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막내였던 나는 부모님이 할 수 없이(?)
데리고 다니셨는데
열에 여덟은 산이었다.
산에 오르면 아래에서 들려오는 소리
" 어쩜, 날라다니네. 몸이 저래 가벼워"
그 때만큼 폭발적이며 지속적인 칭찬을 들은 때가 있을까싶다.
부모님을 놓치면 안되겠고 그냥 발이 움직였을 뿐인데
내가 날다람쥐였다니...놀라운 과거다.
아버지는 등산을 자주 다니셨다.
혼밥, 혼산이란 단어도 없을 때였는데
아버지의 산행이 그랬다.
어머니가 싸 주신 도시락 하나와 신문지가
유일한 베낭속 물건이다.
" 등산 같이 갈텨?"
아버지는 어차피 가지않을 것을 아시면서도 농을 거셨다.
" 내려올 것 뭐하러 힘들게 올라가요? "
진짜 산행이 이해가 안되었다. 내려올 걸 뭐하러
그렇게 힘들게 오르지?
이후 내 결정으로 산행을 다닌 횟수가
손에 꼽히지도 않는다.
십대, 이십대는 무조건 바다아닌가?
아버지의 산행은 아버지가 쓰러지기전까지
이어졌고
어머니의 잔소리도 이어졌는데
이유가 나물이었다.
" 이거 또 속아서 산 거 같은데.."
하산시 고 앞에서 장사하시는 분들에게 한 가득 나물을 사갖고 오시니 그랬다.
"혼자 사는 홀애비다...하니 싸게 준다는데 안사?"
자녀가 어릴 때 자모회에서 영주의 부석사를
갔었더랬다.
해설사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엄마들의
잦은 웃음과 과한 액션때문인지
살을 더 붙혀 재미진 "전설의 고향"을
들려주는 센스까지 고등학교 수학여행이후 그렇게
들떠본 적이 없었던 거 같다.
버스에 올라 소백산으로 기억되는
산도 오른 것 같은데 역시나 우리의
기대를 채워주는 해설사~
잘 걷는 사람에게 고기 한 접시를 더 준다란
미션에 엄마들 팔다리가 신났다.
승부욕이 강한 내가 뒤쳐질리 있을까
한 때는 날다람쥐란 소리도 들었는데...
그런데 이상한 마음이다. 가슴이 묘하게
서운한 기색이 들기 시작했다.
왜인지 모르겠다싶었는데 어느 순간 감이 잡혔다.
오고가는 등산객의 베낭때문이었다.
아버지가 떠오른 탓이었다.
" 등산 같이 갈텨?"
이렇게 고기 한 접시에 신나게 걷고
해설사 기분도 맞춰주는데
아버지가 제일 좋아하시던 등산에는 참 인색했다.
작고하신 아버지라 그 서운함은 후회로 밀려왔다.
어려운 것도 아닌데 그 한 번을 못갔다.
나도 부모가 되어보니 자식비위는
되도록, 무조건 맞춰줘야 내가 편하다.
자식은? 부모비위? 건드리지나 않았음
감사할 때가 더러 있다.
대학생 동문들과의 산행모임이 있는데
참가율 50프로로 저조하나
왠만하면 가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산에 오르니 비로소 알아챈 산맛
중독성있는 매력이더라.
오늘은 호랑이가 많다는 서울의 인왕산을
다녀왔는데 주말의 인기는 대단했다.
정체구간이 여럿이었다.
한 줄로 올라가서
한 줄로 내려오는 구간은 좁은데다
미끄럽기까지했는데
조심해란 말이 끊이지않았다.
해골바위에서 멋진 한 컷을 기대했는데
이게 왠일인가?
누군가의 집요한 작품...이렇게까지
사랑했단말인가? 바위를 뚫은 사랑법에
쯧쯧쯧 혀를 차본다.
낙서는 말자.
대신 더 멋진 모습을 대했다.
앞에도 레깅스, 뒤에도 레깅스
앞에도 까르르 뒤에도 까르르
이십대와 삽십대 초반으로 보이는 2030들이 산에 꽉꽉이다.
예전에 개그프로에서 아줌마 아저씨들을
산에 씩씩대고 올라가서 나무에 등대고 등치기, 손뼉 뒤로 치기로 희화했었는데
그런 2030이 산에 나타나다니!
아는 지인들을 만났는지 뜻밖의 웃음소리에 시선이 모인다.
왜 젊은 아이들은 까르르 까르르 웃을까
너무 이쁘다.
벚꽃이 지니 철쭉이 한철이고 튤립도 한창이고 애기똥풀도 한철이다.
요즘 서울은 꽃길만 걷게된다. 어느 곳을 가나 꽃 천지다.
" 세상에서 제일 예쁜 꽃은 인꽃이다"
친정어머니가 손주들이 웃을 때 늘 하시던 말씀인데
그 화려한 꽃속에서도 어린 친구들은 단연 예쁜 꽃이다.
코로나로 인해 갈 곳의 제약을 많이 받은 탓인지 이십대들이
야외로 산으로 들로 나오는 장면이 자주 눈에 띈다.
물어보니 산에 올라 김밥먹기고 사진찍기가
요즘 트렌드중의 하나란다.
궁금해진다.
그동안 그들은 어디에 있었던 걸까?
338m의 인왕산은 298m안산과 연결되어있다. 무악재하늘다리를 지나는 것도 한 수다.
부모님의 취미를 이해하고 맞춰드려야겠다란 생각, 철이 들었단 얘기다.
매번은 못하지만
한 번,
이왕 해드리는 것 두 번,
세 번까지는 해드리라 조언하고싶다.
그래야 내 마음이 조금 편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