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람들의 집
집을 지을 때 햇볕이 많이 드는 남향이 좋다고 배웠다. 그래서인지 대문을 남쪽이나 동쪽에 꼭 내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계신다. 나의 짧은 생각일지 모르지만 정작 그것을 만든 이들은 그것에 크게 개이치 않은듯하다. 자연에서 얻어진 작은 부재들을 이용해 나무와 나무에 홈을 내고 그 홈이 서로 떨어지지 않게 잇거나 결합해서 서로가 어우러져 전체를 이루는 과정을 한옥에서는 "맞춤" 또는 "이음"이라 한다. 앞에는 물이 흐르고 뒤는 산이 있는 그래서 남향이니 북향이니 향에 의지 하지 않고 산의 지세에 따라 보기 좋은 곳을 바라보는... 자연을 바라보는 주인장 마음 따라 그 향을 달리하여 놓는 집..
오가는 길 따라 나지막하게 놓여, 밖에서 들여다보는 보는 시선이 어색하지 않은 민초들의 담이 있는가 하면 높게 올린 담장 아래 화원을 만들어 밖을 드나들지 못하는 여인들을 위로하기도 했다. 나무를 쓸 때에도 나무의 휜 부분이 위로 향하게 하여 지붕의 무게를 버티게 하고 아래 놓이는 부재는 발에 걸리지 않게 훤 부분이 아래로 향하게 하는 똑똑함이 억지스럽지도 않다.
한옥을 만드는 재료가 주위에서 손쉽게 얻을 수 있는 흙과 나무들로 여름철 거센 비에 썩거나 점성이 약해져 벽이 무너지도 해 둥그런 서까래 위에 네모난 서까래를 얹어 처마를 길게 내미는 방식으로 들이치는 비를 막기도 하고 나무 기둥 아래에 두꺼운 돌을 끼워 지면보다 높게 하는 등 물의 유입을 막았다. 지면보다 높게 위치한 건물들은 특정 신분의 권위와 위엄을 높이는 효과가 있어 궁궐과 사찰에서는 여러 개의 기단을 쌓거나 높은 축대를 놓아 보는 이들로 하여금 경외의 대상이 되길 바랬는데 궁궐의 정전이나 절의 중심이 되는 대웅전이 그 흔한 예이다.
현재 우리에게 남아 있는 고택들은 조선 후기 때 지어진 것이 많아 그 이전의 집의 구조가 어떠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유교적 남성 중심의 가족제도가 확고해지는 조선 후기 어느 양반가에서는 노인과 젊은 사람의 상하 관계의 구별과 여성의 생활공간인 안채와 남성의 생활공간인 사랑채를 구분 짓는 경향이 뚜렷하게 난다. 지역의 환경에 따라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일반 살림집들은 춥거나 큰 짐승들이 자주 출몰하는 지역에선 폐쇄적인 구조가 되고 넓은 논과 접해 수확이 풍요로운 곳에서는 개방적 구조를 띄게 마련이다.
호랑이보다 무서운 세금을 피해 삶을 일군 굴피나 너와집에서 민초들의 초가삼간과 으리으리한 대감님 댁에 이르기까지 자연에서 얻어지는 재료를 사용해 집을 짓던 일상의 한옥이 시대에 따른 변화와 함께 과거에 있었던 전통적 집 짓기로 이해되고 있는 지금, 생활의 편리성과 겉으로 보이는 단순함에서 아파트라는 간편한 건축물과 한옥을 비교할 수 없다. 항상 그렇듯, 하나가 좋으면 하나가 나쁘게 마련이듯이...
- 원래 한국 사람들은 자연 풍광 속에 집 한 채 멋지게 들여 새우는 뛰어난 천분을 지녔다. 조그만 정자 한 채는 물론 큰 누대나 주택에 이르기까지 뒷산의 높이와 앞 뒷벌의 높이, 그리고 거기에 알맞은 지붕의 높이와 크기에 이르기까지 조선인들의 형안은 상쾌하다고 할 만큼 자동적으로 이것을 잘 가늠하는 재질을 지니고 있었다.
-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최순우 -