이 그렇단다.
" 주임님 혼자서 한다고 그게 뭐 달라지나요?"
내가 주문을 덜한다고 택배기사님들의 처우가 나아지는 것도
재활용을 하는 경비아저씨가 한숨을 덜 쉬는 것도 아니다만
" 나 한 사람이라도 덜 써야지."
직장동료의 소신이 자꾸 생각난다.
딜리버리. 이 얼마나 좋은 시스템인가
발품 팔고 한 건에 얼마~ 시급이 8천원인데 오후 늦은 시간대의 딜리버리는 최소 5천원 이상이니
비교함 아주 매력적인 금액이 아닐 수 없다.
대기업이 뛰어 들 정도로 택배업은 화수분같은 돈이다.
그러면 택배기사들도 매력적인 직장, 매력적인 금액을 받아가야 맞는 게 아닌가싶다.
아들도 물류알바는 두 번 다시 안하겠다고 하고
나도 once is enough라고 한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그럼에도 아들도 나도 또 주문을 하고 택배를 기다리고 있다. 참...나...
여하튼
이 택배시장 갈수록 태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